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케이트장 대체 부지 공모 연기…유치전 벌이던 지자체 “선거운동 열심히 한 지역에 어드밴티지?”

‘체육 대통령’은 그동안 여러 차례 정부와 대립각을 세운 바 있다. 문재인 정부 때 빙상연맹을 둘러싼 각종 논란, 고 최숙현 선수 사태 등으로 궁지에 몰렸다. 그러나 특유의 정치력과 뚝심으로 2021년 1월 재선에 성공했다. 이 회장 재선 이후 정치권에선 정권교체가 이뤄졌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뒤 정부와 합이 잘 맞는 듯했던 이 회장 스탠스는 2024년부터 돌변했다. 이 회장이 이끄는 대한체육회는 적극적으로 대정부투쟁에 나섰다.
유인촌 문체부 장관이 취임한 뒤 본격적으로 문체부와 대한체육회 간 파워게임이 시작됐다. 예산 교부 절차, KOC 분리 여부 등 각종 이슈를 놓고 문체부와 대한체육회가 갈등을 빚었다. 체육계 내부에선 “문체부 장관이 아무리 공격해도 이 회장이 꿈쩍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관련기사 안세영 나비효과로 안전핀 뽑혔나…‘유인촌 vs 이기흥’ 파워게임 점입가경).

사면초가에 몰린 대한체육회의 반격 여부에 관심이 모아지는 가운데, 의미 있는 움직임이 포착됐다. 대한체육회 이사회는 8월 28일 태릉국제스케이트장 대체시설 부지 공모 연기를 서면 의결했다. 태릉국제스케이트장은 인근 태릉과 강릉 등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됨에 따라 2027년 철거가 예정된 시설이다. 경기 양주시, 동두천시, 김포시, 강원 철원군, 원주시, 춘천시, 인천 서구 등 7개 지자체가 국제스케이트장 부지 유치전에 사활을 걸고 뛰어든 상태다.
3월 18일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은 서울올림픽파크텔 서울홀에서 열린 ‘체육계 주요 현안과 관련한 기자회견’에서 “새 국제스케이트장 유치 사업과 관련해 차질 없이 사업을 추진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이 회장은 “외풍에 따른 심사 공정성 훼손 부분에 대해선 염려를 안 해도 된다”면서 “여러 방안을 모색해 최적의 입지를 찾아내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대한체육회 이사회 서면 의결 문건에 따르면, 국제스케이트장 부지 공모 잠정 연기는 태릉국제스케이트장 재활용 가능성을 열어 놓는 차원인 것으로 파악됐다. 태릉선수촌 체육문화단지 종합정비계획, 유산영향평가 등 용역이 완료될 때까지 부지 공모를 잠정 연기하겠다는 취지다.
2024 파리 올림픽에서 각종 세계문화유산을 활용한 점을 벤치마킹, 태릉국제스케이트장 또한 이 부분을 적극 참고하겠다는 의도로도 풀이된다. 그러나 빙상계 일선에선 태릉국제스케이트장 시설 노후화 수준은 이미 도를 넘어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빙상 지도자는 “태릉국제스케이트장은 해마다 비가 새고, 내부 시설도 열악하다”면서 “이미 철거 방침이 내려진 시설물을 두고 대한체육회가 다시 재활용 여부를 고심한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는다”고 했다.

대한체육회는 국가건축정책위원회가 발주한 국가상징공간 선도사업 추진방안 연구용역이 완료될 때까지 신규 스케이트장 부지 공모를 중단할 전망이다. 이 용역은 2024년 9월부터 5개월 정도 시간이 소요될 예정이다. 계획대로라면 2025년 1월경 용역이 마무리된다.
체육계와 지자체 인사들은 이 용역이 차기 대한체육회장 선거 시기와 맞물린다는 점에 주목한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지금까지 노력한 것이 물거품이 됐다”면서 “결국 다음에 국제스케이트장 부지 공모를 할 때 회장 선거운동을 열심히 한 지역에 어드밴티지를 주겠다는 엄포 아닌 엄포”라고 했다. 그는 “핵심 사업과제를 볼모로 지지층 결집을 하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자체 체육회 인사는 “국제스케이트장 부지 공모라는 대형 이벤트를 볼모로 대한체육회장이 정치력을 결집시키며 위기를 기회로 만들려는 것처럼 보인다”고 주장했다. 그는 “그동안 유치전에 돌입했던 지자체들이 방송 광고나 지하철 광고 등으로 엄청난 홍보비를 지출했는데, 그런 노력과 재정투입이 대한체육회의 기습적인 결정으로 물거품이 됐다”고 비판했다.
이사회 문건에 따르면, 대한체육회는 태릉국제스케이트장 근대문화재 등록 및 유산영향평가 등 용역을 통해 존치 또는 빙상장 활용이 불가능한 상황이 오면 태릉국제스케이트장 대체시설 부지 공모를 재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