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훈 공개 구애로 성사된 첫 호흡…“감독 구교환과 배우 이제훈의 차기작? 저야말로 땡큐”
“저도 영화 공부할 때 (이)제훈 씨의 필모그래피를 보면서 했거든요. 그래서 혼자서 친밀하다고 생각했는데, 제훈 씨가 제게 호감이 있다고 얘기해준 거예요(웃음). 그 마음을 확인하고 나니 이게 또 영화의 장면으로 이어지더라고요. 아무래도 첫 회차를 찍을 땐 서로 친해지는 과정이 필요한데 제훈 씨는 처음부터 낯설지가 않았어요. 마치 같이 두세 작품을 이미 하고 난 뒤에 만난 것 같았죠. 서로 애정을 확인한다는 게 이렇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웃음).”
러브콜로부터 시작된 영화 ‘탈주’에서, 문제의 공개 구애자(?)이자 배우 이제훈(40)과의 호흡을 묻는 질문에 구교환은 진지한 얼굴로 자신이 먼저 좋아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앞서 이제훈이 “이번 작품을 통해 ‘감독 구교환과 배우 이제훈’의 작품도 상상하게 됐다”고 언급한 점을 꼭 집어 “저야말로 ‘땡큐’니까 그 말을 그대로 박제해주셨으면 좋겠다. 진심으로 오해하고 (이제훈을 배우로) 꼭 쓰겠다”며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이처럼 두 배우의 애정어린 케미스트리가 스크린에도 그대로 묻어나는 영화 ‘탈주’는 남한으로의 탈출을 꿈꾸는 북한 최전방 군부대 소속 중사 규남(이제훈 분)과, 그에게 현실을 직시하고 운명에 순응할 것을 강요하는 보위부 소좌 현상(구교환 분)의 쫓고 쫓기는 추격전을 그린다. 구교환이 연기한 현상은 젊은 나이에 높은 지위까지 올랐기에 부하들 앞에서는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어릴 적 함께 자라 동생 같이 아끼는 규남에게만큼은 인간적인 면모를 숨기지 않는다.
“현상은 처음에 아주 강력하게 등장하지만 그 무거운 분위기를 풀어주는 건 현상의 ‘규남아!’라는 말이에요. 규남이 앞에서만큼은 현상이가 보위부 사람이 아니라 과거에 피아노를 쳤던 옛날 모습이 나오거든요. 반대로 그렇기 때문에 만일 규남이 탈주에 성공한다면 현상이 이제까지 해왔던 모든 것들이 부정되는 거죠. 현상이가 부하 군인에게 ‘너는 군인이 맞지 않는 것 같아. 맞다는 걸 증명해라’라는 대사를 하는데, ‘현재의 네 선택이 옳다는 걸 증명해’라는 건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해요. 자기가 못하는 걸 남한테 강요하는 인물인 거죠(웃음). 그러다 규남에게 마지막으로 ‘가서 마음껏 실패해라’라고 말하는 건 현상으로선 정말 오랜만에 진실을 말하는 거예요.”
구교환의 말대로 현상은 과거 러시아 유학 시절, 자유롭게 피아노를 연주하며 군인이 아닌 다른 꿈을 꾸었던 인물로 그려진다. 그러나 결국 북한으로 돌아와 남들에겐 위압적이지만 자신에겐 족쇄에 불과한 직위에 영원히 묶일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인다. 탈주를 꿈꾸는 규남을 눈치 채고 그에게 거짓된 상을 만들어서라도 자신처럼 북한에 매어놓으려 하지만, 끝내 도망치는 그를 향해 결국 마지막까지 총구를 들이대게 된다.
“현상을 연기하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건 ‘장면마다 감정을 이어갈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어요. 정말 복잡한 상황에 놓인 인물이었으니까요. 제일 먼저 시작은 규남을 잡아야 한다는 것이었지만 그 과정에서 계속해서 마음이 움직여요. 어떤 신에서는 미치도록 잡고 싶어 하고, 반대로 또 어떤 신에선 일부러 놓아주기도 하죠. 규남을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여러 번 있었지만 죽이지 않는 것이 제게 있어 실수처럼 느껴지지 않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인 것 같아요. 만일 끝까지 ‘규남을 잡아야 해’라는 태도를 유지했다면 저는 아마 현상을 연기하지 않았을 걸요(웃음).”
이 같은 현상의 규남에 대한 다소 진하고 끈적끈적한 집착 탓에 이들 사이를 놓고 형제 같은 우정 이상의 관계성을 해석하는 관객들도 있었다. 여기에 특별 출연으로 송강이 연기한 선우민이 현상과 묘한 기류를 형성하면서 우스갯소리지만 “삼각관계가 아니냐”는 평이 나오기도 했다. 다만 주연 배우들은 모두 이런 해석이 있으리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했으며, 역으로 “흥미로운 지점”이라며 감탄했다.
“저는 현상에게 있어 규남은 친밀한 존재이면서도 제거 대상이고, 또 지금 현재의 현상이 꾸는 꿈이라고 해석했어요. 반대로 선우민은 과거 러시아에 두고 온 현상의 꿈이죠. 영화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그는 만질 수도 없고 저기 멀리에 서 있는, 유령 같은 존재거든요. 동시에 지금 내 모습을 보여주기엔 굉장히 창피한 상대이기도 하죠. 그렇게 해석해서 접근했더니 이들 간의 관계가 확장되는 것 같더라고요. 관객 분들이 그렇게 넓은 의미로 해석해주시는 것도 좋은데요, 아마 현상이 가장 사랑하는 건 피아노가 아닐까요? 피아노와 무생물과의 사랑을 꿈꾸는(웃음).”
구교환은 앞서 영화 ‘모가디슈’(2021)에서 태준기를 연기하며 북한 보위부 캐릭터를 먼저 경험한 적이 있었다. 주요 특징이 겹치는 만큼 ‘모가디슈’ 속 태준기와 ‘탈주’ 속 리현상을 비교하는 것을 관람 포인트로 잡는 관객들도 꽤나 눈에 띄었다. 연기한 장본인은 자신의 안에서 두 캐릭터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진 않았다고 말했지만, 벌써부터 N차 관람(같은 작품을 여러 차례 관람하는 것)을 계획하고 있는 구교환의 팬들에겐 아마도 들리지 않는 듯 하다.
“사실 이전 작품들이 제게 영향을 미치진 않아요. 그걸 신경 써서도 안 된다고 생각하고요. 예를 들어 태준기 같은 경우는 정말 굳은 심지를 지닌 인물이거든요. 그냥 완전히 ‘스트레이트’한 애요(웃음). 반면 현상이는 비선형으로 계속 곡선을 그려요. 인물 자체가 완전히 다른 캐릭터인 거죠. 특히 현상이를 보시면 포마드로 넘긴 헤어나 롤렉스시계, 잘 정돈된 재킷처럼 겉을 굉장히 꾸민 모습을 하고 있어요. 저는 그런 모습을 보며 이 캐릭터가 화려한 모습 뒤에 자신의 불안을 숨기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웃음).”
전작의 그림자를 찾기 어렵도록 예측불가능한 연기를 보여주는 구교환은 올 하반기에서 내년까지 영화 ‘왕을 찾아서’, ‘부활남’, ‘먼 훗날 우리’를 통해 느와르부터 멜로, SF에 이르는 온갖 장르를 오가며 대중들에게 또 한 번의 ‘구교환 에너지’를 선사할 예정이다. 감독과 동료 배우들이 왜 그를 바라는지, 그리고 대중들 역시 왜 늘 그에게서 기대 이상의 만족을 얻어 가는지를 쉴 새 없이 연달아 입증하려는 셈이다. ‘감독 구교환’으로서의 첫 장편 도전작이 아직 공개되지 않은 것이 아쉬움으로 남긴 해도, ‘배우 구교환’으로서 그를 만끽할 수 있는 판은 여전히 열려있으니 제대로 즐길 차례만 남았다.
“‘꿈의 제인’ 때도, ‘모가디슈’ 때도 저는 지금처럼 똑같은 에너지로 연기했어요. 작은 작품이라고 해서 제가 200원짜리 연기를 하는 것도 아니고 연기에 그런 건 없어요. 제 태도가 바뀌지 않아요. 보시는 대중 분들은 독립영화와 상업영화를 나눌 수 있어도 하는 사람은 그렇게 마음먹지 않거든요. 연출도 그래요. 거창한 게 아니라 늘 똑같은 것, 제가 했던 걸 하고 있어요. 뭔가 제가 굉장히 큰 걸 하고 있다고 생각하셔서 부담스러운데(웃음), 언제나 똑같이 하고 있고요. 그래서 많은 분들도 언제나 똑같이 제 작품을 많이 봐주셨으면 해요.”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