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정치권 ‘정산주기 단축’ 해결책 내놔…“획일적 규제가 되레 업계 망가뜨릴 수도” 우려
알렛츠 입점 업체들 중에는 티메프로 이미 피해를 입은 상태에서 또 다시 알렛츠 미정산 사태가 터지며 이중고를 겪는 곳들도 상당한 것으로 전해진다. 알렛츠가 고가의 가구‧가전 제품을 주력으로 판매하는 플랫폼이었기 때문에 일반 소비자들의 피해 금액도 비교적 큰 편이다.
유통업계에 따르면 알렛츠는 2015년 설립돼 미디어 콘텐츠와 프리미엄 쇼핑 플랫폼을 결합한 방식으로 사업을 벌여왔다. 문제는 알렛츠가 지난 16일 홈페이지에 공지문을 띄우고 “부득이한 경영상 사정으로 8월 31일자로 서비스를 종료하게 되었음을 안내드린다”고 밝힌 후부터 불거졌다.
알렛츠 입점 판매자들에 따르면 알렛츠가 공지문을 띄운 16일은 중간 정산일이었는데 당일 정산금 지급이 이뤄지지 않았다. 알렛츠 관계자들과의 연락도 두절됐다. 소비자들 역시 고객센터와 연락이 닿지 않았고 결제 후 물건을 받지 못했다는 피해 사례들이 속속 등장했다.
강신욱 알렛츠 피해판매자 비상대책위원장은 ‘일요신문i’에 “해당 쇼핑몰은 하이엔드 가구‧가전 전문이다보니 많게는 수십억씩 피해를 본 판매자들도 있다”며 “공지문 발표 이후 알렛츠 직원들도 ‘본인들은 몰랐다’ ‘윗선과 연락이 안 된다’고 얘기를 하더라”며 답답함을 호소했다.
현재는 알렛츠 전직원 45명이 모두 퇴사 처리된 상태로 피해자들의 불안감은 가중되고 있다. 29일 기준 현재 피해 소비자 모임 오픈채팅방 2곳에는 약 1600명, 판매업체 피해자 모임 오픈 채팅방 2곳에는 약 800명이 참여하고 있다.
26일부터 알렛츠의 결제대행사(PG사)인 키움페이에서 소비자 대상으로 이의제기 신청을 받고 있다. 이마저도 카드 결제 소비자들만 이의제기를 할 수 있고 현금 결제 소비자들은 직접 나서서 한국소비자원이나 금융감독원 등에 민원을 넣고 있는 상황이다. 이의제기나 피해 구제 방법 등도 피해자들끼리 오픈채팅방 등을 통해 주고 받는 정보를 통해서만 공유되고 있을 뿐이다. 지난 12일 알렛츠에서 300만 원대 세탁기를 현금결제 했다는 한 소비자는 “이사를 앞두고 세탁기를 구매했다가 물건은 받지도 못하고 구매금도 잃게 생겼다”며 “경찰‧한국소비자원 등에 민원을 넣었는데 (해결은 안 되고) 당장 세탁기는 필요해 오프라인 매장에서 급히 구매하느라 이중으로 돈을 써 경제적으로도 부담되는 상황”이라고 호소했다.
이커머스 업계에서 연쇄적으로 발생한 정산대금 지연 사태의 핵심 원인을 정부와 정치권 모두 긴 정산주기에 따른 판매대금 유용으로 보고 있다. 티몬과 위메프의 정산 주기는 최장 70일, 알렛츠는 최장 60일 수준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 인해 피해액이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는 주장이다.
이에 정부와 정치권은 이커머스 업체의 대금 정산기한을 40일 이내로 제한하는 방안을 해결책으로 내놓고 있다. 28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이커머스의 판매대금 정산기한을 설정한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법률안(전자상거래법 개정안)’은 9건 발의됐다.
정부도 이달 초 관계부처 합동으로 티메프 사태 관련 제도개선안을 발표하며 판매대금 정산기한 준수와 별도 관리 의무 등을 부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업계 관계자나 전문가들 사이에선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정산주기를 단축한다고 문제가 모두 해결되기 어려울뿐더러 오히려 획일적 규제가 이커머스 업계를 다 죽이는 꼴이 될 수 있다고 걱정한다.
26일 벤처기업협회와 코리아스타트업포럼, 초기투자액셀러레이터협회, 한국벤처캐피탈협회로 구성된 혁신벤처단체협의회는 성명을 통해 “금번 사태의 본질적인 원인은 이커머스업체의 무리한 경영과 정산대금을 관리하는 PG사, 에스크로 사업자의 전자금융감독규정 위반 등에 있다”며 “과도한 정산기한 단축은 다양한 정산방식 제공을 어렵게 해 일일정산 및 송금에 따른 비용 부담을 급격하게 증가시킨다”고 주장했다.
또 “다양한 방법으로 확보한 유동성은 소비자에게 더 나은 혜택을 제공하기 위한 재투자로 이어지는데 획일적이고 과도한 정산주기 단축은 기업들이 자금을 관리하고 운용할 수 있는 방법을 제안해 결과적으로 시장 경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정연승 단국대 경영대학원장은 지난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제42차 소비자권익 포럼’에서 무리한 정산 기한 단축은 중소기업의 도산을 초래할 수 있다며 “정책이 유통업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고 너무 빠르게 추진되고 있다. 업태별 정산 구조 실태를 정확히 파악하고 유통 기업의 유동성 위기로 인한 경제적 리스크를 대비하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티메프 피해자들을 대리하는 법무법인 대륜 기업법무그룹의 방인태 변호사도 “정산 일정을 줄이는 것보다 오히려 온라인 플랫폼 업계에 진출할 때 자본금 등을 확인하는 등 일정 수준의 진입 장벽을 둬야 한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정부의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핵심은 정산주기가 아니다. 정산주기를 당겼다고 망할 기업이 안 망하는 것 아니”라며 “애초에 공격적인 인수합병(M&A)로 단기간에 많은 기업을 인수해 통합한 큐텐을 허용해준 정부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주장했다.
강신욱 알렛츠 피해판매자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 2020년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이 알렛츠에 벤처투자 명목으로 20억 원을 투자했던 일을 언급하며 “알렛츠는 설립 이래 영업이익이 흑자인 적인 단 한 번도 없었던 기업인데 이런 회사에 산업은행이 왜 투자를 한 것인지(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기획재정부가 90%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산업은행이 부실한 기업에 세금을 투자해 소비자들에게 피해를 끼친 꼴”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정아 기자 ja.k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