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 투자가 주가에 악영향 평가…본업과 시너지 이룰 M&A 나설지 주목
증권가에서는 오리온이 지난 1월 바이오 업체 리가켐바이오 지분 25.73%를 5400억 원에 취득한 것이 주가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심은주 하나증권 연구원은 “리가켐바이오는 ADC(항체약물접합체) 관련 기술을 보유한 명망있는 업체로 알려졌다”면서도 “식품업계와의 제한적 시너지 및 단기 이익 가시성 저하 측면에서 오리온 주가는 하락했다”고 설명했다. 조상훈 신한투자증권 연구위원은 “오리온은 높은 해외 비중으로 과거 K-푸드 대장 역할을 했으나 현재 사이클에서는 소외 중인데 이는 낮아진 매출 성장률과 본업과 무관한 투자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오리온은 지난 4월 17일 증권사 연구원들을 초청해 간담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 참석한 허인철 오리온 부회장은 “앞으로 바이오기업 인수합병(M&A)은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럼에도 주가는 크게 반응하지 않았다.
바이오에 대한 오리온의 오랜 의지 때문에 투자자들이 오리온의 말을 믿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오리온홀딩스와 오리온은 2019년부터 바이오 사업을 준비했다. 오리온홀딩스는 2019년 주주총회에서 ‘바이오의약품 개발 및 제조’를 사업목적에 추가했고, 허인철 부회장도 음료와 간편대용식, 바이오가 3대 신사업이라고 밝힌 바 있다.
오리온홀딩스는 2020년 10월 중국 국영 제약사인 산둥루캉의약과 합작법인 ‘산둥루캉하오리요우’를 설립했다. 산둥루캉하오리요우는 대장암 체외진단 임상시험을 진행 중이고, 결핵백신 공장도 짓고 있다. 또 오리온홀딩스는 지노믹트리, 큐라티스, 하이센스바이오 등에 지분을 투자하고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오리온홀딩스는 2022년 말 하이센스바이오와 오리온바이오로직스를 설립하기도 했다. 오리온홀딩스는 알테오젠 인수도 추진했지만 이는 최종적으로 결렬됐다.
오리온바이오로직스를 비롯해 지노믹트리, 큐라티스, 하이센스바이오 등은 모두 지난해 적자를 기록했다. 바이오 사업에 대한 투자가 아직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리가켐바이오도 아직은 성공을 낙관할 수 없다. 리가켐바이오는 최근 증권사 연구원 대상 간담회에서 ‘비전2030’을 공개했다. 오리온의 투자금을 기반으로 2030년까지 로열티를 수령하는 상업화 단계의 품목 5개를 확보하는 것이 골자다. 독자 임상 파이프라인은 2027년까지 5개로 늘리고, 매년 3~5개 파이프라인에 대한 임상시험계획을 신청하겠다고 밝혔다.
오리온이 M&A 작업 자체를 중단한 것은 아니다. 오리온은 증권사 간담회에서 현재 남아 있는 현금 6000억 원을 포함해 최대 1조 원으로 본업과 시너지가 있는 기업 M&A를 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 자리에서 오리온이 사례로 든 것이 베트남 식품 및 유통기업이다. 베트남은 공산주의 체제지만 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일부 국영기업 지분을 민영화하는 방안을 고민하는 단계로 전해진다. 베트남 측의 움직임이 현실화되면 선제적으로 대비하겠다는 것이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당장 가시화되지 않은 베트남 기업 M&A 스토리를 먼저 꺼냈다는 것은 오리온이 앞으로는 본업에 집중할 것이라는 의미 정도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며 “베트남 기업을 당장 M&A하겠다는 입장은 아니었다”고 분석했다.
오리온의 M&A는 담철곤 오리온 회장의 장남 담서원 오리온 상무가 이끌고 있다. 담 상무는 경영지원팀 산하 경영관리담당을 맡아 기획·사업전략 수립·신사업 발굴 등의 역할을 맡고 있다. 담 상무는 리가켐바이오 인수 의사결정 과정에도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오리온 관계자는 M&A와 관련해 “아직 구체적으로 정해진 것은 없다”고 말했다.
오리온은 본업인 식품의 성장 전략도 세세히 공개했다. 견과바, 육포, 생수, 양산빵, 유음료 등의 제품 카테고리를 확장하고 인도와 미국, 러시아 시장 공략 방침을 밝혔다. 중국은 대형 유통업체와 온라인 업체의 벌크(대량 구매) 중단 이슈가 있었지만 곧 해소될 것이라고 했고, 러시아 일부 채널의 거래 중단 문제도 해결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증권사 연구원들이 관심을 가졌던 가격 인상은 당분간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대부분 제과업체가 코코아 가격 상승을 이유로 초콜릿 기반의 제품 가격을 올리고 있지만 오리온은 이보다 시장점유율 확대에 중점을 두는 것으로 알려졌다.
투자은행(IB) 업계에서는 오리온이 M&A를 자주 하는 기업은 아니지만 실력파라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오리온홀딩스가 알테오젠 인수를 검토할 당시 알테오젠 주가는 4만 원대였지만 현재는 27만 원대에 육박하고 있다. 기업 보는 눈은 있다는 분석이다.
오리온은 2013년 9월 동양그룹 붕괴 사태 당시 “동양을 인수해달라”는 제안을 거절한 바 있다. 담철곤 회장과 현재현 전 동양그룹 회장은 동서 관계다. 그럼에도 M&A의 실익이 없다는 것을 진작 판단하고 거부했다는 후문이다.
하지만 담 회장도 M&A에 있어 치명적인 실패를 할 뻔한 적이 있다. 오리온그룹은 2015년 홈플러스 인수전에 뛰어들었다. 오리온은 당시 6조~7조 원의 가격을 제시한 것으로 전해진다. 보다 높은 금액을 써낸 사모펀드 운용사 MBK파트너스가 아니었다면 오리온그룹이 홈플러스를 인수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오리온그룹의 당시 현금 여력은 수천억 원 대에 불과했다. 홈플러스 인수를 위해서는 수조 원의 빚을 져야만 했다. 홈플러스를 비롯한 대형 마트는 이커머스의 영향으로 고전하고 있다. 오리온이 홈플러스를 인수했다면 지금과는 다른 모습일 수 있었던 셈이다.
민영훈 언론인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