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사용 여부 사전 공개 방향으로 사회적 합의 필요…범죄 파급력 크면 ‘가중 처벌’ 고려해야
전문가들은 큰 틀에서 시장 참여자들의 도덕성과 집단 지성을 이용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AI 기술로 발생하는 범죄의 파급력이 상당하다면 가중 처벌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나아가 신기술이 사회에 어떤 영향을 줄지에 대한 사전평가제도 도입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최근 빙그레가 국가보훈부와 함께 시행 중인 독립운동 캠페인 ‘처음 입는 광복’이 여론의 관심을 끌었다. 죄수복을 입고 있던 독립운동가 87명의 마지막 사진을 AI 기술을 활용해 한복을 입은 모습으로 바꿔 새로운 영웅의 모습으로 기억될 수 있도록 하는 온라인 캠페인이다. 이 영상은 유튜브 ‘빙그레’ 채널에 올라와 12일이 지난 지금 조회수 약 360만 회를 기록하고 있다.
인스타그램 등 소셜 미디어에서는 AI 기술을 활용한 일종의 ‘놀이문화’가 형성되고 있다. 특정 가수가 부른 적이 없는 노래를 AI 기술을 활용해 마치 해당 가수가 부른 듯한 이른바 ‘AI 커버곡’이 인기 콘텐츠로 자리 잡았다. 연초에 인기를 끌었던 가수 비비의 ‘밤양갱’ AI 커버곡이 대표적인 예다. 방송인 박명수, 가수 아이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등 여러 유명인의 AI 커버곡이 인기를 끌었다.
젊은 층 사이에서는 평소 찍어 두었던 자신의 사진 10~20장을 사진 보정 앱에 업로드하면 프로필 사진을 만들어 주는 이른바 AI 프로필도 인기다. 메이크업부터 헤어스타일까지 한참 공들여야 하는 30만~40만 원짜리 스튜디오 사진에 버금가는 프로필 사진을 얻을 수 있다.
오픈 AI가 개발한 대화형 AI 서비스인 ‘챗GPT’는 직장인·대학생들이 자료를 쉽고 빠르게 찾아내기 위해 사용하고 있다. 이외에도 개발자들은 원하는 소스 코드나 자기 코딩의 오류를 잡아낼 때 소스코드 공유 플랫폼 ‘깃허브’가 개발한 AI 서비스인 ‘깃허브 코파일럿’을 활용하기도 한다.
이처럼 AI 기술이 계속 고도화하면서 사용자들의 호감도가 높아지는 추세지만 이와 관련한 여러 고민도 함께 대두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문제는 저작권·초상권·음성권 등 콘텐츠의 법적 소유권이 누구에게 있느냐다. AI 커버곡을 만든 제작자에게 음성이 이용된 자가 소유권 침해 문제 등을 제기할 수 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해 말 발간한 ‘생성형 AI-저작권 안내서’는 저작권자 및 저작인접권자의 권리가 침해될 소지가 있으므로 사전에 각 권리자에게 이용 허락을 받을 필요가 있다고 권고한다.
침해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이 권리별·사례별로 다를 수 있어 권리자가 소유권 침해를 인정받는 데 상당한 어려움이 따를 수도 있다. 정원준 한국법제연구원 부연구위원은 ‘AI 커버곡 사례를 통해 본 생성형 AI의 법률 문제’ 논문을 통해 “음성권 침해라는 불법 행위 책임의 인정은 개인의 명예와 신뢰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수준의 위법성이 인정돼야 한다. AI 커버곡을 유튜브와 같은 웹사이트에 공개하는 이용 행태만으로 인격적 이익이 침해되는 정도에 이르렀다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설명했다.
AI 콘텐츠 제작자의 소유권을 인정받기도 쉽지 않다.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는 AI 생성물의 저작권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저작권법에 따라 인간의 창의성 기술, 노력의 결과로 만든 고유한 창작물만 저작권법상 저작물로서 보호가 가능하다. 방통위는 사람이 AI가 생성한 결과물에 창작적 표현을 추가했다면 그 기여 부분에 대해서는 저작권을 가질 수 있다고 해석하고 있다. 단, 해당 저작권 등록의 효력은 추가 작업한 부분에 한한다.
‘표절과 도용 문제’도 정리해야 할 부분이다. AI가 생성하는 콘텐츠 중 표절과 도용의 범위를 교묘하게 비껴가는 사례는 많다. 표절 검증 서비스 ‘카피킬러’를 운영하는 국내 기업 무하유가 카피킬러 이용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응답자의 87.1%가 평소 업무나 과제물 작성에 챗GPT를 활용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챗GPT는 이미 온라인 상에 퍼져 있는 수많은 논문과 책들의 내용을 학습한 것이기에 해당 결과물이 표절과 도용 문제에서 무결하다고 할 수 없다.
한때 취업준비생들이 AI 프로필을 이력서 증명사진으로 사용하는 것에 대해 갑론을박이 있었다. 자신의 사진 수십 장을 활용해 만든 것이기에 ‘포토샵으로 내 얼굴을 수정한 것과 다를 바 없다’는 주장과 ‘AI 프로필은 보정 정도가 과도해 본래의 자신의 얼굴을 비슷하게 바꾸는 위조와 다를 바 없다’고 주장이 충돌했다. 행정안전부가 지난해 전국 지방자치단체에 ‘AI프로필 사진은 주민등록증에 사용할 수 없다’고 안내하면서 기업 이력서에도 AI 프로필을 사용하지 못하는 방향으로 정리되고 있다.
심지어 AI 기술이 범죄에 악용되고 있기도 하다. 지난 8일에는 연예인 얼굴을 합성해 유튜브 채널을 개설한 뒤 도박자를 모집해 3800억 원을 부당이득을 챙긴 일당이 경찰에 붙잡히기도 했다. 보이스피싱은 AI 피싱으로 진화했다. 가족과 지인의 얼굴과 목소리를 딥페이크 기술로 모방해 영상 통화 등으로 돈을 뜯어내고 있다. 각종 커뮤니티 사이트에서는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을 때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아야 한다는 조언이 적지 않다. “여보세요” 등 말 몇 마디만 녹음해도 수신자의 목소리를 AI 기술로 재생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명주 서울여대 정보보호학과 교수는 “권리나 재산에 피해를 주는 일이라면 법을 동원하고, 피해 속도가 상당하고 원상 복귀가 불가능하다면 가중 처벌을 해서라도 막는 게 맞다고 본다”고 강조하면서도 “단점보다 장점이 많은 AI 기술을 무조건 사용하지 말라고 하는 것보다 사회적인 합의를 통해 자율적으로 규제되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향후 나올 신기술에 대해서는 ‘사전평가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바람직할 수 있다는 제안도 있다. 현재로서는 사건·사고가 발생한 후에야 법과 제도를 정비하기 때문이다.
김명주 교수는 “정부가 교통·환경 문제들을 예측·분석하기 위해 교통영향평가나 환경영향평가를 실시하는 것처럼 새롭게 도입될 기술에 대해서도 사회가 어떤 영향을 받을지에 대한 선제적인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찬웅 기자 roone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