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구 혼합복식 종목서 남북 선수 시상대 올라…임종훈 휴대폰 셀카 촬영에 다 함께 ‘찰칵’
이 같은 흐름은 2024 파리 올림픽에서도 포착된다. 이전에도 숱한 메달리스트들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 대회에서는 '우리만의 영웅'이 아니라 전 세계 팬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세계인들의 시선을 사로잡은 태극전사는 누구일까.
#"액션영화에 캐스팅해야한다"
한국인 선수 중 단연 화제의 중심에 선 선수는 여자 10m 공기권총에서 은메달을 따낸 김예지다. 지난 29일 열린 종목 결선에서 241.3점을 기록 최종 2위에 올랐다.
인기만큼은 그 어느 금메달리스트가 부럽지 않다. 눌러쓴 모자, 특별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사격용 안경, 과녁을 바라보는 냉정한 표정 등에 많은 팬들이 매료됐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다'는 평이 뒤따른다. 팬들은 김예지의 왼쪽 눈 밑에 난 점까지 짚어내며 매력을 찾아가고 있다.
김예지를 향한 관심은 팬들이 과거 영상까지 찾아보게 만들었다. 소셜미디어에서는 지난 5월 국제사격연맹 월드컵에 나선 김예지의 경기장면이 끊임없이 공유되고 있다.
당시 김예지는 세계 신기록과 함께 금메달을 확정짓고도 침착한 태도를 줄곧 유지했다. 불과 이틀 만에 조회수 3000만 회를 넘긴 이 영상에는 '테슬라' 최고경영자 일론 머스크도 "그는 액션 영화에 캐스팅 돼야만 한다. 연기가 필요 없다"며 반응했다. 각종 외신도 그에게 집중한다. 미국 매체 'CNN'은 "온라인에서 많은 이들이 한국의 올림픽 사격 선수와 사랑에 빠졌다"는 보도를 냈을 정도다.
마치 액션 영화의 냉철한 킬러와 같은 태도로 일관하는 김예지이지만 반전되는 모습으로도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번 올림픽에서 그는 허리춤에 코끼리 모양 인형을 달고 경기에 임했다. 경기 중에도 조준에 앞서 이따금씩 인형을 만지작거리며 긴장을 풀려는 모습을 보였다.
사선 밖에서는 풍부한 감정 표현으로 또 다른 매력을 발산한다. 한쪽 눈썹을 치켜드는 자신감 넘치는 표정과 함께 "25m에서는 무조건 금메달 간다"는 말을 남겼다.
같은 경기에서 금메달을 딴 19세 동료 오예진과 흡사 자매 같은 모습이지만 여섯 살 딸을 키우고 있다는 점도 의외다. 허리춤 찬 코끼리 인형도 딸의 것으로 알려졌다. '딸에게 무슨 말을 해주고 싶냐'는 질문에는 "엄마가 좀 유명해 진 것 같아"라는 답으로 웃음을 자아냈다.
#월드스타 등극한 미남 검객
대한민국 선수단에 대회 첫 금을 안겨준 주인공은 펜싱 남자 사브르 개인전에 나선 오상욱이었다. 그는 김예지와 마찬가지로 단순 금메달을 넘어 전 세계 팬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오상욱은 대회 전부터 기대를 받던 인물이다. 대회 직전인 6월 아시아선수권에서 개인전 우승을 차지하며 분위기를 끌어올린 바 있다. 앞서 2023년 열린 아시안게임, 2019년 세계선수권도 석권했다. 부정하기 어려운 월드 클래스였다.
이번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추가하며 오상욱은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이에 더해 국제펜싱연맹 세계랭킹 1위에 오르며 세계 최고 반열에 올랐다.
오상욱이 속한 남자 사브르 대표팀은 앞서 두 번의 올림픽에서 단체전 금메달을 따냈다. 오상욱은 2020 도쿄 올림픽에서 한차례 금메달 획득을 경험했다. 이들은 '어펜저스'로 불리며 인기를 구가했다. 8시즌 연속 세계 1위라는 성과 외에 이들의 깔끔한 외모 또한 인기에 한몫했다. 이전부터 사브르 대표팀은 다수의 광고, 화보 등에서 활약했다.
그중에서도 오상욱은 이번 개인전 금메달로 더 많은 조명을 받았다. 수려한 외모에 더해 키 192cm, 몸무게 94kg으로 압도적인 체격까지 겸비했다. 이에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 팬들까지 그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앞서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 조규성 등 일부 선수들이 그랬듯, K팝 아티스트들의 영향으로 한국에 관심을 갖게 된 외국인들이 오상욱도 주목하는 모양새다. 오상욱의 소셜미디어에는 K팝 아티스트를 언급하는 동시에 오상욱에 대한 애정을 표현하는 해외팬들의 글귀가 눈길을 끈다.
특히 브라질 팬들이 그에게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세계 각국에 팬들은 애정을 표현하는 동시에 국기 등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밝히는 경우가 많다. 대회 중 '브라질에서 특히 인기가 많다'는 지적에 어리둥절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개인전 금메달의 흥분이 가시기도 전에 오상욱은 동료 구본길, 박상원, 도경동과 함께 단체전에서도 금메달을 따냈다. 대한민국 펜싱 역사상 남자 사브르 종목에서의 첫 다관왕 탄생이었다. 그 사이 팬들도 늘었다. 개인전 금메달과 단체전 금메달 사이 나흘 남짓의 기간 동안에도 오상욱의 소셜미디어 팔로워 숫자는 10만 명 이상이 훌쩍 증가했다.
#올림픽 현장에서만큼은 남북한도 화합
스포츠 분야에서만큼은 남북한이 화합하는 모습이 여러 차례 연출됐다. 과거 올림픽에서 이들은 개막식 동시입장, 일부 종목에서의 단일팀 구성 등을 실현시켰다. 다만 이번 대회를 앞두고선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다. 도리어 북한이 오물 풍선을 휴전선 너머로 날려 보내는 등 긴장이 고조돼 왔다.
이번 파리 올림픽은 시상식에서 특별한 프로그램이 진행됐기에 남북한 선수들에게 더욱 관심이 쏠렸다. 올림픽 공식 후원사인 삼성전자의 휴대폰으로 메달을 목에 건 선수들이 스스로 사진을 찍는 프로그램이었다. 이전까지 시상식에는 선수들이 휴대폰 등 개인 소지품 반입이 금지돼 왔으나 이번 대회부터 메달을 딴 선수들이 함께 '셀카'를 남기는 장면을 볼 수 있게 됐다.
이에 남북한이 각기 다른 메달 획득으로 함께 시상대에 설 경우, 이들이 사진을 같이 찍게 될지 궁금증이 쏟아졌다. 특히나 이번 대회 개막식에서 남한의 등장 순서에서 장내 아나운서가 '북한(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이라고 소개해 묘한 분위기가 연출되기도 했다.
이 같은 상황은 대회 초반부터 나왔다. 탁구 혼합복식 종목에서 리정식-김금영 조의 북한이 은메달, 임종훈-신유빈 조의 한국이 동메달을 따면서다. 남북한이 동시에 시상대에 서게 된 것이다.
금메달을 획득한 중국까지 모두 메달을 목에 건 이후, 세 나라의 선수들은 자연스레 임종훈이 받아 든 휴대폰 앞으로 모였다. 임종훈이 사진 촬영을 위해 휴대폰을 들어 올리자 북한 선수들도 화면 안에 들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무뚝뚝한 표정을 유지한 리정식과 달리 김금영은 옅은 미소로 눈길을 끌었다. 이에 앞서 북한 선수들은 은메달을 받으려 이동하는 와중에 임종훈, 신유빈과 손뼉을 마주치기도 했다.
다수의 국가에서 이 장면을 언급했다. 외신에서도 "많은 이들이 보기 드문 화합의 모습이라고 극찬했다"고 보도했다. 북한이 관심을 받는 또 다른 이유는 이들이 오랜만에 올림픽에 참가했기 때문이다.
북한은 앞서 2020 도쿄 올림픽에 코로나19 감염 우려를 이유로 참가하지 않았다. 이에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북한에 징계를 내렸고 이들은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참가도 무산됐다. 북한의 이번 대회 참가는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이후 6년만이었다. 북한의 작은 움직임에도 더 많은 눈길이 갈 수밖에 없었다. 리정식-김금영 조는 세계랭킹조차 없을 정도로 국제무대에 노출이 되지 않은 팀이었다. 김금영은 메달 획득 이후 공식 기자회견에서 '동메달을 딴 한국 선수들에게 경쟁심이 들지 않는가'라는 질문에 "그런 건 잘 느끼지 못했다"고 짧게 답했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