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계 수순 밟는 그룹이라 의심 시선…한솔그룹 “사업보고서는 관련 기준 따라 작성 중”
한솔홀딩스가 수조·수천억 원 규모의 매출을 내는 계열사들을 연결 종속회사로 두지 않는 것도 주목받는다. 연결로 계열사를 종속관계로 두면 회계상 매출과 영업이익이 증가해 투자 유인이 높아지는데도 이를 외면하는 모양새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한솔그룹이 승계작업을 진행 중이라 다양한 시각이 나온다.
한솔홀딩스는 지난 5월 21일부터 21일간 한솔로지스틱스의 주식을 주당 3000원에 매입했다. 그 결과 한솔홀딩스가 보유한 한솔로지스틱스 지분은 기존 21.5%에서 35.57%로 14.08%포인트 증가했다.
한솔홀딩스의 PBR(주가순자산비율)은 0.2배 수준이다. PBR은 주가를 주당순자산가치로 나눈 비율을 뜻한다. 통상 1배 미만은 저평가됐다고 보는데 한솔홀딩스는 이를 크게 하회한다. 이 때문에 시장에서는 한솔홀딩스가 한솔로지스틱스를 과연 연결대상 종속회사로 둘지 관심 있게 보고 있다.
한솔홀딩스가 한솔로지스틱스를 연결대상 종속회사로 둘 경우 한솔홀딩스의 실적 규모가 커 보이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현재 한솔홀딩스는 한솔로지스틱스를 지분법으로 실적에 반영하고 있다. 지분법 실적은 투자회사의 당기순이익에는 영향을 미치지만 매출과 영업이익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한솔로지스틱스는 지난해 7265억 원의 매출에 265억 원의 영업이익을 거두었다. 한솔홀딩스가 한솔로지스틱스를 연결대상 종속회사로 두면 한솔로지스틱스의 매출과 영업이익을 양사 간 내부거래를 제외하고 그대로 가져올 수 있다. 이 실적이 한솔홀딩스에 반영될 경우 지난해 한솔홀딩스의 실적은 크게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투자자들의 투자 유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한솔홀딩스의 지난해 매출과 영업이익은 4431억 원, 39억 원이었다.
투자회사가 피투자회사를 연결대상 종속회사로 두려면 지배력이 있어야 한다. 51% 이상 지분을 확보하면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종속회사로 둘 수 있다. 대부분의 경영적 판단을 내리는 피투자회사의 이사회 구성을 투자회사가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솔로지스틱스의 사례처럼 투자회사인 한솔홀딩스가 50% 미만의 지분을 확보한 경우 지배력 유무를 판단하기 모호한 측면이 있다. 이는 회계 전문가 사이에서도 갈리는 대목이다. 다만 한솔홀딩스는 한솔로지스틱스의 경영에 깊숙이 개입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솔로지스틱스는 이사회 구성을 위한 이사의 선임을 주주총회(주총)를 통해 하고 있다. 이사의 선임은 주주총회에 출석한 주주의 의결권의 과반수로 하되 발행주식총수의 4분의 1 이상의 수가 확보돼야 한다.
투자업계에서는 경쟁자 없이 30% 이상 지분을 보유한 최대주주는 원하는 안건을 주총에서 무리 없이 통과시킬 수 있다고 본다. 이를 감안하면 한솔홀딩스가 한솔로지스틱스에 대한 지배력을 갖추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법률적으로 한솔홀딩스 이사회가 한솔로지스틱스의 실적을 지분법으로 반영하도록 두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연결대상 종속회사로 보든 지분법 적용 회사로 보든 회계적인 측면에서 한솔홀딩스의 가치가 변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한솔홀딩스 이사회가 모든 주주들을 위해 경영적 판단을 내리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사업보고서가 투자자들의 투자지표로 활용되는 점을 감안하면 한솔홀딩스 일반주주 입장에서 한솔로지스틱스의 실적을 지분법으로 반영해 가치가 축소돼 보이는 것은 불만일 수 있다. 주가가 저평가됐다고 판단할 수 있어서다.
한솔홀딩스는 한솔로지스틱스를 종속회사로 만들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일요신문i' 취재 결과, 한솔홀딩스는 최대주주 신분인 기업들을 연결 종속회사로 두기 위한 작업을 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한솔홀딩스는 꾸준히 2조 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는 한솔제지의 실적을 지분법으로 반영하고 있다. 한솔홀딩스는 한솔제지의 지분 30.49%를 가진 최대주주로 이사회 구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솔제지도 한솔로지스틱스와 마찬가지로 이사를 주총에서 선임하고 있다. 특히 한솔제지의 대표이사는 한솔홀딩스의 대표이사이기도 한 조동길 회장이다.
한국기업거버넌스 전 회장인 김규식 변호사는 “기업 경영권(지배력)에 프리미엄을 부여하고 있는 국내 주식 시장에서 한솔홀딩스가 연결대상 종속회사로 둘 수 있는 매출 규모 수조 원대의 한솔제지의 실적을 지분법으로 반영한 것은 (한솔홀딩스가 한솔제지에 대한 지배력이 없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이해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 때문에 한솔홀딩스 이사회가 일반 주주들의 권익을 위해 경영에 참여하고 있는지 의심스럽다”며 “특히 한솔그룹이 승계 작업을 진행하고 있어 지배주주의 이익을 위해 주가를 누르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살 수 있다”고 분석했다. 김 변호사는 “한솔홀딩스는 이 같은 노력을 하고 있는지 주주들에게 충분히 설명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솔홀딩스는 조동길 회장에서 그의 아들 조성민 부사장에게 경영권이 승계되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조성민 부사장은 지난해 지분 매입을 통해 기존 0.76%였던 지분율을 3.00%까지 끌어올렸다. 주가가 저평가되면 조성민 부사장이 지분 매입 비용을 아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한솔홀딩스 관계자는 “회사의 사업보고서는 관련 기준에 따라 작성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박호민 기자 donky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