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상 뉴진스 ‘버린 패’ 아니냔 지적도…경영진 싸움에 아티스트만 등 터져
민 전 대표는 이에 대해 "합의한 바 없는 사안을 일방적으로 통보한 것"이라고 거부했고, 새 대표이사를 내세운 어도어와 하이브 측은 "2개월 뒤 재계약을 하면 되는 게 아니냐"고 맞선 상황이다. 경영진 간 분쟁의 불똥이 아티스트에게까지 튀고 있는 가운데 모든 프로듀싱을 담당해 온 민 전 대표를 내침으로써 사실상 하이브가 뉴진스를 '버린 패' 취급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까지 제기되고 있다.
앞서 지난 27일 어도어는 이사회를 열어 김주영 어도어 이사회 의장(하이브 CHRO·최고인사책임자)를 신임 대표이사로 선임했다고 밝혔다. 엔터 비전문가를 엔터사 경영직에 올림에 따라 "다른 모든 레이블에 일관되게 적용돼 왔던 '제작과 경영의 분리' 운영 원칙이 예외됐었던 어도어도 이제 제작과 경영을 분리하게 될 것"이라는 게 어도어, 즉 사실상 하이브 측의 설명이다.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난 민 전 대표는 그대로 어도어 소속 그룹 뉴진스의 프로듀싱을 담당하고, 경영은 김 신임대표가 맡는다는 것이다.
대표이사 교체 사안도 그렇지만 특히 이 '프로듀싱'과 관련한 내용을 두고 민 전 대표는 "어떠한 합의도 이뤄지지 않은, 일방적인 통보"라고 맞섰다. 민 전 대표 측에 따르면 어도어 이사회는 신임 대표이사 선임 직후인 지난 28일 민 전 대표에게 2개월짜리 초단기 프로듀싱 계약을 골자로 하는 '업무위임계약서'를 보냈다.
해당 계약서에 적시된 대로라면 민 전 대표는 2024년 8월 27일부터 2024년 11월 1일까지 '2개월 6일' 동안만 뉴진스의 프로듀싱 업무를 맡게 된다. 민 전 대표는 "뉴진스는 2025년 월드투어를 계획하고 있는데 월드투어를 준비하는 아이돌 그룹 프로듀싱을 2개월 만에 완수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놀랍다"며 "이것으로 하이브가 지명한 어도어 이사들은 핵심 업무에 대한 이해도 부족을 스스로 증명했으며, 비상식적인 계약기간만 봐도 어도어 이사회가 밝혔던 '모든 결정이 뉴진스를 위한 최선의 결정'이란 주장은 허구이자 언론플레이였음이 명확해 보인다"고 꼬집었다.
어도어가 원하는대로 언제든지 계약을 해지 가능케 하는 '독소조항'이 다수 포함된 불공정계약이라는 점도 지적했다. 민 전 대표는 "계약서에는 어도어가 민희진 전 대표의 업무수행능력이 현저히 부족하다고 판단되는 경우 계약을 즉시 해지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다. 어떤 객관적인 근거나 기준에 대한 조항도 없다"며 "심지어 어도어의 경영 사정 상 계약을 유지하는 것이 곤란하거나, 어도어의 필요에 따라 어도어의 대표이사가 판단한 경우까지도 계약의 즉시 해지 사유로 규정돼 있다. 이는 어도어(실질적으로는 하이브)가 언제든 마음대로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는 것으로 언제, 어떤 이유로든 해당 업무에서 배제할 길을 열어둔 꼼수"라고 주장했다.
어도어 측은 계약에 이날(30일)까지 서명할 것을 요구했으나 민 전 대표가 거부한 상태다. 그는 "어도어와 뉴진스가 민 전 대표의 지휘 아래 독창성과 차별성을 인정받아 유례없는 성취를 이룬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임에도 이런 상식적이지 않은 내용의 계약서를 보낸 행위는, 과연 하이브가 민 전 대표에게 뉴진스의 프로듀싱을 지속해 맡기고 싶은 것인지 그 진정성에 의구심을 품게 만든다"며 "이는 의도적으로 '프로듀서 계약 거절을 유인'해 또 다른 언론플레이를 위한 포석으로 삼고자 하는 행위로 간주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어도어(하이브) 측은 "프로듀싱 계약 임기는 민 전 대표의 사내이사 임기에 맞춘 것으로 임기가 연장된다면 계약은 그때 다시 재계약과 함께 진행해야 하는 일"이라고 반박했다. 계약서의 절차상으로도 문제가 없고, 2개월이 지난 뒤 재계약을 할 수도 있으니 그때 가서 논의하면 된다는 것이다. 바꿔 말한다면 재계약이 불가할 경우엔 결국 민 전 대표는 고작 2개월 만에 뉴진스에게서 완전히 손을 떼야 하는 것이 된다.
또 "해지 관련 조항은 프로듀서로서의 업무를 성실히 수행하지 않을 경우 경영상 큰 피해를 입히는 행위를 방지할 최소한의 장치를 마련한 것"이라며 "조항에 이견이 있으면 어도어 이사회와 협의하는 것이 정상적인 논의 절차이고, 계약서의 초안을 보내 대표이사와 협의하자는 취지였는데 입장문 형태로 밝힌 것은 유감"이라고 밝혔다.
민 전 대표 측도 30일 오후 즉각적인 재반박에 나섰다. 그는 "사내이사 임기와 프로듀싱 업무는 관련이 없다. 프로듀서는 사내이사가 아니라도 담당할 수 있으며 역할이 전혀 다르기에 연결 짓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며 "HR(인사관리) 전문가라는 김주영 신임대표가 이 점을 모를 리 없으며 이는 상식적이지 않은 내용의 계약서를 설명할 수 있는 근거가 빈약하기에 나올 수밖에 없는 핑계에 불과하다. 사내이사 임기도 주주간계약에 따라 당연히 연장돼 총 5년간 보장돼야 한다"고 맞받았다.
그러면서 "어도어 이사회에서 보내온 업무위임계약서에는 어떤 기준이나 근거도 없이 일방적으로 계약해지를 할 수 있는 조항이 너무 많다. 이는 어도어나 하이브가 체결한 다른 계약들엔 없는 조항"이라며 "2개월 여의 계약기간 조차도 어도어(하이브)의 마음대로 단축할 수 있게 돼 있는 불공정 계약이다. 계약서는 상호협의하에 이뤄지는 것이 상식인데 어도어 이사회는 프로듀싱 업무에 대한 논의나 협상 기한에 대한 제안이 없는 상태에서 3일 내 사인 요청을 해왔다"고 주장했다. 계약 당사자와 애초부터 단 한 차례의 협의 시도도 하지않은 데다 사태의 시작부터 내부에서 정리할 사안을 당사자 논의 없이 언론으로 먼저 이슈화했기에 이번에도 같은 공격을 당하기 전 선제적으로 방어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결국 하이브가 어도어의 경영권과 이사회를 전부 장악한 상태에서 뉴진스를 앞세워 민 전 대표의 목줄을 잡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모양새가 된 셈이다. 앞서 하이브가 그토록 주장해 왔던 '어도어 경영권 찬탈'이라는 민 전 대표의 업무상 배임 혐의 수사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이사회와 대표이사를 갈아 치운데다, 종국에는 뉴진스의 프로듀싱 마저 2개월 뒤 갈아엎을 수 있게 됐으니 하이브로서는 모든 일이 원하는 대로 이뤄진 것이나 다름 없다.
문제는 2025년까지 뉴진스의 월드투어를 비롯한 각종 계획이 산재해 있는 상황에서 신(新) 어도어-하이브가 탈(脫) 민희진 이후의 청사진을 제대로 그려놓았는지 아직 누구도 알 수 없다는 점이다. 앞서 하이브는 뉴진스 멤버 부모들을 설득하는 과정에서 민 전 대표와의 계약을 해지하고 뉴진스에게 새 프로듀서를 붙여주는 데 1년 6개월 가량 시간이 걸릴 수 있다고 말한 사실이 알려져 주주들을 공분케 한 바 있다. 당시 주주들은 "현재 레이블 내 가장 가치가 높은데다 데뷔 3년도 채 되지 않아 쉴 시간 없이 꾸준히 활동해야 하는 걸그룹에게 '군백기(군입대 공백기)' 수준의 휴식을 강제로 주려는 게 하이브의 배임이 아니면 뭐냐"며 반발했다.
그동안 뉴진스를 각별히 케어할 것이라고도 밝혔지만 이미 르세라핌, 아일릿 등 뉴진스를 대체할 걸그룹을 포진해 놓은 상태에서 프로듀서의 부재 기간이 충실한 '휴식기'가 될지 '수납기'가 될지는 아무도 예상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때와 마찬가지로 민희진 이후의 로드맵이 명확히 드러나지 않았는데도 초단기 프로듀싱 계약 같은 일방적인 통보가 이뤄진 것은 오히려 뉴진스를 '버린 패'로 취급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냐는 의혹어린 불만도 터져나온다.
'민희진'으로 시작된 그룹인 만큼 민희진의 색을 강제로 벗게 될 뉴진스의 미래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지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경영진들의 아귀다툼에 결국 미성년자가 포함된 아티스트들만 계속해서 다치고 있다는 점이다. 이렇게 고래 싸움에 완전히 등이 터져버린 새우들을 위해서라도, 어도어의 새로운 얼굴이 된 김주영 대표이사가 과연 어도어와 뉴진스를 위해 어떤 결단을 내릴지 대중들은 반드시 주목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어도어 측은 30일 오후 이뤄진 민 전 대표 측의 두 번째 반박과 더불어 민 전 대표의 계약 서명 거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별다른 추가 입장을 내놓지 않은 상태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