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부터 6·25전쟁까지 암울했던 명절…올 추석은 ‘의료대란’ 우려 확산
언뜻 최근 뉴스 같지만 무려 100년 전인 1924년 조선일보에 실린 추석 당일 기사다. 추석은 광복 이후에야 공휴일로 지정됐으나, 그 전부터 민족의 큰 명절이긴 마찬가지였다. 옛 추석 풍경이 담긴 기록들을 보면 요즘과 다르지만 비슷한 장면들도 많아 눈길을 끈다.
'과음' '폭력' 등 추석 명절마다 사람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소식은 100여 년 전부터 잇따랐다. 다만 일제 강점으로 나라를 잃은 슬픔에다 극도로 심각한 빈곤이 더해져 지금보다 훨씬 암울한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예컨대 1921년 조선일보 '추석일 도쿄에서 조선인 대격투' 기사에는 "조선인 70여 명이 동경 작은 자택에 모여 술을 마시다 싸움이 났다"며 "인근 파출소 경찰관들이 출동해 진압했으나, 검거된 일부는 파출소마저 파괴하고 도주했다"는 내용이 실렸다.
나라를 잃고 명절마저 사라진 듯한 현실 속 '차라리 술을 마시고 미친 듯 놀며 활기를 되찾고 싶다'는 호소도 있었다. 1923년 동아일보는 '추석 명절을 부흥하라' 기사가 한 예다.
"풍성해야 할 추석이 이렇게 쓸쓸하다. 추석뿐 아니라 민중 명절이 다 그렇게 되고 말았다. 외국은 명절이면 남녀노소가 미친 듯이 논다. 조선 같은 나라는 없다. 민중이 빈궁해진 까닭이다. 그 외 여러 슬픔으로 민중의 원기가 낮아진 탓이다."
명절이 '노숙인들의 잔치'로 묘사되기도 했다. 1929년 조선일보는 '거지의 생일은 추석'이란 기사에서 "추석 날 한 부부가 조상 무덤에 제물을 차리고 울며 절을 했으나, 일어나보니 궁핍한 거지가 음식을 집어먹고 달아났다"고 전했다.
추석은 광복 후 1946년 공휴일로 지정됐다. 그렇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또 우울한 현실이 되풀이됐다. 1950년 북한 남침으로 발생한 6·25전쟁 탓이다. 전쟁 기간에는 고물가가 가장 심각한 문제였다. 1951년 추석 조선일보는 "지금 서울 쌀값은 괴뢰군들이 남침해 일시적으로 올렸던 작년 2만 가격을 다시 돌파해 살인적 물가라는 원성이 높아졌다"며 "와중에 눈치가 빠른 간상배들의 매점매석도 악영향을 더했다"고 보도했다.
결국 요즘과 같은 추석 풍경은 1953년 휴전협정을 맺고서야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단, 1998년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 등 최악의 명절이 아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경향신문의 경우 그해 추석 기사를 통해 "골 깊은 불황에 구조조정 한파가 겹쳐 직장 분위기가 가라앉고 직장인들 호주머니는 썰렁해졌다"며 "모 기업 한 직원은 '요즘 같은 시기에는 회사에 남아 있는 게 가장 큰 추석 선물 아니겠나' 말했다"고 전했다.
한편 올 추석 정부는 각 지방자치단체와 협력해 각 의료기관에 '비상진료체계'를 가동했다. 정부의 의과대학 입학정원 확대 방침에 반발한 의사들이 응급실 등을 떠나 역대급 의료 대란이 우려되는 까닭에서다. 보건복지부는 "오는 9월 25일까지 대형병원 응급실은 중증·응급환자 중심으로, 경증환자는 지역 병·의원에서 맡는 방향으로 추석 명절 비상응급대응 주간을 운영한다"고 설명했다.
경찰도 명절마다 급증해온 음주운전 등 사고 예방을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경찰청은 "이번 추석 연휴 기간은 귀성에 비해 귀경 기간이 비교적 짧아 연휴 후반쯤 교통혼잡이 심해질 것으로 예상된다"며 "연휴 기간 동안 특별 교통관리 대책을 시행, 교통안전 확보를 위해 모든 역량을 집중한다"고 밝혔다.
실제 2019∼2023년 추석 기간 교통사고 통계에 따르면 연휴 하루 전 교통사고 및 사망자가 평상시보다 각각 40%, 10% 이상 많았다. 한창훈 경찰청 생활안전교통국장은 "최근 명절 문화가 변화하면서, 고향 방문 외에도 여가를 즐기는 국민들이 증가해 교통안전 확보에 더욱 세밀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주현웅 기자 chescol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