해운협회 “대화주 진입 제한해야” vs 롯데 “이미 법적 검토 마쳐”…산업 내 경쟁 필요성 목소리도
#암모니아는 '대량화물'인가 아닌가
롯데글로벌로지스가 지난 5월 10일 한국해양진흥공사와의 ‘글로벌 물류 공급망 경쟁력 제고 및 친환경 선박 도입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맺으면서 친환경 해상운송 사업 계획을 발표했다. 한화오션이 올해 4월 해운사인 한화쉬핑을 설립하겠다고 밝힌 데 이어 올해 두 번째로 해운업 진출을 선언한 대기업이 나타난 셈이다.
한국해운협회는 지난 6월 10일 시장 교란 우려가 있다며 롯데글로벌로지스의 해운업 진출을 반대하는 입장문을 냈다. 해운협회는 “롯데글로벌로지스가 운송하려는 암모니아 등의 화학제품 시장은 국내 중견·중소 해운선사들이 과거부터 노력의 결실로 일궈낸 주력 시장”이라며 “2자 물류업체의 무모한 해운업 진출은 물류비 상승과 물류 시장질서 혼란을 야기할 뿐 아니라 장기적으로 국가 물류 경쟁력 악화 및 우리나라의 공급망 안정화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해상운송은 3자 물류업체인 전문 해운기업이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해운협회는 해운법을 근거로 롯데글로벌로지스가 해운업을 진출하기엔 요건이 맞지 않다고 지적하며 해양수산부에 ‘해운시장 교란 행위’ 방지를 위해 롯데글로벌로지스 등 2자 물류업체에 대한 계도 조치를 건의했다.
해운법 제24조 7항에 따르면 원유, 제철원료, 액화가스, 그 밖에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주요 화물(대량화물)의 화주나 해당 화주가 지배하는 법인이 해상화물운송사업을 신청한 경우 해양수산부 장관은 국내 해운산업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해 관련 업계, 학계, 해운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정책자문위원회의 의견을 들어 등록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대량화물을 취급하는 화주가 직접 해운업에 진입할 때 업계에 미칠 영향을 평가하고 진입을 제한하자는 취지다.
암모니아가 대량화물인지를 두고 해석이 갈리고 있는 상황이다. 이와 관련해 롯데글로벌로지스 측은 최근 법적인 검토를 거쳐 문제가 없다는 결론을 내부적으로 내린 상황이다. 반면 해운협회는 암모니아도 액화가스의 일종으로 볼 수 있고 또 향후 원유를 대신할 대체연료로 취급될 전망이기 때문에 당연히 대량화물에 포함시킬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해운협회는 암모니아 등도 법에 명시해달라며 시행령 개정을 건의한 상황이다. 시행령이 개정될 경우 롯데글로벌로지스 측에 불리해진다.
해양수산부가 아직 롯데글로벌로지스의 해운업 진입과 관련해 입장을 정리하는 단계는 아니다. 롯데글로벌로지스가 외항화물운송사업을 신청하려면 1만 톤(t) 이상의 선박을 보유해야 하는데 아직 암모니아 추진 엔진이 개발 단계이기 때문이다.
해양수산부 관계자는 “암모니아가 대량화물이 맞는지 그리고 롯데글로벌로지스가 대량화주가 맞는지까지 봐야 하는데 기업이 신청하게 되면 저희가 자료를 요청해서 어떤 종류의 암모니아인지와 지배구조 등을 들여다보게 된다”고 설명했다. 암모니아가 현행법에 대량화물로 명시되지 않은 건과 관련해서는 “해석의 문제인데 이 절차를 거치는 대상이 맞는지 여부 또한 신청이 들어오면 검토를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 롯데글로벌로지스 관계자는 “향후 원거리 해외운송을 중심으로 해운 사업을 전개할 예정이기 때문에 롯데글로벌로지스가 중소·중견 선사들의 먹거리를 위협한다는 얘기는 사실과 다르며 저희도 해운협회와 원만하게 협의해가며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톤세 제도 일몰 앞두고 해운업계 예민
롯데글로벌로지스가 진출하려는 암모니아 등 화학제품 시장은 국내 중소·중견 선사들의 주력 시장 중 하나다. 그런데 아시아 1위, 세계 3위의 암모니아 유통업체로 꼽히는 롯데정밀화학은 해마다 약 90만 톤(t)의 암모니아를 수입·저장·공급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해 롯데정밀화학의 암모니아 사업부 매출은 약 6000억 원으로, 국내 암모니아 유통시장 점유율이 약 70%에 달한다. 올해 4월부터는 암모니아 해외 수출도 시작했다. 롯데글로벌로지스가 해운업에 진출해 계열사 물동량을 고스란히 가져갈 경우 중소·중견 선사들이 입을 타격은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톤세’ 제도 일몰을 앞두고 있어 해운업계가 더욱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톤세 제도는 해운기업에 대해 법인세 대신 보유 선박의 톤수에 따라 세금을 납부하는 조세특례 제도로 일반 법인세보다 세 부담이 현저히 낮아 선사들에게 유리한 제도다.
구교훈 한국국제물류사협회 회장은 “올해 말 일몰을 앞두고 연장해달라고 하는데 세수가 부족하기 때문에 정부에서 안 들어줄 가능성이 높다. 원래 납부해야 할 법인세의 5분의 1도 안 되는 금액을 내면서 막대한 혜택을 본 셈인데 향후 타 산업과 같은 조건으로 경쟁하게 돼 부담이 클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에서는 해운산업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경쟁을 장려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구교훈 회장은 “영업을 통해 새로운 물동량을 가져올 생각은 하지 않고 자기들만의 리그를 만들어서 업을 보호하려는 데는 한계가 있다”라며 “전세계적으로 엎치락뒤치락 선복을 발주하면서 경쟁하고 있는데 HMM(옛 현대상선)을 제외한 우리나라 선사들만 운임 폭락을 겁내며 선복 발주를 안하고 있다. 한시 바삐 체질 개선을 꾀해야 하는 시점”이라고 말했다.
물류업계 한 관계자는 “현재 중국과 동남아 쪽 운임이 좋으니까 국내 선사들이 국내 화주들이랑 이미 계약한 물량의 부킹을 다 취소하고 접수도 받지 않고 물량 많은 나라로 가 버렸다”라며 “이러면 중소기업들은 어떻게 수출하라는 건지 모르겠다. 선·화주 상생을 위해서라도 대기업 진출을 환영하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한 발 더 나아가 대기업들의 적극적인 해운업 진출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전준우 성결대 글로벌물류학부 교수는 “대기업들이 해운업에 진입할 거면 계열사 물동량만 취급하며 중소·중견 선사들 파이를 뺏는 데서 안주할 게 아니라 글로벌 화주들 물동량까지 취급하면서 파이를 키워야 한다”며 “해운업이 국가 기간산업이고 글로벌 산업인 만큼 우리나라 해운 산업 발전을 위해서 제대로 3자 물류 사업까지 영위하면서 진지하게 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해운업계 다른 관계자는 “대다수 해운기업들이 너무 영세한 만큼 판을 키우기 위해서라도 대기업들이 진입하는 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다만 해운업만큼 영업력과 네트워크가 중요한 사업이 없는데 기존 선사를 인수하는 게 아니라 신규 사업을 추가하는 방식으로 영위하는 건 다소 아쉬운 일”이라며 “자기들 물동량만 안정적으로 처리하는 수수료 사업에서 그칠 게 아니라 적극적인 영업을 통해 산업을 발전시킬 책임이 있다”고 제언했다.
김정민 기자 hurrymi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