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PB상품 순위조작’ 형사고발, 쿠팡은 반발…“기만 행위” “상품 진열은 사업자 권한” 분분
#유통업계 역대 최대 과징금 부과
공정위는 지난 6월 13일 쿠팡과 쿠팡의 자회사인 씨피엘비가 ‘위계에 의한 고객 유인행위’를 했다며 시정명령과 함께 1400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공정위는 쿠팡과 씨피엘비 법인을 검찰에 형사고발했다. 이번에 부과된 과징금은 유통업계 사상 최대 규모다. 이것도 2019년 2월부터 2023년 7월까지의 불법 행위를 기준으로 산정된 금액으로, 2023년 8월부터 심의일까지의 과징금이 추가되면 액수는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공정위는 쿠팡이 검색순위를 조작해 자체브랜드(PB) 상품을 우선 노출하고 임직원을 이용해 구매후기를 작성케 해 PB상품에 높은 별점을 부여했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공정위는 자기 상품을 다른 사업자보다 현저히 우수한 상품이라고 고객을 오인케 했다는 점에서 공정한 거래질서를 저해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했다. 특히 공정위는 쿠팡이 자체적으로 입점업체의 후기 작성을 ‘마켓 내 경쟁사업자 간 공정경쟁을 저해하는 심각한 위법행위’로 규정하고 이를 금지시켰다는 점도 지적했다.
쿠팡은 공정위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상품진열’을 문제 삼고 있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쿠팡은 6월 13일 “로켓배송 상품을 자유롭게 추천하고 판매할 수 없다면 모든 재고를 부담하는 쿠팡으로서는 더 이상 지금과 같은 로켓배송 서비스를 유지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쿠팡은 공정위 과징금 제재 발표 등을 이유로 6월 20일 예정이었던 부산 첨단물류센터 기공식도 취소했다. 쿠팡은 또 “쿠팡이 약속한 전국민 100% 무료 배송을 위한 3조 원 물류투자와 로켓배송 상품 구매를 위한 22조 원 투자 역시 중단될 수도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쿠팡은 공세를 이어갔다. 6월 14일에는 “임직원 체험단 평점은 일반인 체험단 평점보다도 낮았다”며 “공정위는 전체 리뷰 수 2500만 개의 극히 일부인 7만 개 댓글 수만을 강조하며 이들 모두가 편향적으로 작성한 리뷰처럼 호도하고 있다”는 골자의 반박문을 냈다. 이어 17일에는 “고물가 시대에 PB상품은 유통업체의 중요한 차별화 전략이며, 모든 유통업체는 각자의 PB상품을 우선적으로 추천 진열하고 있다”며 타사의 오프라인 매장과 이커머스 판매 화면 사진을 첨부하기도 했다.
#이커머스 업계 반응은?
쿠팡의 반박을 두고 관련 업계 반응은 엇갈린다. 우선 공정위가 금지한 것은 검색 순위 조작과 임직원 후기 작성이지 상품 추천 행위나 로켓배송과는 무관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PB상품 우대가 업계 관행이라는 주장과 관련해서도 반박이 나온다.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공정위가 상품 추천 행위 자체를 금지한 게 아닌데 로켓배송 중단 가능성을 논하는 것은 논점을 벗어난 문제이고 리뷰 개수와 평점 얘기도 마찬가지”라며 “PB를 추천할 수는 있지만 판매량이나 고객 리뷰수 등 객관적인 데이터에 따라 노출시켜야 하는데 공정위가 조사해보니 그런 데이터와 일절 상관없이 PB를 먼저 노출시켰다는 것으로, 그런 알고리즘 조작은 제가 알기로 어떤 이커머스 업체에서도 하고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쿠팡의 검색순위 조작 행위가 소비자 편익을 저해했다는 주장도 나온다. 첫 화면에 노출되는 상품들이 대다수 소비자의 선택을 받았거나 평점이 좋은 제품이라는 사실은 플랫폼 업계의 불문율이기 때문이다. 이영애 인천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쿠팡에서 고가의 제품을 사는 게 아니기 때문에 소비자들은 길게 탐색하지 않고 상위권에 랭킹된 상품들 위주로 빠르게 구매결정을 내린다”라며 “쿠팡이 잘못된 정보를 준 셈이고 그 정보가 아니었으면 구매 효율을 더 높일 수 있는 다른 의사결정을 할 수도 있었을 것이기 때문에 소비자 편익을 저해한 셈”이라고 지적했다.
법무법인 팔마의 이진욱 대표변호사는 “오픈마켓 사업자들에 대해서도 자기들 상품이 공정하게 노출되리라는 기대를 안고 쿠팡에 입점했을 텐데 그 기대를 배반했다. 수수료를 받으면서 셀러들을 입점시킨 건데 자사 제품의 수익이 더 많이 나도록 노출 순위를 건드리는 건 불공정 행위”라며 “타사들이 설령 동일한 방식을 사용한다고 해도 불법 행위자가 그걸 근거로 왜 자기만 처벌하냐는 식의 ‘불법의 평등’을 주장할 수는 없는 게 우리 법의 취지이기 때문에 쿠팡의 반박 논거가 약하다”라고 말했다.
반면 일각에서는 쿠팡의 주장도 일리가 있다는 반응도 나온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상품 진열은 사업자 고유 권한이라고 본다. 공정위가 이커머스를 잘 모르는 것이 아닌가 싶은 부문이, 이커머스는 오프라인과 달리 매대가 ‘무한’에 가깝기 때문에 소비자들이 더 탐색을 하는 경향이 있다”며 “소비자들한테 피해를 입혔다고 주장하지만 소비자들이 실제로 피해를 입었는지도 알 수 없는 상황에 너무 과도한 과징금을 부여한 게 아닌가 싶다”고 지적했다.
유통업계 다른 관계자 또한 “자사 상품만 보이게 했다면 문제일 텐데 더 잘 보이게 한 것이 문제인 건지는 잘 모르겠다. PB상품의 노출을 꾀하지 않으면 그게 주주들한테 더 문제 아닌가”라며 “플랫폼 사업자는 자신에게 유리한 상품의 노출을 늘릴 수 있어야 하고 해당 플랫폼을 이용할지 말지의 선택은 소비자가 하는 것이다. 플랫폼 사업자가 수익을 낼 방법을 궁리하지 말고 그냥 플랫폼을 제공만 하라고 하는 주장은 과한 것 같다”라고 말했다.
#비즈니스 모델에 직격탄, 물러설 곳이 없다
공정위는 현재 쿠팡의 하도급법 위반 행위에 대해서도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소비자가 파악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멤버십 가격 인상 동의를 받았다는 ‘다크패턴’ 의혹에 대해서도 조사에 착수한 상태다. 지난 6월 19일에는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등으로 이뤄진 ‘온라인플랫폼 이용자 불만 신고센터’가 쿠팡이 유료 회원제 서비스인 와우 멤버십 요금을 인상하면서 쿠팡플레이와 쿠팡이츠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해 끼워팔기를 하고 있다며 공정위에 신고하기도 했다.
공정위의 칼날이 연이어 쿠팡을 향하고 있는 가운데 쿠팡이 물러서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을 두고, 이번 제재가 쿠팡의 비즈니스 모델에 직접적인 타격을 입혔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앞서의 유통업계 관계자는 “나스닥에 상장된 쿠팡의 주식은 한국에서 성공한 비즈니스 모델을 다른 나라에 이식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고평가돼 있다”며 “PB의 노출 빈도를 늘려주는 것은 쿠팡의 이익과 직결된 중요한 문제인데 공정위가 이 부분을 제재하겠다고 나섰으니 강하게 나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PB상품은 유통업체의 자체 브랜드 상품이기 때문에 광고비나 판촉비 등 마케팅 비용이 거의 들지 않는다. 저렴하게 가격을 책정할 수 있어 매출이 잘 나오고 수익성에도 도움이 되는 ‘효자 상품’이 되는 경우가 많다. 쿠팡이 2020년 7월 PB사업부를 물적분할해 설립한 100% 자회사 씨피엘비도 광고비 비중이 지난해 기준 매출의 0.2% 수준에 불과하다. 2020년 1331억 원이던 씨피엘비 매출은 3년 만인 2023년 1조 6636억 원으로 12.3배 늘었다. 영업이익도 같은 기간 19억 원에서 1143억 원으로 약 60배가 넘게 증가했다.
이와 관련, 쿠팡 관계자는 “유례없이 ‘상품진열’을 문제삼아 지난해 국내 500대 기업 과징금 총액의 절반을 훌쩍 넘는 과도한 과징금과 형사고발까지 결정한 공정위의 형평 잃은 조치에 대해 유감을 표하며, 행정소송을 통해 법원에서 부당함을 적극 소명할 것”이라는 입장을 냈다.
김정민 기자 hurrymi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