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와 정면충돌’ 박근혜 벤치마킹? 그와 달리 정치 기반 없어…선택적 차별화 전략 가능성
#4번째 불협화음, 논란 예상하고도…
김경수 전 지사가 8·15 광복절 특별사면·복권 대상자에 오른다는 소식이 8월 10일을 전후해 전해진 뒤 한 대표 측에서 “분명하게 반대한다”는 입장이 나왔다. ‘민주주의 파괴 범죄를 반성하지도 않은 사람에게 정치를 하라고 복권해 주는 것에 공감하지 못할 국민이 많을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김 전 지사는 ‘드루킹’ 김동원 씨 일당과 함께 문재인 전 대통령 당선을 위해 2016년 11월부터 매크로 프로그램으로 댓글 여론을 조작한 혐의로 2021년 7월 대법원에서 징역 2년을 확정 받아 지사직을 상실했다. 김 전 지사는 재판 기간은 물론, 대법 판결 이후에도 “진실이 외면당했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이런 모습을 두고 한 대표 측에서 복권 불가 목소리를 낸 것이었다.
김 전 지사는 2022년 12월 윤석열 정부 신년 특별사면에서 5개월여의 잔여 형기 집행을 면제받았지만 복권되지는 않았다. 이번 광복절 특사·복권으로 그는 정치 재개가 가능하게 됐다. 이를 두고 정치권 일각에선 유력 차기주자 ‘이재명’을 염두에 두고 야권 갈라치기에 나섰다는 해석이 나오기도 했다.
한 대표 측 태도에 용산에선 불편한 심경을 숨기지 않았다. 친윤계 의원들은 물론, 일부 중진 의원들과 당의 상당수 원로들도 용산과 똑같은 신호를 발신하며 한 대표를 때렸다. 전당대회에서 한 대표와 경쟁했던 윤상현 의원은 8월 10일 페이스북을 통해 “사면권은 대통령 고유 권한이고, 삼권분립과 법치의 틀 안에서 이뤄질 것”이라며 “국민통합과 협치를 위한 대통령의 더 큰 생각과 의지가 있을 것이다. 대통령의 생각을 믿고 기다릴 때”라고 적었다.
홍준표 대구시장도 8월 12일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법무부 장관 시절 김 전 지사를) 사면해 준 당사자”라고 한 대표를 직격한 뒤 “뜬금없이 (김 전 지사를) 사면해 준 당사자가 복권을 반대한다는 건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리고는 “그런 엉뚱한 짓 하지 말고 야당이 폭주하는 국회 대책이나 세우는 게 급선무이지 않나”라고 날을 세웠다.
8월 13일 김경수 전 경남지사 복권이 확정되자 한 대표는 일단 숨고르기에 나섰다. 그는 서울 여의도 한 식당에서 당 중진들과의 오찬을 가진 뒤 기자들을 만나 “결정된 것이기에 제가 더 이상 언급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대통령의 고유 권한을 존중한다는 의미로 해석하면 되느냐’는 추가 질문에 “그냥 말씀드린 대로 해석해 달라”고 말하면서 앞으로 더 나가지 않았다.
그러나 한 대표는 이날 “알려진 바와 같이 공감하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분이 많을 것 같다”는 말도 남겼다. 일반 국민들의 눈높이와 상식, 그리고 법감정에 반하는 결정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 발언으로 읽혔다.
정치권에서는 김경수 복권을 둘러싼 의견 대립 장면을 보면서 윤·한 충돌이 더 이상 변수가 아닌, 상수가 됐다고 분석한다. 한 대표는 윤 대통령과의 차별화 노선을 주경로로 삼은 것이 확실시되고, 이에 맞서 용산은 한 대표에 대한 방어막을 세우고 다양한 역공 준비를 할 것이라는 게 여권 안팎의 일관된 얘기다.
윤·한 충돌은 한 대표의 비대위원장 시절인 지난 1월부터 이어지고 있다. 김건희 여사 명품백 수수 의혹을 둘러싸고 양측 갈등이 빚어지면서 당시 한 위원장을 상대로 용산의 사퇴 요구까지 나왔다. 3월엔 해병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 외압 의혹 당사자인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 호주 대사로 가는 것을 두고 한 위원장이 ‘즉각 귀국 후 소환조사’ 입장을 내놓으면서 전운이 감돌았다.
지난 7월 전당대회 기간 중에는 김건희 여사의 문자를 한 대표가 무시했다는 이른바 ‘읽씹 논란’으로 인해 3차 충돌이 빚어졌다는 해석이 나왔고, 이번 김 전 지사 복권 과정까지 포함하면 벌써 4번째 불협화음이 노출됐다.
특히 마음만 먹으면 윤 대통령과 언제든지 교감할 수 있는 한 대표가 보안을 지키지 않은 채 이번에 복권 반대 의사를 외부 노출한 점에 정치권은 주목한다. 여당의 리더가 된 뒤 무언가 성과가 필요한 한 대표가 김 전 지사 복권 반대를 자신의 정치적 지렛대로 삼으려했다는 해석이 당 안팎에서 퍼지면서다.
국민의힘 한 초선 의원은 “당대표가 대통령 고유 권한인 복권에 대해 반대 의사를 공개적으로 드러내면 당이 시끄러워질 것이 뻔하고 실제로 여러 파찰음이 나오면서 언론으로부터 두들겨 맞았는데도 이런 결정을 한 것을 보면 무언가 노림수가 있는 것”이라며 “김 전 지사의 선거법 위반에 대해 관용 없는 모습을 보이면서 불법과 절연하고 법치를 수호하는 한 대표의 정의로운 모습을 보여주려는 의도로 풀이된다”고 했다.
#박, 삐딱선 타며 정권 재창출 '유일'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 때 당원 투표에서는 이기고도 일반 여론조사에서 밀려 이명박(MB) 후보에게 대선 후보 자리를 내줬다. 충격적 패배였지만 박 전 대통령은 깨끗이 승복하는 연설로 치열했던 그 해 대선 경선을 마무리했다. 예전부터 그에게 붙어있었던 별칭이었지만 원칙과 신뢰의 정치인이라는 이미지가 강화됐다.
이후에는 현직 대통령 위세에 밀려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내지 못하던 박 전 대통령이었다. 그런데 MB가 노무현 정부 때 이미 ‘대못이 박힌’ 세종시를 중앙부처 이전이 아닌 기업도시로 바꾸자는 내용의 세종시 수정안을 2009년 내자 원칙과 신뢰를 다시 들고 나왔다. 아무리 당시 야당이 여당 때 편 정책이지만 이미 정해진 이상 국민과의 약속으로 받아들이고 이를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이유였다.
청와대와 친이계는 “우리 편이 아니라 저쪽 편을 든다”며 박 전 대통령을 배신자로 몰아붙이며 맹공했다. 당의 주류가 친이계인 상황에서 박 전 대표는 사실상 혈혈단신으로 세종시 수정안 반대편에 선 채 뛰었다. 현직 대통령과 각을 세우는 그를 보고 보수 지지층의 여론도 나빠졌다. 혼자 고집을 부린다는 프레임이 박 전 대통령에게 씌워졌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은 뜻을 굽히지 않았고 2010년 6월 29일 세종시 수정안 반대토론자로 직접 국회 본회의장 단상에 올랐다. 친박계 의원들도 예상하지 못했던 깜짝 등단이었고 좀처럼 공개 발언을 하지 않았던 박 전 대통령의 스타일을 완전히 바꿔놓는 장면이었다. 그는 이날 “세종시 문제는 미래의 문제”라고 규정한 뒤 “미래로 가려면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는 신뢰가 있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회 본회의장에 나타난 박 전 대통령 의상도 이른바 ‘전투복’이라 불리던 회색 바지 차림이었다.
MB를 향한 박 전 대통령의 삐딱선은 결국 성공을 거뒀다. MB가 야심차게 내세운 세종시 수정안은 국회의 벽을 넘지 못했고 MB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MB는 약속을 지키지 않으려다 기업도시라는 공수표를 남발한 대통령이 됐고, 박 전 대통령은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는 원칙과 신뢰의 정치인으로 각인됐다.
박 전 대통령은 세종을 행정수도로 확정시킨 사실상 일등공신이 됐고 확고한 영남 기반에 이어 중원 충청권을 거머쥐는 계기가 됐다. 2010년 MB의 세종시 수정안을 뒤집어놓은 박 전 대통령은 이듬해인 2011년 비대위원장에 오르면서 당권을 다시 차지했다. 그리고는 2012년 봄 총선 승리를 거둔 뒤 여세를 몰아 여당의 대선 후보가 됐다.
친박계 한 전직 의원은 “현직 대통령 정책에 대놓고 반대를 하면서도 정권 재창출을 이뤄낸 것은 박근혜 사례가 유일하다”며 “박 전 대통령의 경로가 성공한 것은 결국 사익 추구가 아니라 원칙과 신뢰라는 정도를 내세운 덕분인데 정치에서는 잔기술도 중요하지만 그만큼 대의명분이 중요하다는 의미로 한동훈 대표도 이를 새겨들어야할 것”이라고 했다.
#한, 하이브리드 전술 펼 듯
한 대표와 박 전 대통령 조건은 너무나 다르다. 무엇보다 박 전 대통령은 강한 고정 지지층을 갖고 있었다. 한국 정치가 지역정치 기반을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는 처지에서 박 전 대통령은 보수정당의 최대 지지층인 영남에서 압도적인 지지세를 갖고 있었다.
한 대표는 보수정당 정치인으로는 이례적으로 팬덤층을 갖고 있지만 콘크리트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게 정치권의 일관된 목소리다. 그는 국민의힘에 압도적인 지지세를 주는 영남 출신이 아니라 스윙보터가 대다수인 서울 태생이다. 한국의 정치인에게 충성도가 가장 높은 지지는 이러한 팬덤보다는 지역에 기반한 지지층에서 나오는데 이 부분에서 한 대표는 박 전 대통령에 비해 열세다.
한 대표가 용산과의 정면충돌을 최소화하기 위해 박 전 대통령처럼 전면전보다는 하이브리드 전술을 펼칠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배경이다. 원칙과 신뢰의 법치주의 지향형 정치인이라는 고정 이미지를 가지돼 특정 사안에 대해서만 용산과 각을 세우는 선택적 차별화를 택할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향후 2년 가까이 전국 단위 선거가 없다는 점에서 현직 대통령 힘이 급격히 약화되는 현상 변경의 기회가 만들어지기가 힘들다는 것을 감안하면 한 대표가 차별화를 위해 내밀 카드 역시 많지 않다. 현직 대통령과의 전면전을 펼칠 만한 무대가 만들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국민의힘 재선 의원은 “선거가 있으면 진짜 실력자에게 세력이 쏠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당분간은 그러진 않을 것이고, 윤 대통령이나 한 대표 역시 굳이 충돌할 이유가 없는 상황”이라면서 “한 대표로선 후일을 대비해 기반 쌓기에 총력전을 벌일 것으로 점쳐진다”고 했다. 국민의힘 한 당직자도 “정치는 판을 키워야 힘이 생기는데 한 대표도 일단 당내에서 더 많은 세력을 규합해야 큰 상처 없이 어떤 전술이라도 먹힐 것”이라고 내다봤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최경철 매일신문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