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선수단장·부단장 회사와 정몽규 회사까지 납부…체육계 “선수나 인프라에 썼어야, 비상식적 구태”
대한체육회는 2024 파리 올림픽 참관단 파견에 활용한 기부금을 지방자치단체 체육회장, 종목단체장들로부터 받은 것으로 파악됐다. 특히 파리 올림픽 대한민국 선수단 단장과 부단장이 3억 원 이상 기부금을 냈다. 올림픽 참가와 인연이 닿지 않은 종목단체 회장사들도 기부금을 납부했다.
대한체육회는 2024 파리 올림픽이 열리는 기간 동안 4박 6일 일정으로 세 차례에 걸쳐 참관단을 파견했다. 1차 32명, 2차 40명, 3차 26명이 참관단 자격으로 현지를 방문했다. 항공권을 제외한 숙박, 식비, 차량, 통역 등 체류비는 대한체육회가 부담했다. 참관단은 올림픽 관람 외에도 파리 시내 인근 지역 박물관 및 전시회 관광을 하는 데에도 돈을 쓴 것으로 전해졌다.
참관단 파견에 쓰인 돈은 6억 6355만 원가량이다. 파견단엔 지자체 체육회 회장, 부회장, 사무처장 등이 주로 포진해 있었다. 체육과 큰 관련이 없는 대한체육회 협력사 주요 관계자나 대한불교조계종 산하 관계자들도 참관단 명단에 포함돼 뒷말이 나왔다.
대한체육회는 참관단 파견 논란과 관련, ‘국제대회 개최 노하우 습득’이라는 명분을 내세웠다. 여기다 정부 지원금 대신 기부금을 썼다는 부분도 언급하고 있는 상황이다. 체육계 한 관계자는 “자체적으로 자금을 마련해서 파견단을 파견해 문제가 없다는 부분을 강조하려는 취지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파리 올림픽 개막 전부터 체육계에선 올림픽 선수단장과 부단장이 대한체육회에 기부금을 납부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한 체육계 유력 인사는 “올림픽 선수단장과 부단장이 임명 후에 기부금을 낸 것인지, 기부금을 내는 조건으로 단장과 부단장이 된 것인지는 알 수 없다”면서 “그들이 기부금을 냈다는 이야기는 공공연하게 돌고 있는 비밀”이라고 했다.
일요신문이 입수한 대한체육회 내부 문건에 따르면, 참관단 지원 항목으로 포함된 기부금은 법인 5곳과 개인 2명이 납부한 것으로 나타났다. 문건엔 ‘참관단 재원은 자체 예산으로 운영되며, 자체 예산 중 기부금(참관단 지원)을 우선으로 사용하고 부족분은 자체 예산으로 사용할 계획’이라고 명시돼 있었다.
가장 많은 기부금을 낸 곳은 주식회사 피앤(2억 5000만 원)이었다. 파리 올림픽 선수단장을 맡은 정강선 전북도체육회장이 대표이사로 재직 중이고, 지분 45.37%를 보유하고 있는 기업이다. 정강선 단장은 향후 ‘체육계 대권’을 노릴 만한 인사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주식회사 태인도 5000만 원을 기부했다. 주식회사 태인은 이상현 대한하키협회 회장이 대표이사다. 이상현 회장은 이번 파리 올림픽에서 선수단 부단장을 맡았다. 기부금 5000만 원을 납부한 개인 중 한 명은 이인정 전 대한산악연맹 회장이다. 이인정 전 회장은 이상현 회장 부친이다. 주식회사 태인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기업 지분 100%를 이인정 외 특수관계인 4인이 보유하고 있다고 명시돼 있다.
선수단 부단장을 맡은 이상현 대한하키협회장 일가가 1억 원을 기부금으로 쾌척한 셈이다. 이 회장은 LS그룹 일가다. 이 회장 외할아버지가 구태회 전 LS그룹 명예회장이다. 구 전 명예회장은 LG그룹 창업주 구인회 전 회장 동생으로 6선 국회의원, 국회부의장 등을 지내고 LS그룹을 경영했다. 그의 장남은 구자홍 전 LS그룹 회장이다. 차녀 구혜정 씨 차남이 이상현 대한하키협회장이다.
태인은 1990년부터 태인체육장학금을 통해 엘리트 체육인을 지원해왔다. 파리 올림픽 메달리스트 중에도 양궁 김우진, 임시현, 김제덕, 역도 박혜정, 사격 오예진 등이 태인체육장학생 출신이다. 문건에 따르면 올림픽 선수단장, 부단장 측에서 나온 기부금은 3억 5000만 원 규모다.
이 밖에 이종훈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회장이 이끄는 주식회사 디와이씨가 기부금 1억 원을 냈고, 정석 대한볼링협회장이 5000만 원을 기부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이 이끄는 HDC와 HDC현대산업개발도 각각 5000만 원씩 총 1억 원을 기부했다. 두 기업이 기부한 기부금도 ‘참관단 지원’ 명목으로 활용된 것으로 파악된다.
또 다른 체육계 관계자는 “참관단을 파견하는 것과 관련해선 관행적인 측면도 분명 있겠지만, 기부금을 참관단에 쓰는 것은 문제라고 본다”면서 “선수단장, 부단장, 종목단체 수뇌부로부터 받은 기부금에 대한 생색을 대한체육회장이 다 내는 것 아닌가”라고 비판했다.
김현수 체육시민연대 집행위원장은 일요신문에 “기부금을 받으면 그것을 선수들 경기력 향상이나 인프라 지원 등에 활용하는 것이 상식적인 일”이라면서 “상식을 벗어난 범위에서 기부금을 활용하고 있음에도 문제의식을 못 느끼는 것이 현재 체육계의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김 위원장은 “결국 이런 부분들이 ‘구태’라고 불리는 것”이라면서 “체육계에 잘못된 관행을 고착화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문제의식을 가질 필요가 있는 대목”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일요신문은 입수 문건과 관련해 대한체육회에 여러 차례 입장을 요청했지만 답을 듣지 못했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