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변동 배제특약’ 내세워 쌍용건설 공사비 인상 요구 거절…KT “법적 판단 구해보려는 것”
KT는 10여 년 전부터 기능을 다한 전화국 부지를 상업·호텔시설로 개발하거나 대규모 신사옥·데이터센터·주택 건설사업을 발주하며 대형 건설사들 사이에서 존재감을 키워왔다. 2010년에는 지분 100%를 투자한 자회사 ‘KT에스테이트’를 설립해 부동산 개발·시행·임대사업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KT에스테이트의 연간 매출 규모는 2023년 기준 6036억 원(연결기준)을 기록했다.
최근 수년 새 건설물가 폭등에 전국 곳곳서 터진 공사비 분쟁은 KT가 발주한 여러 건설 사업장들도 피해 가지 못했다. 건설용 원자재 값이 2020년 이후 3년 새 30~40% 올랐다며 건설사들의 공사대금 추가 지급을 요구에 KT는 최초 도급계약이 갖는 법적 구속력과 무게감을 강조하며 ‘수용불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KT는 2020년부터 △쌍용건설(KT 판교사옥 건립) △롯데건설(KT 광진지사 부지 재개발) △현대건설(KT광화문사옥 서관 리모델링) △한신공영(부산 초량동 임대주택) 등과 도급계약을 맺으면서 모두 계약서에 ‘물가변동 배제특약’을 담았다. 이는 시공사가 착공 후 건설물가 상승을 이유로 발주자에게 공사대금 인상을 요구하는 것을 금한다는 약속 문구다.
하지만 시공사들은 최근 건설물가가 급등한 배경이 자연적 상승보다 코로나19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불가항력적 요인에 속한다며 이를 고려한 공사비 증액을 일제히 요구하고 있다. 롯데건설은 KT와 당초 계약한 6149억 원에서 1000억 원대 추가 지급, 한신공영은 KT에스테이트와 최초 계약한 520억 원에서 141억 원 추가 지급을 요구하고 있다. 쌍용건설은 KT와 계약한 공사대금 967억 원에서 171억 원 증액을 요구했다가 거부당하자 지난해 10월 직원들이 KT 판교사옥 앞에 몰려가 집단 항의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분쟁 격화의 신호탄은 지난 5월 KT가 쏘아 올렸다. 쌍용건설의 신청으로 국토교통부 건설분쟁조정위원회의 조정 절차를 밟던 KT는 지난 5월 전격적으로 쌍용건설에 대한 ‘채무부존재 확인 소송’을 서울중앙지방법원에 냈다. 이에 쌍용건설은 지난 6월 26일 KT를 상대로 추가 공사대금을 청구하는 내용의 반소를 제기했다.
KT는 소송 입장문에서 “쌍용건설 측에 대한 모든 공사비 지급 의무 이행을 완료했으므로 추가 비용 요구에 대한 지급 의무가 없다는 것을 법원으로 확인받기 위해 소를 냈다”며 “쌍용건설과 맺은 건설계약은 ‘물가변동 배제특약’을 포함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KT 판교사옥 건설 과정에서 쌍용건설의 공사비 조기지급 요구, 설계 변경에 따른 공사비 증액(45억 5000만 원) 요구, 공기 연장(100일) 요구 등을 모두 수용했다”며 “상생을 위한 원만한 해결책을 찾고자 노력했지만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쌍용건설은 입장자료에서 “KT는 법원에 소를 제기해 공사비 분쟁에 대한 협상 의지 자체가 없음을 드러냈고, 그동안 성실하게 협상에 임하겠다는 입장을 손바닥 뒤집듯 뒤집었다”며 “지난해 10월 KT 판교사옥 집회 이후 7개월간 KT의 성실한 협의를 기대하며 분쟁조정 절차에 임해왔던 당사는 황당하고 억울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어 향후 KT 본사 앞 집회 등으로 강경 대응할 것”이라고 날을 세웠다.
KT 관계자는 지난 17일 ‘일요신문i’에 “쌍용건설의 요구가 도급계약서상 근거가 전혀 없어 부당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수차례 회의·협상을 했다”며 “입찰 과정과 쌍방 합의를 거쳐 체결한 도급계약이 있으니 법원을 통해 법적 판단을 구해보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쌍용건설 관계자는 통화에서 “KT의 전반적 분위기는 분쟁 해결에 대한 강한 의지가 부족한 것으로 보인다”며 “소송을 통한 장기전에 돌입해 본인들의 책임과 의무 등을 피하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KT와 쌍용건설의 이번 소송전은 지난 4월 부산의 한 교회와 시공사 간 ‘물가변동 배제특약’을 불공정 계약으로 보고, 그 효력을 불인정한 대법원 판결이 있은 뒤여서 건설 법무 전문가들의 관심이 더욱 집중되고 있다. 건설공제조합 법무팀은 해당 판결에 대해 “대법원이 물가변동 배제특약을 전면 무효로 본 것인지에 대해서는 개별 사례에 따라 판단이 달라질 수 있겠지만, 시공사의 귀책사유가 없는 상태에서 (발주자가) 해당 특약을 사유로 표준도급계약 일반 조건을 위반해 원자재 가격 급등 부담을 시공사에 떠넘기는 것은 무효임이 확인됐다”고 평가했다.
법무법인 바른은 지난 5월 관련 판례동향 보고서에서 “앞으로 건설산업기본법에 의거해 물가변동 배제특약의 효력이 적극적으로 제한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서진형 광운대 부동산법무학과 교수(한국부동산경영학회장)는 “결국 이번 소송 판결 내용이 향후 발주자(시행사)와 건설사 간 공사비 분쟁의 한 기준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KT는 소송 결과가 어찌 되든 다른 건설사들과 분쟁에 큰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어 스스로 적지 않은 부담을 느끼는 분위기다. KT 관계자는 “여러 건설사와 계약 건이 연결돼 있어 그 파급 효과를 고려했을 때 이번 소송 건이 회사 경영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안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쌍용건설이 승소해 추가 공사대금 수령에 성공할 경우 다른 건설사들도 같은 조치에 나서야 할 업무적 책임이 내부적으로 발생하고, 담당자가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배임이 될 소지도 있어 KT를 상대로 공사비 증액 요구 움직임이 빗발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KT와 시공계약을 맺은 한 건설사 관계자는 “KT에서 온당한 공사대금을 받는 일과 향후 KT와 원만한 사업관계를 유지해 나가는 일이 결코 다른 얘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합리적 이유가 있는 공사비 증액 요청에 대해서는 KT가 협의에 나서서 긍정적으로 해결해주길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이강훈 기자 ygh@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