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천만~수억 원 할인분양 혜택으로 미분양 털어내기 안간힘…기존 입주민과 충돌 속출
동문건설이 지난해 1월 준공한 이 아파트(총 1114세대)는 미분양 세대와 입주 포기 세대 등 총 200여 세대가 주인을 못 찾자 원분양가인 3억~3억 3000만 원에서 4000~6000만 원을 낮춰 할인분양에 나섰다.
원분양가를 그대로 유지한 상태로는 미분양 물량을 받아줄 입주자 찾기는 어려울 것이란 판단에서였다. 동문건설 관계자는 통화에서 “할인분양을 하면 시공사도 그만큼 손해를 입지만 미분양 물량을 털어내려면 그 외 다른 대안이 없었다”며 “적어도 실거래 가격 수준까지는 분양가를 낮춰야 입주 희망자가 나올 것으로 판단해 할인 폭이 정해진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이 단지 입주자협의회는 이렇게 할인 분양을 받은 세대의 입주가 확인될 경우 △엘리베이터 사용로 500만 원부터 적용 △주차요금 50배 적용 △커뮤니티·공용시설 사용 불가 등 조치에 나서겠다는 내용의 ‘입주민 의결사항’을 지난해 10월 아파트 내부에 게시해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지난 2일 ‘일요신문i’가 찾은 이 단지 입구와 각 동 외벽에는 동문건설을 규탄하는 내용의 각종 현수막이 잔뜩 걸려 있었다. 단지 정문 안쪽으로는 이삿짐 차량의 지상 진입을 막을 목적으로 추정되는 사슬이 길게 걸쳐져 있었다. 입주자대표회가 동문건설을 상대로 새로 내건 게시글에는 “동문건설은 입주민과 협의 없이 할인분양을 하지 않겠다고 한 약속을 이행할 때까지 일방적 할인분양을 멈추라”며 “할인분양 세대 입주에 따른 문제 발생 시 모든 책임은 동문건설에 있다”고 썼다.
한 입주민은 기자에게 “원분양가에 들어온 입주민들이 다시 돈을 얼마 돌려받는 것도 현실적으로 가능할지 모르겠고, 서로 좋게 좋게 협의되면 좋겠는데 그렇지 않아 아파트 이미지만 악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단지 상가의 한 공인중개사무소장은 “할인분양 입주자의 이사 진입이 막힌 일이 널리 소문이 나서 그런지, 지난주 10건 정도 받았던 매매(입주) 문의 전화가 이번 주에는 3건 정도로 확 줄어 답답하다. 빨리 갈등이 해결되기만 기다리는 중”이라고 말했다.
입주민협의회와 동문건설 간 갈등 상황은 이렇다 할 협의 진척 없이 답보 상태에 있다. 동문건설 관계자에 따르면 양측 간 대화나 회의 자리가 최근 1개월 새 한 번도 없었다. 동문건설은 현재 입주민들과 협의 지점을 찾기 위해 내부적으로 절충안을 준비하거나 대응 방침을 조정 중인 바는 없는 상태라고 밝혔다.
아파트 준공 후에도 입주자를 못 찾은 이른바 ‘악성 미분양’ 세대가 비수도권을 중심으로 쌓이면서 이를 털어내려 각종 ‘파격 마케팅’에 나선 시공·시행사와 이에 반발하는 최초 수분양자 간 충돌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국토교통부 최신(5월) 통계를 보면 전국 미분양 주택 수는 1년 전 대비 4.7% 늘어난 7만 2129세대, 이 가운데 ‘준공 후 미분양’은 1만 3230세대로 1년 새 48.8% 급등했다. 이 중 81.6%(1만 806세대)가 비수도권에 있다. △경남(1793세대) △대구(1506세대) △전남(1354세대) △부산(1308세대) △제주(1202세대) 순으로 많다.
악성 미분양 단지들은 각 지역의 핵심 입지에서 다소 떨어진 지역에 대부분 포진해 있다. 수년 새 공사비 상승으로 분양가격이 뛴 반면 거래시장 침체로 실거래 시세 가치는 떨어진 상황에서 지역 내 입지 가치에서도 밀린 단지들이 집주인 찾기에 더욱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분양업계는 설명한다.
이들 단지들에선 원분양가의 20~30% 할인, 중도금 무이자 대출, 발코니 확장비 무료 등 혜택을 기본으로, 수천만 원의 축하금을 사후 현금으로 지급하는 ‘페이백’ 마케팅을 흔히 볼 수 있다. 분양가의 10~20%만 선납하고 우선 입주한 뒤 나머지 잔금은 2~5년 뒤 납부하는 ‘잔금 유예’ 계약도 곳곳에서 쓰인다.
드문 경우지만 제주의 한 빌라 단지 시행사는 지난 2월 일부 세대를 8000만 원 할인 분양하면서 대금의 일부를 비트코인 등 가상 화폐로 납부할 수 있다고 홍보해 이목을 끌었다.
건설업계의 이 같은 미분양 판촉 활동은 원분양가 수분양자들을 자극해 거센 반발과 항의 시위를 초래하기 일쑤다. ‘미분양 무덤’으로 불리는 대구지역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초 입주를 시작한 대구 동구의 한 아파트는 건설사가 올해 9000여 만 원을 내려 할인 분양에 나서자 기존 입주민들이 지난 3월 할인 분양자의 입주를 막아서다 일부가 경찰에 연행되는 일이 있었다. 지난 4월 수성구의 한 아파트 입주민들은 분양가보다 3억~5억 원 할인 분양에 나선 건설사를 상대로 분양 대금 일부 반환을 요구하며 단지 출입구 등 곳곳에 윤형 철조망을 치고 시위를 벌였다. 수성구의 또 다른 아파트도 원분양가인 7억 원대에서 6억 원대로 약 1억 원 할인 분양에 들어가자 입주민 일부가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려 시행사에 분양 대금 일부 반환 소송을 냈고, 지난 5월 세대당 9000만 원의 분양 대금 반환 합의를 이끌어냈다.
기존 입주민과 할인분양 입주민, 시공·시행사가 빚는 갈등 상황에 대해 정부나 지방자치단체는 되도록 직접적 관여를 자제하는 분위기다. 차량이나 신체를 활용해 할인분양 입주민의 이삿짐 진입을 물리적으로 막는 행위도 현장에서 즉각 제지가 이뤄지지는 않는 편이다. 유선종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해당 사안은 정부나 지자체가 정책·제도 차원에서 접근하거나 행정지도에 나설 대상은 아니다”라며 “최초 수분양자나 할인 수분양자 모두 지역의 주민이니 한쪽에 손을 들어주기도 어려워 아마도 지자체들은 표정 관리를 하면서 갈등이 잘 마무리되길 바랄 것”이라고 말했다.
분양업계는 미분양 단지의 분쟁 장기화는 시공·시행사에 결국 득 될 것이 없어 적절한 보상으로 서둘러 봉합하는 것을 상책으로 보는 분위기다. 부동산시행분양전문사 미드미네트웍스 이월무 대표는 “할인분양 자체는 대법원 판례상 법적 문제는 없지만 원분양가 입주민들 입장에선 할인분양 시 집값이 떨어져 자산상 손해를 보는 격이 된다”며 “그렇다고 할인분양 입주민의 이사를 막는 행위는 업무방해죄 성격이 될 수 있어 원분양가 입주민들에게 페이백하는 방식 등으로 반발 심리를 가라앉혀 해결하는 안이 현실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 분양전문대행사 삼일산업 분양사업부 김창훈 부사장은 “할인분양 입주민의 입주를 막는 행위가 옳은 행위라고 할 수는 없지만 만약 할인분양을 실시할 경우 기존 수분양자들에게도 소급 적용해 일정 금액 보상 협의가 필요하다는 요구는 일부 공감이 되는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분양업계에선 현재 전국 미분양 물량이 정부 집계인 7만여 세대보다 훨씬 많은 최대 12만 세대에 이른다는 진단이 나온다. 건설사들의 미분양 신고 누락 관행 때문이다.
최근 악성 미분양 적체로 공사 대금을 회수하지 못한 중소·지방 건설사가 줄줄이 부도를 내고 있어 정부가 특단의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는 요구가 거세다. 많은 지방 미분양 단지들이 3~5년 전 부동산 활황 시기 외지 투자 수요에 기대며 과공급 분양이 이뤄진 만큼 해당 지역 내 실거주 수요 한계를 인정하며 대책을 꾸려야 한다는 주문이다.
이월무 미드미네트웍스 대표는 “악성 미분양 물량을 해당 지역 주민들이 다 소화해주지 못하면 외지의 다른 유주택자들이라도 나서서 사줘야 하는데 이럴 경우 취득세 완화, 양도소득 면제 등 특별한 대책이 나오지 않는 한 적체 물량을 해소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김창훈 삼일산업 부사장은 "다주택자가 미분양 주택 시장에 들어오면 실거주 수요자들도 따라서 함께 움직이면서 시장에 활기가 도는 게 일반적 원리"라며 "주택 구매 여력이 있는 다주택자들이 미분양 주택을 구입할 수 있도록 취득세나 양도세 중 어느 한쪽이라도 규제를 풀어 길을 터주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유선종 건국대 교수는 “1주택 보유자가 인구감소지역의 주택 1채를 추가 취득할 경우 1주택자 지위를 유지시켜주는 정책을 지난 5월 정부가 내놓은 것처럼 지방도시 미분양 주택 취득에 대한 정책적 배려가 필요하다”며 “취득세 중과비율을 과거처럼 1%대로 낮추거나 양도세 추징을 미루고, 우선적 대출 혜택을 주는 등 대책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강훈 기자 ygh@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