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상반기 ‘1000억 원 이상’ 공공 공사 유찰 31건…건설업계 “공사는 악조건, 사업비는 비현실적”
지난 12일 찾은 부산 강서구 부산항 신항. 10km에 이르는 국내 최대 컨테이너 부두, 그 뒤로 영남권 신공항이 들어설 가덕도까지 한눈에 들어왔다. 바로 옆 진해신항(사업비 12조 원) 건설공사가 2040년 완료되면 부산항은 물동량 기준 세계 3대 항만 자리를 노리게 된다. 가덕도 신공항과의 ‘시너지’도 이미 정부 시나리오에 있다.
그런데 삽을 뜨기 전부터 제동이 걸리는 모양새다. 추정사업비 10조 5300억 원이 배정된 ‘가덕도 신공항 부지조성 공사’, 약 1조 원(9162억 원)이 책정된 ‘진해신항 컨테이너부두 1공구 축조공사’ 등 2건의 공사 모두 지난 5월 시공사를 찾으려다 ‘유찰’의 고배를 마셨다. 발주자들은 이달 바로 2차 입찰에 나섰지만 세부 입찰 조건이 크게 달라지지 않은 이상 그 결과를 낙관하기 어렵다.
도한영 부산경실련 사무처장은 “대형 건설사들이 단체로 정부와 무슨 힘겨루기라도 하나 싶은 생각이 든다”며 “부산시민들 입장에선 이들 공사가 차질 없이 진행되는 것이 중요한데 아무래도 공사 기간이 계획보다 더 늘어날 것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일요신문i’가 올 상반기(1월 1일~6월 11일) 중 조달청 나라장터에 공고된 ‘사업비 1000억 원’ 이상 공공공사 입찰 건을 모두 확인한 결과 개찰이 이뤄진 총 40건(중복 포함) 중 9건만 시공사를 찾았고, 나머지 31건은 유찰 처리됐다.
서울 최대 교통 인프라 사업인 ‘영동대로 지하공간 복합개발’ 2공구 건설공사(건축·시스템)는 지난 2월 5차 입찰이 유찰돼 이달 6일 6차 입찰 공고를 냈다. 영동대로 복합개발은 지하철 2호선 삼성역과 9호선 봉은사역 사이 1km 구간에 지하 5층 환승센터를 짓는 사업으로, GTX-A·C노선과 위례신사선 승강장, 택시·버스환승센터가 모두 들어간다. 시공사 찾기가 지연되면서 2028년 GTX-A 전구간 개통을 예고한 정부 계획을 두고 시민들의 불신이 커지고 있다.
‘광주 도시철도(지하철) 2호선 2단계 건설사업’은 7공구와 10공구 모두 이달 4차 시공사 입찰이 유찰 처리됐다. 두 공구의 사업비를 합치면 3000억 원 수준이다. 광주 지역사회에선 이 노선을 2029년 개통하려는 계획이 과연 실현 가능할지 의문을 제기한다. 추정사업비 6340억 원이 편성된 고양 킨텍스 ‘제3전시장 건립공사’는 3회 유찰 후 지난 5월 4차 입찰에서 1개 건설사 단독 응찰이 나온 상태다.
국가 핵심 기반시설 사업의 잇단 유찰은 책정된 사업비와 건설사들의 요구 사이 적지 않은 격차가 기본 원인으로 지적되지만 ‘베테랑’ 대형 건설사도 주저할 정도의 높은 공사 난도, 무리하게 설정된 공사 기한 등 공사 자체가 품은 부담 요인이 더 큰 원인인 경우도 있다. 특히 흔히 지하 깊은 곳이나 해상에서 진행되는 초대형 교통·물류시설 건설사업은 각종 현장 사정으로 공사 기간이 당초 계획보다 길어질 가능성이 높지만 발주자가 제시하는 사업비 산정에는 이런 요인이 거의 반영되지 않는 문제도 지적된다.
지난 5월 첫 시공사 입찰에서 ‘무응찰’ 기록을 낸 가덕도 신공항 사업은 ‘착공 후 6년’으로 설정된 짧은 공사 기한, 깊이 20m가량의 해상을 덮어 건설해야 하는 악조건 등으로 건설사들이 참여를 주저하고 있다. 시공능력평가 기준 상위 10위 건설사에 대해서는 공동도급(컨소시엄 구성)을 총 2개사로 제한한 조건도 대형사들의 집단 외면을 자극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시공사들은 사업 규모나 각종 리스크 요인을 고려할 때 최소 3개 건설사 컨소시엄 구성을 필수로 보는 분위기다.
전영준 한국건설산업연구원 미래산업정책연구실장은 “아무리 초대형 건설사라도 2개 업체가 다 해내기엔 공사 규모가 너무 크고 현장 특성상 위험요인도 많다”며 “만약 바다 위에 지은 공항 지반에 균열이 생기거나 일부가 불균등하게 가라앉는 ‘부동침하’ 문제라도 나타날 경우 해당 기업이 심하면 망할 수 있을 만큼 큰 리스크여서 모두 부담이 크다”고 설명했다.
국토교통부 가덕도신공항추진단 관계자는 통화에서 “일단 건설업계에선 사업비가 낮게 책정됐다는 얘기는 거의 나오지 않고 있다”고 강조하며 2029년 12월 개항 목표는 여전히 유효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싸늘한 건설사들의 분위기가 전환될 계기는 아직 마땅치 않다.
유찰이 거듭된 광주 지하철 2호선 7공구도 난공사 여건 문제가 시공사 입찰을 가로막고 있다. 노선에 곡선 구간과 노후 건축물이 많아 공사 과정에서 여러 어려움이 예견되는 반면 산정된 공사비는 업계 관점에서 여유가 없다는 평가가 있다.
수도권에서 진행되는 △킨텍스 제3전시장 공사 △영동대로 2공구(건축·시스템) 공사 △서울 대심도 빗물배수터널 공사 등은 사업비 요인이 반복된 유찰의 핵심 원인으로 지목된다. 킨텍스 제3전시장 공사는 지난해 1월 1차 유찰 후 추정사업비를 4800억 원대에서 6000억 원 이상으로 대폭 증액했지만 이후에도 세 차례 더 유찰됐다. 영동대로 2공구 공사는 서울시가 최근 6차 입찰에 나서면서 사업비를 최초 공고액 대비 23% 인상한 3600억 원으로 재책정했다.
건설업계에선 대형 공공 인프라 공사는 공사대금 지급이 보장되는 장점이 있고, 수주 실적이 곧 건설사의 시공능력순위를 높이는 지름길로 인식돼 그동안 사실상 ‘황금알을 낳는 거위’ 대우를 받았다. 하지만 2020년 이후 약 30~50% 폭등한 건설 자재 물가와 금리 인상 요인, 인건비 급등으로 ‘수익 공식’이 붕괴되면서 업계의 집단적 수주 포기가 계속 됐다. GS건설 컨소시엄이 2020년 사업비 1조 2500억 원의 서울도시철도 ‘위례신사선’ 우선협상대상자 지위를 따냈다가 그사이 공사비가 뛰어 최근 이를 포기한 것이 대표 사례로 꼽힌다.
상황을 인지한 윤석열 정부는 올해 초 공공 SOC 예산을 지난해보다 5.3% 증가한 20조 8000억 원으로 편성하고, 이 중 신속집행관리대상(19조 1000억 원)의 65%(12조 4000억 원)를 ‘선집행’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이어 지난 3월 발표한 ‘건설경기 회복지원 방안’에는 공공 프로젝트 공사비에 ‘적정 단가’를 반영해 공사비를 산출하겠다는 계획도 담았다.
정부의 이 같은 움직임은 공공 공사 공사비 산정 방법 개선에 물꼬를 트는 의미가 있다. 다만 건설업계와 전문가들은 사업비를 최초 책정하는 시기와 실제 공사를 발주하는 시점 사이 최대 수년의 가격 차이가 생기면서 사업비 산정에 오차가 생기는 구조를 해결하지 않는 한 같은 문제가 반복될 것이라고 지적한다.
전영준 한국건설산업연구원 미래산업정책연구실장은 “최근 발주된 대형 공사들도 대부분 상당히 오래전 초기 단계에 사업비가 책정됐고 이후 물가 변동을 감안해 총사업비를 상향시켰더라도 (공공사업만의) 여러 제도·규정상 현재 시점의 공사단가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며 “예비타당성조사나 사전타당성 조사 등 초기 단계에 빡빡하게 산정된 공사비가 시간이 흘러도 계속 전체 사업비를 억제하는 문제가 크다”고 진단했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도시개발, 주택사업의 경우 용적률 등 인센티브를 줘서 부족한 수익을 대신 보충하도록 할 수 있지만 일반 공공 SOC 사업은 그럴 수단이 사실상 없기 때문에 어느 정도 적절한 수준에서 사업비 요구를 반영해줘야 한다”며 “민간기업을 상대로 밑지고 장사를 하라고 할 수는 없으니 합리적 수준의 공사비를 인정해 주는 것밖에 현재는 해결 방법이 없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강훈 기자 ygh@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