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상증인신문 인용되자 부인하던 범행 전부 자백…재판부 “미수 그쳤지만 추가 범죄 가능성 높아 엄정 처벌”
12일 서울신문 보도에 따르면 필로폰 성분이 포함된 마약류 야바 3989정(시가 7182만 원 상당)을 태국으로부터 수입하려다 적발돼 미수에 그친 A 씨(37)는 공범이 태국에 있단 사정을 악용해 범행을 일체 부인해오다가 화상증인신문이 법원에서 인용되자, 마약 수입 범행을 자백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구지법 서부지원 제1형사부(부장판사 도정원)는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향정),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향정), 출입국관리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A 씨에 대해 징역 8년을 선고하고, A 씨와 함께 야바를 판매하고 투약한 불법체류 태국인 B 씨(32)에게는 징역 2년을 선고했다. 또, A 씨와 B 씨에게 2797만 원을 추징할 것도 명령했다.
A 씨의 범행은 태국 마약단속국이 공범 B 씨를 검거하면서 파악됐다. 태국 세관에서 마약택배가 적발되면서 B 씨는 태국 수사기관의 조사를 받게 됐는데, 이 때 A 씨와 관련된 혐의에 대해서도 진술했다. 태국 동포들이 살고 있는 주소에 알리 택배인 것처럼 물건을 보내면 A 씨가 찾아오기로 했다는 것이다.
이는 태국인들이 국내에 마약택배를 보낼 때 주로 쓰는 수법이다. 특히 국제택배로 위장해 마약이 국내로 배송되는 사례가 최근 잇따라 적발되고 있어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앞서 서울강동경찰서는 샴푸 등으로 위장한 마약을 국제 택배로 밀수입한 뒤 합성 마약으로 만들어 국내에 유통한 일당 40여 명을 적발한 바 있다.
A 씨에 대한 체포는 태국 마약단속국으로부터 연락을 받은 국가정보원이 경찰에 수사를 의뢰하면서 이뤄졌다. 하지만 A 씨는 지난해 12월 열린 첫 재판에서 “B 씨를 알지 못하고 지인으로부터 중국 쇼핑몰에서 배송될 물건을 대신 받아달라는 부탁만 받았다”며 마약 밀수 혐의를 부인했다. 또 B 씨가 태국에 있다는 점을 이용해 외국 수사기관 서류에 대한 증거부동의를 했다.
재판에선 태국 마약단속국에서 B 씨를 잡을 때 작성했던 수사보고서가 형사소송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피의자 신문조서 요건에 맞는지, 증거능력을 부여받을 수 있을지에 대한 공방이 계속됐다. 검찰은 지난 1월 두 번째 재판에서 재판부에 태국 마약단속국에서 작성한 공범 검거 보고서와 공범 진술 기재 서류에 대한 증거능력을 검토해줄 것을 요청했다.
검찰은 지난 3~4월 태국 정부에 대한 형사사법공조 요청을 통해 B 씨의 화상증인신문이 가능하다는 의견을 법원에 제시했고, 법원은 이를 받아들였다. 결국 A 씨는 다음달 예정된 B 씨의 화상증인신문을 앞두고 태국 당국과 형사사법공조가 개시되자, 줄곧 부인해오던 마약 수입 범행 전부를 자백했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은 죄책이 가볍지 않고, 국내에 불법체류하면서 마약범죄를 저질렀다”면서 “A 씨의 경우 사전에 태국 수사당국에 적발돼 마약류 수입 범행이 미수에 그쳤으나 다량의 마약류 수입 범행은 마약류 확산과 추가 범죄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아 엄정하게 대처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검찰은 지난달 16일 더욱 무거운 처벌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항소했지만 A 씨는 항소포기서를 제출했다. 대검 관계자는 “이 사건은 형사사법공조 제도의 활성화가 국제화 추세에 있는 마약범죄의 실체관계 규명에 기여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설명했다.
손우현 기자 woohyeon1996@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