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이동시에도 여자 대표팀은 이코노미석…의류·장비도 재활용
선수들은 세계 무대에서 경쟁에 나섰으나 대표팀에 대한 지원은 충분했는지에 대한 의문이 뒤따른다. 축구 산업이 발전하고 대한축구협회가 성장을 거듭해 왔으나 여자축구에 대한 투자가 적절히 이뤄지지는 못했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이다.
대표팀을 오가는 선수, 관계자 사이에서 여자 성인 국가대표팀은 '대한축구협회의 우선순위에서 벗어난 팀'으로 통한다. 지원과 처우 등에서 남자 선수들에 비해 뒤처진다는 것이다.
살림살이가 넉넉지 못하다는 핑계로 차등을 둘 수는 있다. 남자 A대표팀과 여자 A대표팀을 동등하게 대우해달라는 요청은 욕심일 수 있다. 남자 A대표팀은 국내 스포츠 전체를 통틀어 가장 인기 있는 팀이다. 국내 최대 경기장인 서울월드컵경기장(수용 인원 약 6만 5000명)을 매경기 매진시키고 있다.
하지만 여자 대표팀을 향한 지원은 남자 U-23 대표팀보다도 뒤떨어진다는 것이 선수들의 주장이다. 지난 4월초, 국내 평가전을 준비하는 여자 대표팀과 아시아축구연맹 U-23 아시안컵을 준비하는 남자 U-23 대표팀의 소집 시기가 겹쳤다. 기존 계약기간 종료로 파주 국가대표트레이닝센터를 이용할 수 없는 상황, 대한축구협회는 소집 장소를 경기 이천으로 선택했다.
이 과정에서 여자 선수들을 향한 차별은 도드라졌다. 남자 U-23 대표팀 선수들이 경기 이천 소재 호텔에서 지내는 동안 여자 대표팀 선수들은 경기 광주에 위치한 리조트에 자리를 잡았다. 휴식 여건은 물론 훈련지로 선택한 이천시종합운동장과는 거리 차이가 있었다.
훈련 장소를 두고도 차이는 명확했다. 천연잔디구장인 이천종합운동장은 U-23 대표팀의 차지였다. 여자 대표팀은 이천종합보조구장을 이용했다. 선수들 사이에선 "인조잔디구장이라 부상 위험이 있다"는 볼멘소리가 나왔다.
이동간에도 일종의 차별은 존재했다. U-23 대표팀은 축구협회의 대표팀 전용 리무진버스를 이용한 반면 여자 대표팀을 숙소에서 훈련지로 실어 나른 것은 일반 관광버스였다.
이 같은 상황이 벌어진 여자 대표팀의 4월 A매치 기간, 선수들은 한 자리에 모여 '인권발전세미나'를 진행했다. 장기간 대표팀 주장을 맡아온 지소연은 한국프로축구선수협회의 회장이기도 하다. 대표팀 내 대다수인 선수협 소속 인사들이 여자 대표팀 처우와 관련해 의견을 나눈 것이다.
대표팀 선수들이 소집 기간 중 훈련 외 단체행동을 하는 것은 최초였다. 이들은 처음 겪는 상황에 어색함을 드러내기도 했으나 이내 자신들의 생각을 밝혔다.
최대 화두는 '이동'이었다. 선수들이 훈련장 이동 시 관광버스를 이용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남자 A대표팀이나 U-23 대표팀 등 다른 팀과의 소집이 겹치지 않은 기간에도 여자 대표팀은 프리미엄 버스를 배정 받지 못했다는 증언이 이어졌다.
이날의 또 다른 화두는 해외 이동이었다. 당시 6월 미국 원정 평가전을 앞둔 상황이었다. 이전까지 여자 대표팀은 이코노미석으로 해외 원정을 나섰고 미국행 역시 이코노미석 이용이 예정돼 있었다. 선수들은 "장거리 비행을 하면 컨디션 관리에 어려움이 많다. 부상을 입을 수도 있다"면서 "남자 대표팀은 지원 스태프와 동행하는 스폰서 회사 직원도 비지니스석을 이용한다. 우리는 감독님과 팀닥터만 그렇다"고 설명했다.
이후 선수들은 별도의 요청이 있었으나 결국 이코노미석을 이용해 6월 미국 원정을 다녀왔다. 일부 선수의 경우 부상이 있어 업그레이드를 고려했으나 소집하지 않는 쪽으로 마무리됐다.
장비 지원에서도 차이는 존재했다. "여자 대표팀은 지급되는 장비를 반납해야 한다"면서 "다음 소집 때 내가 쓴 장비를 그대로 돌려받는 게 아니라 무작위로 지급된다. 유니폼 하의 속에 입는 태클팬츠를 남자 선수가 입던 것을 입어야 할 때도 있었다. 유쾌할 수 없는 경험이었다"는 주장이 나왔다. 선수협회 김훈기 사무총장은 "남자 선수들은 몰랐던 일들이다. 이전에 있었던 남녀 선수협회 이사회에서 이 같은 내용을 전달하자 남자 선수들도 문제점에 공감했다"고 밝혔다.
한 은퇴선수는 장비 관련 아쉬움을 토로했다. 그는 "남자 선수 물품을 같이 쓴 것은 지난 일이다. 지금은 여성용 장비가 따로 나온다"면서도 "여전히 완전히 지급되는 것은 아니다. 반납을 해야한다. 이너웨어 정도는 지급이 돼야하는게 아닌가 생각한다. 생활복도 반납을 해야해서 비행기 타고 입국하면 공항에서 캐리어 펼쳐놓고 사복으로 갈아입어야 하는 상황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소집 시 숙소에 대해서도 "파주 센터를 사용할 당시, 때론 남자 올림픽 대표팀과 동시에 소집이 되면 여자 대표팀이 센터를 비워 줄 때가 있었다. 선수들로선 섭섭하게 느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선수협회는 이 같은 여자 대표팀의 문제를 정리, 축구협회에 질의를 보냈다. 김 사무총장은 "2개월 가까이 지났는데 아직 별다른 답변은 없다"고 말했다.
꾸준히 좋은 지원을 받지 못했던 여자 대표팀은 잠시나마 사정이 나아졌던 시기가 있었다. 2019 프랑스 여자 월드컵을 앞두고 신세계그룹에서 지원에 나서면서다. 당시 축구협회는 이들이 공식 파트너 협약을 맺고 여자 대표팀을 우선적으로 지원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5년간 100억 원 규모로 알려졌다.
이에 여자 대표팀은 이전보다 자주 국내외 평가전을 치를 수 있었다. 하지만 약속된 5년이 지난 현재, 여자 대표팀은 앞날을 기약할 수 없는 신세가 됐다. 오는 7월 여자축구 A매치 기간이지만 한국 대표팀은 소집 훈련조차 예정돼 있지 않다. 이와 관련해 지난 4월 평가전 당시 지소연은 "A매치 기간에 경기를 하지 않는 것은 창피한 일"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관계자들은 "결국 돈 문제 아니겠느냐"라고 꼬집는다.
최근 축구협회는 4년 8개월간 대표팀을 이끌어 온 콜린 벨 감독과 결별을 발표하기도 했다. 계약 기간이 약 6개월 남았으나 상호 협의하에 계약을 조기에 종료키로 했다고 전했다. 이를 두고도 축구계에선 "최근 예산 부족을 호소하는 협회의 '돈 아끼기'로 보인다"는 지적이 나온다. 협회는 "여자추구의 제한된 저변과 인력풀에서 세대교체를 이끌고 국제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감독과 코칭스태프 선임 작업에 착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