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력 착취 의혹 두고 국내외 소비자 온도 차…“비윤리 행태 방관하면 품질에 영향 미칠 것” 지적
디올이 노동 착취 파문으로 시끄럽다. 디올 이탈리아 지사의 가방 제조업체 디올SRL이 계약한 하청업체에서 불법체류자를 고용해 가방을 제조한 사실이 알려지면서다. 밀라노 법원 판결문에 따르면 디올SRL의 하청업체들은 그간 중국이나 필리핀에서 온 불법체류자들을 고용해 24시간 휴일 없이 작업장에서 가방 제조를 시켰으며, 생산 속도를 높이기 위해 기계 내 안전장치를 제거했다. 이탈리아 공정거래위원회(AGCM)는 지난 17일 성명을 내고 “디올 계약업체에 고용된 노동자들은 안전 규정을 위반한 작업장에서 적정 임금을 받지 못하거나 법적 근로시간을 넘기거나 건강·안전상 부적절한 환경에서 근무했다”며 “디올이 자랑하는 장인 정신과 우수한 제작 기술과는 대조적”이라고 지적했다.
불법체류자들의 노동력을 착취해 싼값에 가방을 만든 사실도 드러났다. 하청업체에서 생산된 가방의 원가는 53유로(한화 약 8만 원)다. 이것이 백화점과 디올 부티끄 매장에서 2600유로(한화 약 390만 원)에 판매됐다. 디올 본사는 성명을 내고 “이탈리아 당국의 조사에 협조하겠다”고 밝혔다.
이러한 사실이 알려지자 디올을 향한 질타가 세계적으로 일어났다. 디올 해외지사에서 발생한 일임에도, 디올 본사와 디올의 모회사 LVMH(루이비통모에헤네시)를 향해 “책임을 피하지 말라”는 비난이 일었다. 해외 의류·뷰티 유튜버들은 이번 사태를 일명 ‘Dior Scandal’(디올 스캔들)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프랑스에서 유학 중인 20대 여성 이 아무개 씨는 “현지에선 ‘디올이 고가지만 패스트패션(저렴한 가격으로 옷을 대량 생산해 짧은 주기로 판매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평가한다”며 “일부는 보이콧 필요성을 언급하며 비난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지난 4월에는 명품 브랜드 ‘조르지오 아르마니’의 하청업체가 10시간 일한 노동자에게 하루 2~3유로(한화 3000~4000원)를 주면서 가방을 만들게 했다는 내용이 알려진 바 있다. 이들이 만든 원가 93유로(한화 약 14만 원) 가방은 아르마니 매장에서 1800유로(약 약 267만 원)에 판매됐다.
명품업체들의 비윤적인 문제에 대해 해외에서 꽤 시끄러운 것과 달리 국내에서는 큰 동요가 없다. 심지어 일부 제품의 원가가 알려졌음에도 매장 판매 가격은 ‘브랜드값’이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지난 23일 서울의 한 백화점 명품관에서 만난 30대 여성 A 씨는 “원가가 어떻든 디올·샤넬 등 명품들은 브랜드 가격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서울의 또 다른 백화점에서 만난 30대 여성 B 씨는 “비윤리적인 문제 때문에 ‘이 브랜드는 안 사야지’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며 “어떤 명품이든 살 수 있는 환경이 되면 사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명품 플랫폼 관계자는 “정확한 수치를 공개할 순 없지만 디올 사태 이후 디올 판매량이 줄어들진 않았다”고 언급했다.
국내 소비자들의 반응이 크지 않은 이유 중 하나로 '과시적 소비심리'가 꼽히기도 한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명품 소비자들이 고가의 제품을 통해 사회적 지위나 부를 과시하려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어 그들의 비윤리적 생산 활동에 무관심한 것”이라며 “윤리·환경 등을 고려한 가치소비보다 과시적 소비를 좀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명품에 대한 국내 소비자와 해외 소비자의 인식이 다른 데 기인한다는 의견도 있다. 명품 플랫폼 관계자는 “해외에선 명품을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며 “반면 국내 소비자들은 명품을 재산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어 직접 피해가 오지 않으면 브랜드가 일으킨 사회적 문제에 잘 공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미국 투자은행(IB) 모건스탠리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2년 기준 한국인 1인당 명품 소비는 325달러(한화 약 43만 원)로 미국(280달러), 중국(55달러)보다 높다. 프랑스 하이엔드 명품시계·주얼리 브랜드인 ‘까르띠에’는 2022년 매출이 두 자릿수로 성장한 국가로 우리나라를 꼽았다. 같은 해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프라다’는 “한국의 실적 호조로 전체적으로 선방한 실적을 거뒀다”고 전했다.
명품업체들의 우리나라 시장 직접 진출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프랑스 명품 브랜드 ‘셀린느’가 국내 사업을 꾸렸고, 미국 명품 브랜드 ‘톰브라운’도 국내 직접 진출을 선언했다. 해외 명품 브랜드 관계자는 “명품업체들이 대한민국 시장을 주목하는 건 사실”이라며 “유럽 현지 매장에 가도 한국인이 명품에 관심이 많다는 건 유명하다”고 귀띔했다. 그러면서 “국내 소비자들의 명품 소비심리를 (명품업체들이) 모르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우리나라는 명품 소비 규모가 크고 명품업체들이 주목하는 시장이어서 무엇보다 소비자들의 인식이 중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국내 소비자들의 가치소비(윤리적 신념이나 개인 취향에 따라 소비하는 현상)가 절실하다는 것이다. 비영리스타트업 다시입다연구소의 정주연 대표는 “국내 소비자들이 명품을 무조건 신뢰하거나 긍정적으로만 바라봐선 안 된다”며 “브랜드에서 논란이 발생하면 문제의식을 갖고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는 “명품에 관대한 소비자들의 인식이 고쳐지지 않으면 품질에 문제가 생겨도 명품업체들은 품질 개선보다 브랜드 이미지 관리에만 집중할 것”이라며 “소비자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느냐에 따라 업체의 품질과 서비스가 모두 변화된다”고 제언했다.
정소영 기자 upjs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