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초 기반 쌓기 주력, 이준석·김기현 전철 밟나 우려…야권 절대 강자 이재명 존재 부담 “채 해병 특검 출구부터”
#최고위 '친한' 과반, 친정체제 구축
한 대표는 당대표 취임 직후 내 사람을 심는 인사부터 꼼꼼히 챙겼다. 친정체제 구축 작업의 일환으로 읽혔다.
한 대표는 8월 5일 김종혁 지명직 최고위원과 정성국 조직부총장, 신지호 전략기획부총장, 곽규택·한지아 수석대변인 등 주요 당직 인선을 발표했다. 김상훈 신임 정책위의장도 이날 의원총회를 거쳐 추인됐다. 김종혁 전 조직부총장을 지명직 최고위원에 앉히면서 친한계는 최고위에서 장동혁 최고위원과 진종오 청년최고위원을 포함해 과반을 확보했다.
당직 인선 과정에서 불협화음도 들리긴 했다. 임명된 지 몇 달 되지도 않은 친윤 정점식 정책위의장 교체를 밀어붙이면서였다. 정 전 위원장이 “물러날 뜻이 없다”는 의사를 밝히고 한 대표가 사퇴를 압박하는 발언까지 하면서 친윤계 반발이 감지됐다. 그럼에도 한 대표는 교체 뜻을 굽히지 않았고, 용산에서도 이를 수용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줬다.
한 대표는 이 와중에서도 무리한 모험을 하지는 않았다. 수도권 측근 의원 대신 TK(대구·경북) 출신으로 계파색이 거의 없는 김상훈 의원을 정책위의장으로 선택했다. 물론, 당의 주류인 친윤계의 반발을 누그러뜨리려는 동시에 최대 지지기반인 TK를 끌어들이기 위한 의도였다.
소통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의식한 듯 당내 인사들을 두루 만나는 식사 정치도 가동했다. 한 대표는 8월 19일 서울 여의도 한 식당에서 상임고문단과 오찬 간담회를 했다. 정의화 전 국회의장, 유흥수 전 의원 등 당 원로들로 구성된 상임고문단은 지도부에 주요 현안에 대한 여론과 의견을 전달하는 역할을 해왔다.
한 대표를 비롯한 지도부는 같은날 오후에는 전국 시·도당 위원장과 만나 지역별 현안과 건의 사항 등을 들은 뒤 여의도의 한 식당에서 만찬을 했다. 한 대표는 이에 앞서 당 중진 의원들과 잇따라 식사 자리를 가지며 현안과 관련한 당내 의견을 수렴했다. 8월 29일부터 이틀간은 당 의원 전원이 참석하는 단합대회 성격의 연찬회도 예정돼 있다.
한 대표는 보수정당 약한 고리인 약자 배려 정책에도 초점을 맞췄다. 교육·문화·지역·자산 등 다양한 분야에서의 격차 문제를 다룰 ‘격차해소특별위원회(위원장 조경태)’를 신설했다. 한 대표는 8월 19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고속 성장의 결과로 ‘격차의 위기’를 맞게 됐다”며 “대한민국의 우상향은 개별 국민 삶의 우상향과 동반될 경우 의미를 가질 수 있다”고 했다.
한 대표가 법무부 장관 시절 보였던 싸움닭 이미지는 그동안 찾아볼 수 없었다. 김경수 전 경남지사에 대한 윤석열 대통령 복권 조치에 대해 “법치에 반하므로 반대한다”는 뜻을 드러낸 것으로 알려졌지만 전언으로만 나왔을 뿐 그가 직접 나서지는 않았다.
8월 13일 김경수 전 경남지사의 복권이 확정된 뒤 서울 여의도 한 식당에서 당 중진 의원들과 오찬을 마치고 기자들을 만나자 “공감하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분이 많을 것 같다”고 운을 떼긴 했지만 “결정된 것이기에 제가 더 이상 언급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용산과의 전면전을 경계한 것이다.
집권당 대표다운 ‘통 큰’ 행보가 나오지 않고 있는 것은 한 대표에게도 부담이다. 광복절을 전후로 야당은 여권을 겨냥해 친일 공세를 폈다. 하지만 한 대표의 특유의 받아치기 역량을 보여주지 못했다. 그가 전당대회 과정에서 호기롭게 외친 ‘제3자 추천 채 해병 특검법’ 입법도 지키지 못할 공수표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국민의힘에선 특검법 발의 움직임이 없고 당내에서는 그가 임명한 김상훈 정책위의장조차 특검법에 대해 부정적 의사를 분명히 했다. 추경호 원내대표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야당은 특검법 수용 압박 강도를 높이고 있다.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8월 16일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민주당은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언급한 제3자 추천안도 수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 대표는 채 해병 사망사건 수사외압 의혹에 김건희 여사가 연루됐다는 제보가 민주당 인사들 공작으로 이뤄졌다는 ‘제보 공작 의혹’도 특검으로 규명하자는 조건을 달았다. 민주당은 이마저도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보이면서 한 대표는 곤혹스럽게 됐다. 민주당은 한 대표가 어정쩡한 모습을 계속 드러내자 “당선된 뒤에 발을 뺀다” “추가 조건을 덧붙이며 갈팡질팡하는 태도”라며 한 대표를 거듭 압박했다.
#첫 단추 잘 끼워야 하는데
최근 몇 년간 국민의힘 당대표들은 첫 출발이 좋지 않았다. 첫 단추부터 제대로 끼우지 못하면서 임기를 채우지 못한 사례도 많았다. 국민의힘이 비대위 체제를 연발했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한동훈 대표처럼 팬덤의 강력한 지지 속에 2021년 6월 당권을 쥐었던 이준석 전 대표는 서울시 공용 자전거 ‘따릉이’를 차고 출근하는 사진이 여러 신문에 도배되면서 취임 초기부터 큰 주목을 끌었다. 또 관례를 깨고 토론 배틀로 대변인단을 선출하는 등 헌정사상 첫 30대 당수로서 ‘신선한 충격’이 이어졌다.
하지만 초보운전 실력은 한 달도 안 돼 여러 문제를 일으켰다. 급하지도 않은 의제를 건드면서 불필요한 논란을 샀고, 정무 미숙 질타가 쏟아졌다. “역할을 못한다”면서 여성가족부 폐지 언급을 했다가 당내에서 비판을 받았고 내친 김에 통일부 폐지론까지 꺼내들었다가 더 큰 반발에 직면했다.
공직 후보자 자격시험을 들고 나왔다가 당시 김재원 최고위원 등과 의견충돌을 빚었고 “말이 너무 많다” “방송패널에서 못 벗어났다” 등의 비판이 봇물을 이뤘다. 취임 한 달여 만에 결국 대형사고가 났다. 송영길 민주당 대표와의 만찬 회동에서 이준석 대표가 추경을 통한 전국민 재난지원금 지급에 덜컥 합의한 것이다.
“실망스러운 판단(원희룡 당시 제주지사)” “제왕적 당대표(윤희숙 당시 국민의힘 의원)” “전 국민에 용돈 뿌리기는 그만(홍준표 당시 국민의힘 의원)” 등의 비판이 꼬리를 물었다. 추경 협상을 주도하는 원내 지도부와의 조율 없이, 그것도 1시간여의 짧은 만남에서 무려 33조 원 규모에 이르는 추경 의제를 다룬 것을 두고 당대표 리더십 부재라는 난타가 이어졌다.
결국 초반부터 흔들린 이 전 대표는 오래 버티지 못한 채 윤석열 당시 대선후보와의 불화를 겪으며 당을 떠나야 했다. 경험 부족에다 위기관리 능력 부재가 당대표 등판 초기부터 그를 위태롭게 만들었다.
이준석 체제가 무너지고 비대위로 간 뒤 2023년 3월 등장한 김기현 대표도 취임 한 달도 안 돼 여러 악재로 고전을 면치 못했다. 국회의원에다 울산시장, 원내대표 경력까지 갖춘 정치9단급이었지만 김 대표는 당권을 쥐자마자 비틀거렸다.
극우 성향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를 둘러싸고 논란이 벌어지는 과정에서 자신의 리더십을 문제 삼은 홍준표 대구시장을 당 상임고문에서 전격 해촉, 보수진영 ‘빅 스피커’인 홍 시장과 갈라선 것은 물론이고 당 안팎에서 ‘뺄셈 정치’를 한다는 비판이 쇄도했다.
홍 시장은 해촉 직후 페이스북 글을 통해 김 대표를 겨냥, “손 잡고 가야 할 사람은 손절하고 손절해야 할 사람에게는 손절당하는 치욕스런 일이 생기게 됐다”며 “귀에 거슬리는 바른 말은 손절·면직하고 당을 욕설 목사에게 바친 사람 처리는 어떻게 하는지 지켜보겠다”고 날을 세웠다.
당시 천하람 국민의힘 전남 순천갑 당협위원장도 “이준석, 나경원, 유승민, 안철수, 이제는 홍준표 지지자까지 밀어내면 당 지지율이 어떻게 남아나느냐”며 “김 대표의 연포탕(연대·포용·탕평)은 연대 포기탕이냐”고 때렸다. 국민의힘 한 재선 의원 말이다.
“이준석 전 대표는 원외고 아직 젊어서 그랬다고 치지만, 김 전 대표의 경우 의외였다. 정치 경력은 물론이고 용산의 지지를 받고 있는데도 당 운영에 어려움을 겪었다. 한동훈 대표는 원외, 정치초보, 용산과의 갈등 등 여러 리스크를 안고 있다. 취임 초반 조용히 세 다지기에 주력하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본격적으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을 때 어떤 평가를 받느냐에 따라 향후 대권 가도가 좌우될 것이다.”
#한동훈 앞의 정글과 맹수
당내 세력이 부족한 한 대표는 정글과 같은 정당 내에서 입지를 제대로 구축해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일극체제’라는 말까지 듣고 있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는 상반된 처지다. 국민의힘은 지난 수년간 툭하면 당대표를 물러나게 만들고 비대위 체제를 가져왔기에 당대표권위가 바닥에 떨어져있다. 이 경로를 한 대표가 변경시켜야 하는데 그의 앞에 놓인 환경은 절대 호락호락하지 않다.
특히 당내에서는 한 대표의 ‘사람 끌어들이기’ 능력에 대해 의문을 표하는 의원들이 많다. 정치인은 스킨십을 통해 내편을 만드는데 한 대표를 봐온 국민의힘 의원들은 이 부분을 놓고 고개를 갸우뚱한다.
국민의힘 한 의원은 “팬덤이 뒤를 받쳐주고 있지만 지속적인 지지층을 만들려면 당내에서 확실한 원톱이 되어야 한다”며 “한 대표가 확고한 미래권력이라는 느낌을 당내에 심으려면 당내 구성원들과 더 많은 밀착이 필요한데 이 점에서 아직 당내의 의심이 많다”고 털어놨다.
지난 8월 19일 한 대표를 만난 당 상임 고문단도 이와 관련해 한 대표에게 쓴소리를 쏟아낸 것으로 알려졌다. 비공개로 진행된 간담회에서 유흥수 전 주일 대사(87)는 “한 대표의 머리는 검증됐지만, 가슴으로 정치할 수 있느냐에 대해서는 검증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언급, 한 대표가 진정한 정치인이 되기 위해서 달라져야 할 부분이 많다는 주문을 냈다.
당에선 한 대표가 일단 자신의 입으로 쏘아올린 채 해병 특검법이 사실상 입법이 어려운 상황으로 흐르는 만큼 어떻게든 이 부분에 대한 출구부터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명분을 찾는 한편 개연성 있는 논리를 개발해 “이래서 안됐다”는 메시지를 수용성 있도록 내놓고, 세력을 규합해 이를 동의와 지지로 직결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이재명이라는 야당의 강력한 지도자와도 맞서야 하는 몹시 어려운 상황도 그의 앞에 놓여 있다. 이 대표 전당대회 지지율이 말해주듯 그는 김대중 전 대통령과 비교될 정도로 현재 야권에서는 절대 강자의 자리에 올라 있다. 정치 입문이 얼마 되지 않은 한 대표가 넘어서기에는 버거운 존재일 수밖에 없다. 야당복이 아예 없는 셈이어서 한 대표 위치는 더욱 불안한 실정이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최경철 매일신문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