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대 총선 공천 탈락 인사 ‘초일회’ 결성…10월 이재명 1심 선고 이후 움직임 본격화 전망
‘이재명 일극체제’가 완성됐다. 8월 18일 이재명 대표는 전당대회(전국당원대회) 당대표 경선에서 최종 85.40% 득표율로 연임에 성공했다. 2022년 전당대회에서 자신이 기록한 77.7% 득표율을 넘어섰을 뿐만 아니라, 민주당 대표 선거 역대 최고 득표율을 기록했다. 민주당 계열 정당에서 당 대표 연임에 성공한 것은 1995∼2000년 새정치국민회의 총재직을 맡은 고 김대중 전 대통령 이후 두 번째다.
최고위원 경선에선 ‘명심’(이재명 후보의 마음)을 등에 업은 김민석 후보가 1위를 차지했다. 전현희 한준호 김병주 이언주 후보가 선출됐다. 5명 모두 ‘이재명 마케팅’을 외쳐온 강성 친명계 인사들이다. ‘명팔이’(이재명 팔이)를 비판하며 친명계와 대립각을 세웠던 정봉주 최고위원 후보는 초반 선전에도 불구하고 6위로 지도부 입성에 실패했다.
정봉주 후보 탈락은 외연 확장을 꾀해야 하는 ‘이재명 대권가도’에 오히려 걸림돌이 될 것이란 분석이다. 이 대표의 강성 팬덤이 정 후보 탈락을 견인했던 만큼 다양성 없는 당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강성 팬덤 영향력이 차기 대권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란 우려가 당내 팽배하다.
8월 19일 복기왕 민주당 의원은 KBS ‘전격시사’에서 “정봉주 후보가 했던 말 자체가 그릇된 말은 아니다”며 “이재명 대표 한 사람만 보고 한 사람 중심으로만 또 이재명 대표가 갖고 있는 그 정치적 범위 내에서만 움직인다면, 민주당의 집권이라고 하는 것은 멀어질 수밖에 없는 것 또한 사실이고 현실”이라고 말했다.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이재명 대표가 지명직 최고위원 등 당직 인선에서 계파 안배를 고려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친명계 좌장 정성호 민주당 의원은 일요신문 인터뷰에서 “다양성을 담기 위한 당직을 구성하면서 통합적인 행보를 보여주면 우려가 해소될 것”이라며 “당내 민주성 강화와 다양성 확보를 통해 목소리가 나올 수 있도록 당대표가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강성 지지자 목소리가 과도하면 적극적으로 자제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관련기사 [인터뷰] 친명 좌장 정성호 “이재명 일극체제, 윤 대통령이 만들어”).
2기 지도부 주요 인선에선 이러한 당 우려가 어느 정도 반영됐다. 조승래 의원은 수석대변인에 임명됐다. 과거 안희정계로 분류됐던 조 수석대변인은 계파색이 옅은 인사로 분류된다. 진성준 정책위의장은 유임됐다. 진 정책위의장은 최근 이 대표의 종합부동산세(종부세) 완화와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유예에 반대한 만큼 교체 가능성이 점쳐진 바 있다.
이 대표는 정책위 수석부의장에 이정문 의원을, 정책위 상임 부위원장에 임광현 안도걸 의원을 임명했다. 임광현 안도걸 의원은 당내 세제 개편안을 주도하고 있는 만큼 이 대표 외연 확장을 위한 ‘우클릭’ 정책을 뒷받침할 것으로 보인다. 8월 20일 임 의원은 상속세 부담을 완화하는 법안을 대표발의했다. 안 의원은 이 대표 공약인 ‘전 국민 25만 원 지원법’의 재원을 조달하기 위해 국가재정법 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하지만 친명계는 여전히 당 주요 보직에 포진해 있다. 이해식 천준호 의원은 각각 당대표비서실장, 전략기획위원장에 임명됐다. 전략기획위원회 수석 부위원장으로는 정을호 박선원 의원이 발탁됐다. 박균택 이용우 의원이 맡았던 당 법률위원장에는 ‘대장동 변호사’ 출신 이태형 변호사가 합류했다. △김윤덕 사무총장 △김우영 당대표 정무조정실장 △한민수 황정아 대변인 △황명선 조직사무부총장 △박지혜 디지털전략사무부총장 △한웅현 홍보위원장 등은 유임됐다.
지명직 최고위원을 호남 출신 인사로 채울지도 관심이 집중된다. 민주당 전당대회 최종 권리당원 온라인 투표율에서 전북(20.28%) 전남(23.17%) 광주(25.29%) 등 호남에서 모두 20%대 초중반에 머물며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민주당이 호남을 홀대하고 있다는 비판이 곳곳에서 나온다.
당내에선 전남 영광, 곡성군수를 뽑는 10월 재보궐 선거에서 조국혁신당에 밀릴 수 있다는 전망이 제기됐다. 조국혁신당은 22대 총선 당시 호남에서 비례대표 지지율 1위를 차지한 바 있다. 호남은 문재인 전 대통령이 2016년 총선을 앞두고 “호남이 지지를 거둔다면 정계 은퇴는 물론이고 대선에도 불출마하겠다”고 밝힐 정도로 그 의미가 남다른 곳이다. 이재명 대표도 호남 지지를 받지 못한다면, 대선 재도전은 험난할 수밖에 없다.
우상호 전 민주당 의원은 8월 21일 MBN ‘지하세계-나는 정치인이다’에서 “조국혁신당이 아무리 우당이라지만, 당이 다르다”며 “민주당이 스스로 잘해서 지지율이 훨씬 더 압도적으로 가게 만드는 노력을 해야 한다. 조국혁신당에 가 있는 호남 지지층은 어떻게 할 거냐. 친문 지지층은 어떻게 할 거냐. 이번에 전당대회 때 문재인 대통령 축사를 보고 야유가 나왔다. 친문 지지층들은 상처받는다. 우리 편 안에서도 조금씩 균열이 생기면 (지난 대선에서) 0.73%포인트로 진 게 더 벌어지지, 복원될 가능성이 없다”고 말했다.
이재명 일극체제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들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비명계에선 세 결집 채비에 나섰다. 22대 총선 공천 때 탈락한 박광온 박용진 송갑석 강병원 양기대 윤영찬 전 의원 등 비명계 인사들은 8월 15일 ‘초일회’라는 모임을 결성했다. 김경수 전 경남지사가 광복절 특별사면으로 복권된 데 이어 친문계 정책연구 모임인 민주주의 4.0은 8월 28일 서울 종로구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시민센터’에서 총회를 열 예정이다. 송기헌 김영배 민주당 의원이 각각 이사장과 연구원장을 맡는다. 김부겸 전 국무총리도 강연과 인터뷰 등으로 정치 활동 재개에 나선다.
8월 16일 김두관 민주당 당대표 후보는 YTN ‘신율의 뉴스정면승부’에서 “김경수 지사의 복권은 (비명계) 비주류 쪽의 구심점이 될 수 있다”며 “‘민주주의 4.0’ (최근) 구심력이 떨어졌고 그래서 좀 유야무야됐는데, 최근에 모임을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아마 ‘민주주의 4.0’하고도 (김경수 전 지사가) 결합을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8월 23일 김규완 CBS 논설위원은 CBS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서 “(초일회가) 생각하는 분은 일단 김동연 지사, 김부겸 전 총리를 염두에 좀 두고 있다. 그렇지만 아직은 좀 열려 있는 단계”라며 “이재명으로는 안 된다는 걸 명확히 하고 이제 세력화에 나서겠다고 공식적으로 얘기를 했다. (초일회는) 이재명 대표에게 복수혈전을 꿈꾸는 레지스탕스 모임”이라고 말했다.
이런 비명계의 움직임은 10월 초 나올 이재명 1심 선고가 분수령으로 꼽힌다. 유죄 선고 시 그동안 숨죽였던 야권 잠룡들이 기지개를 켜면서 야권지형이 요동칠 수 있기 때문이다.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과 위증교사 사건 선고는 10월 말 또는 11월 초쯤 나올 것으로 점쳐진다.
정가에선 비명계가 별다른 힘을 발휘하지 못할 것이란 전망도 적지 않다. 8월 22일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이재명이 비교적 짧은 시간에 당을 완전히 장악했다. 친노, 친문이 존재하는지 아무도 모르는 상태”라며 “그 자체는 이재명의 능력이라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 민주당 내에서는 이재명 대표를 상대해서 경쟁할 인물이 없다”고 평가했다. 이어 “1심에서 좀 불리한 상황이 나왔다고 그래서 현재 체제가 흔들리거나 그러지는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전 위원장은 “김부겸 총리는 본인 스스로 당내 위치가 어떻다는 것을 너무 잘 알기 때문에 감히 시도를 하지 않는다”며 “김경수 지사가 다음에 대권 후보감 등등 했는데 그 사람이 정치 경력으로 봐서 금방 그렇게 부각이 될 수 있는 사람이 아니고 솔직히 말해 지금 민주당에 들어가 뭘 할 수 있겠냐”고 반문했다. 민주주의 4.0 소속 한 민주당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22대 국회에서 모임을 정비하는 것일 뿐이다. 초일회도 낙선한 사람들끼리의 만남으로, 자연스럽다. 정치인이 뜻 맞는 사람끼리 모임도 하고, 필요하면 목소리도 내는 거 당연한 것 아니냐. 국민뿐 아니라 당내에서 ‘강 대 강’ 대치에 불만 제법 있다. ‘야당 단독 법안 처리→대통령 거부권→재표결·법안 폐기’를 반복해선 안 된다. 당 지지율도 안 좋지 않나. 지도부도 변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정기 국회 이후 분위기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비명계가 조직화해서 목소리는 내는 상황은 아닌 것 같다.”
허일권 기자 oneboo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