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방통행인 줄 모른 채 진입했을 가능성도…가해 운전자 ‘급발진’ 주장, 진상 규명에 최소 한 달
운전자가 '차량 급발진'을 주장하고 있지만, 진위 여부와 별개로 역주행을 벌인 이유를 밝히는 게 핵심이란 분석도 나온다. 당장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 등이 정밀 감식에 나서 결과를 지켜봐야 하는 상황. 최종 결론에 따라 운전자는 물론 동승한 부인의 처벌 수위, 피해자들의 보상 여건도 크게 바뀔 수밖에 없다.
#경찰도 좌충우돌…사고 원인 미궁
7월 1일 오후 9시 26분쯤 발생한 이번 사고로 9명의 사망자와 7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숨진 이들 가운데 6명이 현장에서 세상을 떠났고 3명은 심정지 상태로 병원에 이송됐으나 결국 숨을 거뒀다. 부상자는 사고를 낸 운전자 차 아무개 씨(68)와 동승한 아내, 차 씨 차량이 들이받은 차량 2대의 운전자와 보행 중이던 시민 3명이다.
차 씨는 시청역 인근 웨스틴조선호텔을 빠져나와 우측 한화빌딩 뒤편의 진입해선 안 될 4차선 일방통행 도로로 질주했다. 역방향으로 주행하며 마주 오는 BMW와 쏘나타 차량을 차례로 들이받은 후 횡단보도가 있는 인도 쪽으로 운전대를 틀면서 신호를 기다리던 보행자들을 덮쳤다.
경찰은 교통사고처리특례법상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로 입건해 수사에 착수했다. 이와 함께 차량의 당시 속도와 제동장치 작동 여부 등을 확인하기 위해 가해 차량과 BMW·쏘나타의 블랙박스, CC(폐쇄회로)TV 영상 및 사고기록장치(EDR) 등의 자료 분석을 국과수에 의뢰했다.
단연 가장 큰 의문은 사고 발생의 핵심 원인이다. 차 씨는 경기도 안산의 한 버스회사에 촉탁기사로 일하는 '직업 운전사'다. 1985년부터 1992년까지 서울에서 버스기사로 근무했고, 1993년부터 2022년까지는 트레일러 기사로 일했다. 운전경력만 약 40년으로 그동안 큰 사고를 일으킨 적도 없다고 한다.
이 때문인지 경찰마저 혼란을 반복했다. 수사를 맡은 서울 남대문경찰서는 사건 발생 사흘 만에 "사고 지점에서 스키드마크(Skid mark)를 발견했다"며 '적어도 급발진은 아니다'라는 듯 발표했으나 반나절 만에 정정했다. 스키드마크는 급브레이크로 정지할 경우 도로 표면 마찰력으로 타이어가 도로 표면에 흡착되는 현상이다. 경찰 관계자는 "부동액 등에서 나오는 유류물 흔적으로 파악됐다"며 "준비가 덜 된 채 브리핑을 하려다 착각했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유독 말을 아끼는 분위기다. 사건 발생 직후부터 계속 진행된 브리핑에서 '가해차량 블랙박스에 담긴 구체 상황' '호텔을 빠져나온 후 이동 동선' '주행 시 속력과 가속 여부' 등 취재진 질문이 잇따랐으나 대부분 "수사 중이라 말씀드리기 곤란하다"며 대답을 피했다.
#'급발진' 주장하지만…근거는 미흡
운전자인 차 씨는 줄곧 차량 급발진을 주장했다. 사고 발생 약 15분 후 회사 동료에 전화해 "급발진이다. 브레이크를 계속 밟았는데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다"고 토로했다고 알려졌다. 입건된 후 경찰 조사에서도 급발진을 강조했고, 사고 당시 조수석에 탄 차 씨의 아내 김 아무개 씨(65)도 경찰에 나와 같은 주장을 폈다고 전해졌다.
다만 이 같은 주장은 아직은 힘이 실리지 않고 있다. CCTV 확인 결과 가해차량은 사고를 낸 후에는 정상적으로 멈췄으며, 브레이크등도 평소처럼 작동한 상태로 확인된 까닭에서다. 통상 급발진은 어딘가에 추돌 후 마찰력을 이용해 멈추지만, 차 씨의 경우 천천히 속도를 줄이며 멈췄다는 점 역시 급발진으로 보긴 힘든 이유로 꼽힌다.
아울러 경찰은 차 씨 차량의 사고기록장치(EDR)에서 추돌 전 가속페달(액셀)을 강하게 밟은 기록을 확인했다. EDR은 차량에 장착된 기록 장치로서 액셀과 브레이크 등의 작동 상황도 보여준다. 차 씨의 경우 사고 직전 액셀을 밟은 기록은 있으나 브레이크 작동 흔적이 나타나지 않았다.
EDR 등 급발진 여부를 둘러싼 자세한 조사는 국과수 등이 진행하고 있다. 조사 결과가 나오기까지는 1~2개월가량 걸릴 전망이다. 경찰 관계자는 "저희가 해도 되지만 보다 정밀한 조사를 위해 국과수에 맡겼다"며 "저희는 입원한 차 씨 건강이 나아지는 대로 방문조사를 시작으로 최대한 신속하게 수사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만약 급발진으로 인정되더라도 차 씨는 법적 책임을 계속 추궁 받을 것으로 보인다. 사상자가 여럿 발생한 만큼, 그의 과실을 아예 외면할 수는 없어서다. 경찰 관계자는 "급발진이었더라도 업무상 과실치사상 등 혐의 적용은 변하지 않는다"며 "차량의 하자가 운전자 과실이 없다는 뜻은 아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법조계 시각도 대체로 비슷하다. 전범진 변호사(새솔 법률사무소)는 "오로지 급발진만 문제였다면 운전자 잘못이 거의 없다는 판단에 무죄가 나올 수도 있겠으나, 대개는 급발진 시 적정하게 대처했는지 등 운전자 과실도 살핀다"며 "이번 사고는 여러 명을 사망에 이르게 한 만큼 과실을 인정한 죄명은 그대로 갈 수 있다"고 내다봤다.
#호텔은 어떻게 갔을까…'진입경로' 중요한 이유
일각에선 사고 지점 일대의 길이 다소 헷갈리게 만들어진 구조도 문제였을 수 있다고 바라본다. 차 씨는 4차선 일방통행 도로로 진입했는데, 4차선 크기의 일방통행 도로는 서울은 물론 전국 어디서도 드물다. 차 씨가 일방통행인 줄 모르고 진입해 역주행을 했으며, 뒤늦게 문제를 인식한 후 당혹감에 우왕좌왕하다 사고를 냈을 가능성이 있다.
실제 차 씨가 사고를 낸 동선을 그대로 따라가 보면 이런 경우를 배제할 수만은 없어 보인다. 그가 출발한 웨스틴조선호텔 차량 출구에서 정상적인 우회전은 '유턴' 형태로 돌아 한화빌딩(더플라자호텔) 측면으로 향해야 한다. 일반적인 우회전처럼 90도 각도로 핸들을 틀면 이번 사고가 발생한 문제의 도로가 나온다.
웨스틴조선호텔 맞은편에 '진입불가' 표지판이 걸려 있지만 워낙 멀리 있어 눈에 잘 띄지는 않는다. 늦은 밤에는 더 안 보인다. 바닥에도 좌회전 금지 표식만 있을 뿐, 우측 일방통행 도로로 향해선 안 된다는 표식이 없다.
웨스틴조선호텔 한 직원도 "여기서 역주행하는 차를 직접 본 적은 없다"면서도 "처음 와봤다면 헷갈릴 수는 있어 보인다"고 했다. 그는 "여기는 늦은 밤에는 오가는 차량이 비교적 적은 편"이라며 "주변에 차가 없다고 본인 운전 실력을 과신한 채 역주행 도로로 무작정 우회전해 돌진했을 수도 있지 않겠나"라고 덧붙였다.
경찰의 한 관계자 역시 "차 씨가 애초에 어떤 경로로 호텔에 들어갔는지도 파악해야 한다"며 "그가 만약 사고를 낸 길을 거쳐서 웨스틴조선호텔에 들어갔다면 일방통행이란 사실을 알고도 역주행을 했단 해석이 나오고, 반대 이유로 일방통행인 줄 모른 채 도로에 진입했다면 책임을 회피하고자 급발진 등 차량 탓으로 돌렸을 수 있다"고 바라봤다.
결국 급발진 여부 이전에 차 씨가 왜 일방통행 길로 들어갔는지부터 알아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경찰에 따르면 차 씨 차량은 호텔에서 출발하자마자 속력을 냈다. 만약 차 씨 주장대로 급발진이었다면, 40년 운전 베테랑이라는 그는 사실상 차에 올라탄 때부터 급발진을 인지하고도 역주행을 선택한 셈이 된다.
정지웅 변호사(법률사무소 정)는 "급발진이든 실수 역주행이든 모두 과실치사상에 해당하지만, 처벌은 하늘과 땅 차이"라며 "급발진이었다면 차 씨도 피해자일 수 있겠으나, 실수 역주행이 주요 원인이라면 매우 중대한 사고를 일으킨 격이라 중형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 변호사는 이어 "기본적으로 차량 역주행은 도로법 등의 위법 사항인데 이를 면피하고자 급발진을 주장한 것으로 드러나기라도 하면, 사고를 일으키고도 반성의 기미가 없었단 판단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면서 "어떤 처벌이 따를지 경우의 수가 많은 만큼 경찰이 어느 때보다도 면밀히 수사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기사 동료들 "믿기 힘들어"…피해자들은 보상 절차
이번 사고 소식을 접한 차 씨의 회사 및 동료들은 일제히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분위기다. 차 씨가 일하는 경기 안산 K 여객 직원들은 일요신문에 "믿기 힘든 일"이라고 입을 모았다. 차 씨는 2023년 초쯤 K 여객에 1년 단위 계약의 촉탁 기사로 입사해 최근까지 20인승 마을버스를 몰았는데, 별다른 사고 없이 잘 지내왔다고 한다.
차 씨와 함께 일한 K 여객의 한 기사는 "촉탁직이라 그런지 평소 사람들 앞에 나서는 편은 아니었고, 부지런히 일만 하는 분이었다"며 "술은 평소에도 즐기지 않았다"고 전했다. 또 다른 기사는 "겉보기로는 건강해 보였다"며 "급발진이었을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고령에 따른 운전 미숙 등은 아니었다고 본다"고 추측했다.
일부에선 차 씨가 고령이라 인지능력이 떨어져 사고를 냈을 가능성도 제기하는 만큼, 그의 정확한 건강상태를 파악하는 일은 중요하다. 버스회사는 고령 촉탁 기사를 고용할 때 건강상태도 검사하도록 돼 있는데, K 여객이 이를 충실히 살폈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K 여객 관계자는 "언론 응대에 지쳤다. 제발 그만하시라"며 답을 피했다.
단, K 여객에서 만난 또 다른 한 버스기사는 "촉탁직은 일반적으로 회사 관계자가 운전 경력을 갖춘 이들을 추천하고 알음알음 선발한다는 게 보편적 인식"이라며 "회사가 운전이 가능할 정도의 인지능력 등까지 꼼꼼히 체크한다는 인상은 썩 들지 않았다"고 전했다.
사고로 사망한 이들의 유족들은 슬픔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7월 4일에는 사망자 9명의 발인식이 잇따라 엄수됐다. 이들 희생자들은 하나같이 평범한 시민이었다. 서울시 공무원(2명), 승진을 기념한 은행원들(4명), 병원 용역업체 직원들(3명)로서 모두 30~50대 남성들이다.
이들 가운데 서울시 공무원인 김 아무개 씨(52)는 중학생 시절 사고로 한쪽 눈을 잃었지만, 직접 학비를 벌어 서울시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다고 한다. 은행에서 일했던 피해자 4명은 직장 동료 사이였는데, 이 중 1명이 당일 승진해 축하해주고자 모였다가 참변을 당해 안타까움을 더했다.
사상자 16명에 대한 보상은 차 씨가 가입한 DB손해보험에서 상당 부분을 지급할 계획이다. 일각에선 최대 100억 원이 넘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내놓지만 구체 액수는 더 추산해봐야 한다. DB손해보험은 차량의 급발진 여부와 무관하게 보상 자체는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경찰 등도 지원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만에 하나 차 씨가 사고에 고의가 있었다면, 검·경이 운용하는 범죄피해자 보호기금을 활용해야 할 수 있다. 경찰 관계자는 "아직 경찰이 직접적 보상에 관여할 수는 없지만, 피해자 전담 경찰관들을 지정해 유족들을 도울 방안이 있는지 논의하고 있다"고 전했다.
주현웅 기자 chescol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