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백 수수·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의혹 처리해야…문재인 전 대통령 일가 겨냥한 수사도 숙제
9월 19일 취임식을 가진 심우정 검찰총장(사법연수원 26기)을 설명하기 가장 적절한 문구다. 정권 출범 초기와 달리 현재 검찰을 둘러싼 상황은 녹록지 않다. 임기 초부터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수수 및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의혹을 처리해야 하고, 동시에 문재인 전 대통령 일가를 겨냥한 수사 등에선 윤석열 정부가 원하는 수사 결과도 입증해야 한다.
법조계에서는 심우정 검찰총장이 취임 직후 김건희 여사 사건을 어떻게 처리하는지가 이원석 전 검찰총장과 심우정 검찰총장을 비교할 수 있는 가늠자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총장이 결정할 ‘명품백 사건’ 처분
가장 먼저 결정이 나올 것으로 보이는 사건은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수수 의혹 사건이다. 김 여사에게 명품백을 건넨 최재영 목사의 처분을 권고할 검찰 수사심의위원회(수심위)가 9월 24일 열리는 상황. 수심위 결정은 강제성이 없는 권고 사항이지만, 수심위가 ‘기소’로 의견을 제시했는데 검찰이 따르지 않을 경우 정치권이나 언론의 비판을 직면할 수밖에 없다.
다만 최 목사 수심위 결과가 어떻게 나오더라도 김 여사 처분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앞서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은 김 여사에 대해 무혐의로 결론을 냈고, 이에 이원석 전 총장은 수심위를 소집했지만 수심위도 9월 6일 불기소 처분을 권고했다. 이 정도면 심 총장에게 ‘불기소’의 명분은 충분하다는 분석이다.
대통령실과 가까운 한 검찰 출신 변호사는 “김 여사 명품백 사건의 경우 이미 법리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판단을 내린 상황”이라며 “검찰총장 임명을 위해 여러 방면에서 의견을 확인했을 것이기에 심우정 총장이 다른 결정(기소)을 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 과정에서 이원석 전 검찰총장에 대해 ‘불쾌감’이 상당했다고 한다. 앞선 변호사는 “이원석 총장이 ‘자기가 책임지고 처리하겠다’고 얘기해 놓고 대통령실 입장에서 불리한 결정만 잔뜩 늘어놓고 가지 않았느냐”며 “심 총장 전에 털고 갔으면 좋았을 사건을 남겨놓고 가서 취임 직후부터 어려운 결정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고 토로했다.
#좀 더 복잡한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더 큰 난제는 김 여사가 고발된 지 4년이 넘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이다. 이원석 전 검찰총장과 송경호 전 서울중앙지검장은 윤석열 정부 출범 직후, 빠른 사건 처분을 원하는 대통령실을 향해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재판 결과를 고려해 판단하겠다’며 시간을 끌었다는 게 법조계 중론이다.
1심에서는 권오수 전 도이치모터스 회장과 김 아무개 주가조작 선수 등에 대해서만 유죄 판단이 나오고, 전주(돈줄) 역할을 한 손 아무개 씨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했다. 이는 오랜 법조계 판례 흐름이기도 했다. 그동안 법원은 주가조작에 직접 관여하지 않고, 자금만 댄 전주들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했었다.
그럼에도 이원석 전 총장과 송경호 전 지검장은 ‘2심도 지켜본 뒤 결정을 내리자’고 신중한 입장을 견지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김건희 여사에게 불리해졌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의 항소심 과정에서 검찰은 전주 손 씨의 주가조작 의혹에 대해 ‘방조’ 혐의를 추가했고, 9월 12일 2심 재판부는 “구체적 (주범의 범죄) 내용 인식 없더라도 미필적 인식, 예견만으로도 ‘방조’가 성립 가능하다”고 봤다. 2심 재판부는 또 “단순한 전주가 아니라, 도와줄 의사로 주식을 대량 매수해 주가조작이 용이하도록 했다”며 손 씨에 대해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손 씨보다 상대적으로 투자 시기가 짧고, 직접 주식을 매매하지 않은 김건희 여사지만 ‘주가조작으로 가격이 오를 것을 예상해 투자했다’라고 본다면 법원에서 ‘방조’로 유죄를 판단할 수 있는 방법이 생긴 것이다.
한 가지 변수는 검찰총장에게 ‘지휘권’이 없다는 점이다. 현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에서 김건희 여사에 대해 ‘무혐의’로 가닥을 잡은 상황에서, 핵심 전주(손 씨)가 유죄를 받은 2심 재판 결과는 갓 취임한 심우정 검찰총장에게 풀기 어려운 문제다. 법무부 장관에게 수사 지휘권 복권을 요청해, 결과를 원하는 방식으로 이끌고 가는 것도 가능하지만 그 결과가 무혐의일 경우 야권이나 언론의 비판을 피하기 쉽지 않다. 수사 지휘권을 다시 되찾아 올 경우, 2심 재판 결과를 뒤집을 법리적 명분을 제시해야 한다.
검사장 출신의 한 변호사는 “수사지휘권을 되찾아와 ‘여러 비판들을 잠재우는 결정’을 내릴 수 있다면 모를까, 무혐의로 처분을 하려 한다면 수사지휘권이 배제된 상태에서 수사팀의 이름으로 하는 게 편할 것”이라며 “수사팀의 보고를 받고 무엇이 검찰 조직을 위해 올바른 결정인지 심 총장 나름대로의 고민을 하지 않겠냐”고 내다봤다.
#전 정권 수사도 ‘미션’
대통령실과 법무부에서 심우정 총장을 낙점하면서 가장 고심했던 ‘특수 수사 능력’도 입증해야 한다. 현재 전주지검이 수사 중인 문 전 대통령 옛 사위의 타이이스타젯 특혜 채용 의혹이 대표적이다.
정치적인 사건의 경우 검찰총장이 사건 실체와 대통령실, 정치권의 입장을 두루 고려해 ‘멈춰설 지점’을 정확하게 잡아줘야 하는데 윤석열 정부의 지지율이 20% 수준인 상황에서 수사 동력도 제한적이다. 야권도 ‘정치 보복’이라고 거세게 반발하고 있어 수사 정당성도 얻어내야 한다.
‘가장 힘든 시기에 취임한 검찰총장’이라는 평이 나오는 대목이다. 앞선 검사장 출신의 변호사는 “정치권에서는 끊임없이 ‘검찰을 믿을 수 없다’며 특검을 발의하고, 언론들도 검찰의 권력화를 우려하는 시점에 취임 직후 김건희 여사 사건을 처리해야 하는 검찰총장 자리는 어려울 수밖에 없다”며 “앞으로 임기가 2년 동안 사실상 보장된 셈인데, 2년 사이 심 총장이 어떻게 야권의 검찰 비판을 받아치고, 동시에 성과를 원하는 현 정권의 니즈를 맞출 것인지는 지켜볼 부분”이라고 내다봤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