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내 인권센터 권고안 무시 감봉 경징계, 학생들 처분 결과·근거 몰라…대학 “사학법상 공개 의무 없어”
#"결과 나온 줄도 몰랐다"
"3년 뒤면 교황과 세계 수천여 청년들이 한국에 모여 사랑의 실천을 다짐하는 '가톨릭 세계 청년대회'가 열려요. 잼버리 이후 국내에서 열리는 가장 큰 행사인데 우리 천주교 재단에서 어떻게 청년들을 이렇게 대할 수 있는지 참담합니다."
경기도 부천시에 있는 가톨릭대 일반대학원 중독학과의 한 학생은 '천주교 정신'까지 거론하며 울분을 토로했다. 가톨릭대는 2023년 말부터 불거진 이 학과 A 교수의 갑질 의혹 사건 조사를 최근에야 마쳤다. 8개월가량 이어진 조사의 최종 결과는 '감봉 3개월'이었다.
학생들 사이에선 솜방망이 처벌이란 인식이 강하다. 10명 가까운 피해 학생들은 그동안 "A 교수와 그의 부인한테 모욕적 말을 들었다" 등 공통된 진술을 해왔다. 논문 지도를 제대로 못 받으면서도, 청탁금지법이 제한한 5만 원 이상의 선물을 A 교수에 제공해왔다며 근거 자료도 제출한 상태였다.
A 교수는 모든 의혹을 부인해왔다. "논문 지도를 게을리 하지 않았으며, 학생들을 향한 모멸적 발언도 일절 없었다"고 주장해왔다.
학생들 불만은 학교로 향하고 있다. 이들은 징계 결과가 나온 줄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언론 취재 과정에서 사실을 접한 데다 이의를 제기할 마땅한 방법이나 수단이 없어 불만이 더 크다. 징계 수위의 적정성을 떠나 절차가 사실상 '깜깜이'로 이뤄졌다는 목소리도 크다.
실제 가톨릭대는 언론에도 A 교수에 대한 처분 내용을 알릴 수 없다는 입장이 애초 뚜렷했다. 이 학교 관계자는 일요신문에 "워낙 민감한 문제라 징계 절차에 직접 참여하신 분들 말고는 내용을 아는 사람이 없다"며 "양해해 달라"고 말했다.
현행 사립학교법이 문제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A 교수 징계위원회에 참석한 가톨릭대 한 관계자는 "감봉 3개월이 맞다"면서도 "사립학교법에 따라 성범죄가 아닌 한 징계 결과 및 근거 등을 학생들에 알릴 의무는 없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A 교수는 본인 판단에 따라 소청심사 등 구제 절차에 돌입할 수 있다"며 "학생들은 추가로 문제를 제기할 수단이 마련돼 있지 않다"고 덧붙였다. 그는 'A 교수와 학생들의 분리 조치는 이뤄지는지' 등의 질문에는 "추후에 학교가 알아서 판단할 문제"라고 답했다.
가톨릭대 징계 절차는 교내 인권센터에서 사안을 먼저 심의하고, 징계위원회가 최종 결과를 의결하는 순으로 진행된다. 지난 2월 14일 인권센터는 △ A 교수의 공금유용·인권침해·성실·품위유지 의무 위반 충분히 인정 △ A 교수와 학생들 분리 조치 △ 재발방지 대책 마련 등을 징계위에 권고했다고 학생들에 통지했다.
그러나 징계위가 인권센터의 권고를 수용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현재 새 학기에 접어든 학생들은 A 교수와 계속 마주치고 있다. 한 학생은 "징계위에 누가 몇 명이나 들어갔는지도 알 수 없어 처분 근거 등을 따로 문의할 수조차 없다"며 "매우 답답할 따름"이라고 털어놓았다.
#깜깜이 징계 처음 아냐…수사기관 향하나
학생들이 학교 측 처분을 불신하는 데에는 한 가지 배경이 있다. 가톨릭대가 교수 등 교직원에 대해 제 식구 감싸기 행보를 보인 사례가 과거에도 있었기 때문이다.
일요신문이 확인한 2022년 교육부의 종합감사 결과를 보면, 가톨릭대는 당시 부적절한 징계 절차에 따른 시정·주의 조치만 최소 5건 받았다.
구체적으로, 가톨릭대는 2018년 징계위에서 견책을 받은 어느 직원을 두 달 만에 주의로 감경 처분했다. 2019년에는 한 직원의 음주 단속 기록을 교육부로부터 통보받고도 학교 측은 징계위 회부 대신 경고로 사안을 마무리했다.
또 2018년부터 2020년까지 2명의 직원이 재물손괴죄로 검찰에서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지만, 가톨릭대는 이를 알고도 교육부 감사가 이뤄질 때까지 징계위에 의결을 요구하지 않았다.
이 밖에 2018년 11월 한 직원한테는 정직 3개월 처분을 내리고도 '정근수당 560만 원' '명절수당 40만 원' '진료수당 630만 원' 등을 그대로 지급한 사례도 적발됐다. 교육부는 가톨릭대에 이 같은 사항들을 전부 다시 조치하라고 통보했었다.
전문가들은 사립학교법이 학교의 깜깜이 징계를 사실상 방치함으로써 학생 불신을 키우는 부작용을 개선해야 한다고 꼬집는다. 법 개정도 한 가지 방법이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시민입법위원장인 정지웅 변호사(법률사무소 정)는 "법이 학생들 권리와 교육기관 투명성을 확보하도록 해야 하는 것은 상식"이라며 "현행 사립학교법은 교원을 위주로 한 보호에 치중한 측면이 있다"고 분석했다.
정 변호사는 이어 "직접 피해 당사자인 학생들에게 최소한의 징계 결과는 알려주는 게 바람직하다"며 "따라서 성범죄가 아니더라도 학생들의 학습권과 인격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사안에 대해서는 정보 공개 범위를 확대하는 법 개정이 필요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가톨릭대 중독학과 일부 학생들은 A 교수에 대한 정식 고소나 교육부 진정 등을 검토하고 있다. 일요신문은 A 교수에도 메시지와 통화 및 이메일 등을 통해 '징계 결과 수용 여부'와 '기타 입장' 등을 물었으나 대답을 듣지 못했다.
주현웅 기자 chescol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