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 하락 우려 집주인 일방적 계약 해지 통보…세입자 부부 “알릴 의무 있나, 위약금 내놔라”
암 환자인 중년 여성 왕 씨는 치료를 위해 지난 8월 12일 병원 인근 방 2개짜리 주택을 빌렸다. 기한은 11월 11일까지였다. 월 5500위안(103만 원)으로, 주변 시세보다 저렴했다. 구매자가 집 보기를 원할 때 협조를 잘해야 한다는 조건이었다. 임대차 계약서엔 “을이 갑의 분양에 협조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을이 이를 어길 경우 계약 해지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그런데 얼마 전 집주인 장 씨가 집을 빠른 시일 내에 비워달라고 요청했다. 장 씨는 “임차인이 계약 당시 병세를 숨겼다. 암 환자가 살던 집에서 숨지면 ‘흉가’로 간주돼 시장 가치가 떨어진다”고 주장했다. 또 장 씨는 “구매자의 집 방문 행위를 몇 차례 거부했다. 명백한 계약 위반”이라고 했다.
장 씨와 임대차 계약을 맺은 것은 왕 씨의 남편 양 씨였다. 장 씨는 “계약을 맺기 전 왕 씨의 상태를 알았다면 집을 빌려주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장 씨는 임대차 계약을 맺은 후 중개인, 구매자와 함께 집을 방문했을 때 처음 왕 씨를 봤다고 했다. 그때 왕 씨가 항암치료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장 씨는 “중개인으로부터 매수자들이 이런 부동산을 꺼려한다고 들었다. 집값이 최대 100만 위안(1억 8000만 원) 정도까지 떨어질 수 있다고 들었다. 암 환자가 극단적인 행동을 하는 경우도 많은데, 그러면 집이 아예 팔리지 않는다고도 했다. 나로선 집주인의 권리를 행사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장 씨는 양 씨와 계약을 체결할 때 부인의 투병 소식을 일부러 숨겼다고 의심했다. 왕 씨는 “처음 전세를 구할 때 남편이 나의 신상에 대해 언급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라면서 “(암 투병 사실을) 임대차 계약서에 명시할 이유는 없다. 또 이를 굳이 세입자가 집주인에게 알릴 필요가 있는 것이냐”고 반문했다.
장 씨는 메신저 위챗으로 ‘계약해지 통지서’를 보냈다. 양 씨 부부가 7일 이내에 집을 비워줘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장 씨는 “구매자가 집을 보려는 것을 세입자 측이 막고 있다. 양 씨가 자신의 아내가 아프다는 이유로 집에 사람을 들이려 하지 않는 것 같다”면서 “계약서엔 분명히 이런 조건이 들어 있다”고 했다.
양 씨 부부는 집주인 행태에 분통을 터트렸다. 처음엔 투병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계약 해지를 요구했다가 이것이 문제될 수 없다는 점을 알자 이번엔 집을 보여주지 않았다며 억지를 부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양 씨는 “우리도 처음엔 장 씨 입장을 이해해 빠르게 집을 구해 나가려고 했다. 하지만 7일 만에 어떻게 새 집을 찾느냐. 더군다나 아픈 사람도 있는데”라고 말했다.
양 씨 부부는 그동안 구매자가 집을 보러 왔을 때 적극적으로 협조했다고 주장했다. 식사 시간, 밤에 찾아와도 언제든 문을 열어줬다고 했다. 부부와 중개인이 주고받은 위챗 대화록, 사진, 동영상을 증거로 제시했다. 양 씨가 중개인에게 보낸 한 메시지엔 ‘집을 보는 횟수가 너무 많아 일상생활에 지장이 있다’는 불만도 있었다.
양 씨 부부는 이사를 갈 경우 계약서에 따른 위약금을 받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왕 씨는 “우리는 합법적으로 임대차 계약을 맺었다. 일방적인 계약 해지에 따른 책임은 집주인에게 있다”고 했다. 하지만 장 씨는 미리 지급한 임대료, 일부 보증금만 줄 수 있을 뿐 위약금은 줄 수 없다고 맞섰다. 장 씨는 “세입자가 집 매각에 비협조적이었고, 암 투병 사실을 속였다. 이것이 계약 위반을 촉발한 것이다. 세입자의 귀책인데 내가 왜 위약금을 내느냐”고 되물었다.
장 씨가 보낸 ‘계약해지 통지서’는 집 대문에 그대로 붙어있었고, 이를 찍은 사진은 인터넷과 SNS(소셜미디어)에서도 퍼졌다. 이에 따르면 세입자가 정해진 기간 내에 집을 비우지 않을 경우 강제 퇴거할 수 있고, 위약금도 청구할 수 있다. 장 씨는 “합법적인 집 정리 작전”이라면서 “불미스러운 일을 피하기 위해 세입자들과의 협의는 계속할 예정”이라고 했다.
인터넷상에선 집주인과 세입자 간 충돌에 대해 팽팽한 기류다. 한 블로거는 “세입자 사정이 딱하긴 하지만 집주인의 주장도 이해가 간다. 세입자가 최대한 빨리 집을 구해 나가는 게 맞다”고 했다. 이 글엔 집주인의 계약해지 통보는 부당하며, 암 투병 사실을 숨긴 게 계약위반이 될 수 없다는 글들이 쏟아졌다.
법조계에선 세입자 손을 드는 모습이다. 베이징 신노법률사무소 파트너 변호사 웨이쥔링은 “질병을 앓고 있는 사람이 집을 임대할 때 자신의 질병으로 인한 사망 위험을 알리고 사망 위험에 대해 배상 책임을 져야 한다는 법은 없다”고 설명했다. 병세를 숨기는 것은 계약의 해지를 초래하는 경우가 아니라는 뜻이다.
베이징 경사법률사무소 쉬융싱 변호사도 “임대차 계약 위반 여부는 계약이 어떻게 돼있느냐에 달려 있다”고 했다. 이 사건의 경우 양측은 을이 갑의 분양에 협조한다는 전제를 깔았고, 집주인은 ‘세입자가 집 보기를 거부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집주인은 세입자가 문을 열지 않는 등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해야 한다. 오히려 세입자가 집을 보여줬다는 증거는 있다. 계약을 위반했다고 보긴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이어 쉬융싱 변호사는 “임대차계약에서 임차인의 건강 상태에 대해 별다른 약정을 하지 않았는데도 집주인이 병세를 은폐했다며 계약 해지를 요청하면 계약 위반 책임을 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다만, 쉬융싱 변호사는 재판으로 가면 집주인의 책임이 경감될 수도 있다고 봤다. 그는 “주택에서 사람이 사망하면, 임대나 분양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은 객관적인 시장 현상이다. 세입자가 계약 당시 거주자가 암 말기 환자라고 집주인에게 사실대로 진술했다면 집주인이 임대를 주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이 사건이 소송에 들어가면 임차인이 병세를 숨긴 극단적인 상황에도 일정한 과실이 있으며, 법관은 쌍방의 과실을 볼 수도 있다”고 했다.
중국=배경화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