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리그1 최연소 득점에 20경기 5골 3도움…김병지 대표 “빅클럽과 협상 진행 중”
#겁 없는 고등학생의 등장
양민혁은 2006년 4월생으로 만 18세다. 소속팀 주장 윤석영이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따낼 당시 양민혁은 초등학교 입학조차 하지 않았다. 경기를 마치면 팬들의 사진 요청에 쑥스러움을 감추지 못하는 고등학생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경기장에선 여느 베테랑 선수들에게도 밀리지 않는 경기력을 선보이고 있다. 2024시즌 개막전부터 그라운드를 밟은 그는 시즌 절반이 넘는 20라운드를 치른 현재까지 단 한 경기도 빼놓지 않고 선발로 출전했다.
K리그에는 22세 이하 선수를 의무적으로 선발 출전 시켜야 하는 로컬룰이 존재한다. 이에 일부 구단은 어린 선수에게 15분 내외의 짧은 출전시간만 주는 '편법'을 쓰기도 한다. 하지만 양민혁은 최소 45분 이상을 소화해 왔다.
윤정환 강원 FC 감독은 시즌 초반 고등학생 양민혁의 성인 무대 적응을 돕는 차원에서 최소 후반 중반에는 교체해 주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5월로 들어서면서 양민혁을 풀타임에 가깝게 활용하고 있다. 이에 양민혁은 20경기에서 1584분(추가시간 제외)이라는 적지 않은 출전시간을 소화했다.
데뷔전부터 공격 포인트를 쌓아 올린 양민혁이다. 전반 1분도 되지 않은 시간, 과감한 돌파 이후 슈팅을 시도 했고 양민혁의 발을 떠난 공이 동료 공격수 이상헌을 맞고 골망을 흔들었다. 이는 양민혁의 도움으로 기록됐다. 골에 대한 아쉬움은 데뷔 두 번째 경기에서 곧장 풀어냈다. K리그1 역사에서 최연소 득점 기록(17세 11개월 4일)이었다.
프로무대 출전만으로도 놀라움을 안길 고등학생 양민혁이 20경기에 출전하며 남긴 공격 포인트는 5골 3도움이다. 리그에서 득점 15위, 도움 22위, 공격 포인트로 15위 기록이다.
자연스레 스포트라이트는 그의 몫이 됐다. 다가오는 토트넘 홋스퍼와 '팀 K리그'의 친선전에 나설 어린 선수를 뽑는 팬투표에서도 양민혁이 선정됐다. 신바람을 내는 강원 FC에서 가장 많은 유니폼을 판매한 주인공 또한 양민혁이다. 구단은 연일 양민혁을 앞세운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다.
#양민혁이 무서운 이유
양민혁이 그라운드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부분은 발재간이다. 데뷔전부터 유려한 드리블로 상대 수비를 벗겨내는 장면을 선보였다. 예측하기 어려운 움직임으로 상대 수비에게 혼란을 안긴다. 이 과정에서 나오는 슈팅과 패스가 포인트로 연결되고 있다.
포지션에 구애받지 않는 활약도 강점이다. 양민혁은 시즌 초반 주로 왼쪽 측면 지역에서 활약했다. 팀 내 2선 자원 활용이 여의치 않자 5월부터는 오른쪽에 기용되고 있으나 여전히 좋은 활약을 선보이고 있다. 5월 말부터 이어진 3경기 연속골은 모두 오른쪽 측면에서 나왔다.
이상윤 해설위원은 기능적인 면 그 이상을 짚었다. 그는 "공 잘 차는 것은 설명이 필요 없다. 경기 분위기를 쥐락펴락 한다. 체구는 크지 않지만(신장 171cm) 순발력이 좋고 버티는 힘도 충분하다"면서도 "똑똑하게 축구를 하는 느낌이다. 드리블이 좋은데 거기에 의존하지 않고 패스를 줘야 할 때는 준다"고 설명했다.
또한 양민혁의 강점으로 수비력을 꼽기도 했다. "양민혁 정도면 어린 시절 계속해서 팀의 에이스로 활약한 선수다. 그런 선수들은 프로 무대에 오면 수비에 어려움을 겪는다. 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라면서 "수비 장면에서도 언제 압박을 가하고 언제 물러나야 할지를 알고 있다. 감독이 수비를 주문하면 흉내만 내는 공격수도 많은데 아주 적극적으로 수비에 참가한다"고 말했다.
실제 양민혁은 수비면에서 의미 있는 수치를 기록했다. K리그 데이터포털에 따르면 양민혁은 태클 26개를 기록하며 리그 3위에 올라 있다. 이외에도 지상경합, 차단, 파울 등의 부문에서 공격수임을 감안하면 높은 순위에 위치해 있다. 강원의 경기에서 양민혁의 수비 이후 위협적인 공격 장면이 연출되는 것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6개월 만에 빅리그 직행?
양민혁은 준프로계약 제도를 통해 K리그 그라운드를 밟았다. 2018년부터 도입된 준프로 제도는 유망주의 조기 발굴을 위해 만들어진 제도다. 준프로 신분은 고등학교 경기와 K리그 경기를 오가며 치를 수 있다. 이를 통해 구단들은 고등학생 선수를 팀에 합류시키는 것에 대한 부담이 줄게 됐다.
하지만 양민혁의 준프로 신분은 오래가지 않았다. 김병지 강원 대표이사는 6월 17일 저녁 구단 채널을 통해 깜짝 라이브 방송을 진행하며 현장에서 양민혁에게 프로 계약을 안겼다. 준프로계약 선수가 시즌을 마치기도 전에 정식 프로 계약을 체결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준프로계약의 조건은 연 1200만 원의 연봉이다(수당 별도). 양민혁은 프로 계약으로 전환되며 약 3배에 가까운 연봉 인상이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수당이 포함될 경우 더 많은 보상이 주어질 것으로 보인다.
프로 계약 직후에는 이적설이 피어올랐다. 이전부터 김병지 대표가 양민혁의 미래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해외 스카우트들이 양민혁을 주시하고 있다는 소식이 이어졌다. 그는 양민혁을 두고 "이적료로 최소 400만 유로(약 60억 원)를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구체적인 이적설이 나오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잉글랜도 프리미어리그(EPL) 이적이 임박했다는 보도가 나왔고 김 대표도 협상이 일정 부분 진전됐다고 인정했다. 그는 다시 한 번 라이브 방송을 통해 "협상을 진행하는 구단은 프리미어리그 빅클럽"이라며 힌트를 남겼다.
최근 어린 선수들의 유럽 진출 러시가 이어지고 있으나 이적이 실제 성사된다면 양민혁은 이례적인 사례가 될 전망이다. 프로 데뷔 이후 6개월이 채 지나지 않았고 A대표는 물론 U-20 대표팀에서 활약한 실적도 없는 자원이다. 최근 유럽으로 건너간 K리그 출신 선수들의 경우 최소 2년간의 리그 활약, U-20 대표팀 또는 아시안게임 대표팀에서의 활약이 배경이 됐다.
김 대표에 따르면 협상은 70~80%까지 진행됐다. 관건은 양민혁의 국내 활약 기간이다. 앞서 강원 구단은 여름 이적시장이 열리면서 양민혁과 좋은 호흡을 보이던 주전 공격수 야고(브라질)를 잃었다. 양민혁까지 빠진다면 전력 공백은 더욱 커진다. 다만 이적이 성사 되더라도 그가 당분간 국내무대에서 활약할 가능성은 남아있다. 이적 이후 임대 방식으로 이번 시즌이 끝날 때까지 강원에서 뛰거나 겨울에 이적이 성사될 수 있다고 김 대표는 전했다.
불과 지난해까지 고교 리그에서만 활약하던 양민혁은 6개월 만에 단숨에 모두의 시선을 잡아 끄는 스타로 성장했다. 단기간에 K리그1을 넘어 EPL 활약까지 넘보고 있다. 2년 반 동안 강원 유니폼을 입다 유럽으로 넘어간 양현준의 전철을 밟는 모양새다. 페이스는 이미 선배를 넘어섰다. 또한 양민혁은 2년 전 양현준이 그랬듯 올 여름 토트넘 홋스퍼와의 친선전 출전이 확정되며 '빅리그 쇼케이스'를 선보일 예정이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