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범근·박지성·박주영도 대학 무대 경험 후 프로 타이틀 달아…“양민혁 국내 무대 한정 최고 퍼포먼스”
이전에는 흔하게 볼 수 없었던 광경이다. 그동안 수많은 유망주들의 활약이 있었으나 고등학교에 재학 중이면서 K리그에서 수위급 활약을 펼친 경우는 드물었다. 양민혁은 시즌 개막 이후 7경기를 치른 시점에서야 만 18세가 됐다. 소속팀 사령탑 윤정환 감독도 양민혁 활약에 "내가 고등학생 때와는 비교도 안 된다. 이 나이에 이 정도 하는 선수가 없었다고 본다"고 평가했다.
한국프로축구연맹은 2018년부터 준프로계약 제도를 도입해 고교생 유망주들에게도 출전 기회가 돌아가도록 독려하고 있다. 숱한 고교생 선수들이 준프로 계약을 맺었으나 양민혁 수준의 임팩트를 남긴 이는 많지 않았다. 역대 준프로 선수들의 최다 출장 기록은 2022년 성남 수비수 김지수의 19경기(1도움), 최다 공격 포인트는 2021년 서울 공격수 강성진의 1골 2도움(14경기)이었다. 양민혁은 현재까지 준프로 신분으로 17경기 5골 3도움으로 압도적인 기록을 남겼다. 이후 정식 프로 계약으로 전환 3경기를 소화한 상태다.
2018년 이전에는 고교생 신분으로 프로 무대를 밟기가 어려운 환경이었다. 이따금씩 특급 유망주들이 계약을 맺는 경우가 있었으나 프로 선수들과 훈련을 병행하고 2군리그, 또는 연습 경기를 경험하는 데 그치는 일이 많았다.
이상윤 해설위원은 "정말 과거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10대는 고사하고 대학까지 졸업하고 성인 무대에 뛰어드는 경우가 많지 않았나. '천재'로 불리던 차범근 감독, 박지성, 박주영도 대학 무대를 경험하고 프로 타이틀을 달았다"라며 "물론 정말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선수들이 양민혁과 같은 기회를 받았다면 어땠을지 모르겠지만 실제로 퍼포먼스를 보여준 선수는 양민혁밖에 없지 않나"라고 말했다.
이 해설위원의 말대로 90년대 이전에는 대부분의 축구선수는 대학 졸업 이후 프로로 진출했다. K리그 최초의 고졸 신인 선수는 1989년 데뷔한 최문식이다. 동대부속고를 졸업한 그는 프로 첫 시즌 17경기 6골 1도움이라는 준수한 기록을 남겼다. 하지만 이 또한 양민혁과 달리 고등학교 3년을 온전히 보낸 이후였다. 데뷔 시즌 15경기 7골 2도움, 국가대표 활약으로 돌풍을 일으킨 이동국 역시 고교 졸업생으로 만 19세 나이였다.
변화 분위기가 감지된 것은 2000년대 초반이었다. 안양 LG(FC 서울) 사령탑을 맡고 있던 조광래 감독은 유망주를 직접 키워낸다는 목표를 가지고 학생 선수 수집에 나섰다. 이에 한동원, 고명진, 고요한 등 10대 선수들이 학교를 중퇴하고 리그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2002년, 16세 1개월에 데뷔전을 치른 한동원의 최연소 데뷔 기록은 현재까지도 깨지지 않은 역대 1위 기록이다.
하지만 이들 대부분 경기장에서 가능성은 선보였으나 주축 전력으로 활용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선배들이 자리 잡은 틈을 비집고 들어가기까지는 시간이 걸린 것이다. 최연소 출전 기록 보유자 한동원도 데뷔골을 기록하기까지는 약 4년이 필요했다.
현재의 양민혁과 비견되는 10대의 활약은 2000년대 중반 이후에서야 나오기 시작했다. 한국 축구사에 획을 그은 '쌍용' 기성용과 이청용이 그 주인공이다. 이청용 역시 조광래 감독의 작품이었다. 중학교를 중퇴하고 FC 서울에 합류한 그는 동년배들이 고등학교 3학년이던 시점, 프로 1군에서 데뷔전을 치렀다.
이듬해 이청용은 기성용과 함께 팀의 주축 전력으로 활용되기 시작했다. 2007시즌 이청용은 23경기 3골 6도움, 기성용은 25경기 출전 기록(컵대회 포함)을 남겼다. 이들 또한 '무서운 10대'로 불렸으나 양민혁과 비교하면 1년이 늦은 시점이다. 당시 기성용의 경우 현재 양민혁과 같은 만 18세 시즌이지만 그는 '빠른 년생'으로 그의 친구들은 이미 대학 1학년에 재학 중인 시점이었다. 이청용과 기성용은 주전 도약 3년 차인 2009시즌 여름과 겨울 각각 유럽으로 떠났다.
양민혁과 유사한 사례를 살펴보려면 해외까지 시야를 넓혀야 한다. 한국 축구 역대 최고 재능으로 평가 받는 손흥민과 이강인 정도가 10대 시절 프로 1군 무대에서 뛴 케이스다. 손흥민은 만 18세가 된 2010-2011시즌 함부르크 유니폼을 입고 독일 분데스리가 1군 무대에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한 시즌간 모든 대회를 통틀어 14경기에 출전, 3골을 기록했다.
이강인도 만 18세였던 2018-2019시즌 발렌시아에서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1군 데뷔를 이뤄냈다. 유스팀과 2군팀을 오가며 1군에서 11경기에 뛰었다. 당시 이강인은 스페인 국내 컵 6경기에 출전하며 팀의 우승을 도왔으며 국가대표로는 U-20 월드컵에 출전, 준우승과 MVP 수상에 성공했다.
이 같은 기록들을 살펴 본 이상윤 해설위원은 "어쨌든 양민혁이 지금 18세 나이에 보여준 퍼포먼스는 손흥민, 이강인 말고는 비교 대상이 없어 보인다"면서도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 많은 것을 해야 하는 선수다. 축구계 선수로서 부디 잘 성장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