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손가정, 외할머니 카드로 아이템 2500만 원 결제…게임회사 불매운동·정부 압박 이어지자 결국 전액 환불
얼마 전 중국의 소비자고발센터 홈페이지에 올라온 사연이다. ‘심도대천’이라는 게임을 하면서 13만 위안(2480만 원)가량을 충전했는데, 그 후 반환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는 내용이었다. 처음엔 충전을 한 게임 이용자 잘못도 크다는 댓글이 달렸지만, 곧 상황이 바뀌었다. 게임 이용자가 정신지체장애를 앓고 있는 여자아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다.
쓰촨 청두에 사는 왕웨(가명)는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외할머니와 함께 산다. 장애인연맹이 2023년 2월 발급한 증명서에 따르면 왕웨는 정신지체 2급이다. 몇 년 전부터 치료를 위해 쓰촨대학 화시병원의 심리보건센터를 꾸준히 방문했다. 2023년 9월 화시병원에서 발급한 자료에 따르면 정신병적 증상의 중증 우울증도 앓고 있었다.
왕웨가 심도대천 게임을 접한 것은 지난 5월경이다. 메신저 위챗에 나온 홍보를 보고 앱을 설치했다. 이 게임은 요괴를 양성하는 스토리로 이뤄져 있다. 훈련을 통해 요괴를 키우고, 갈수록 난이도가 높아지는 절차를 해결하는 식이다. 돈을 주고 아이템을 사면 더 좋은 요괴를 살 수 있고, 요괴를 키우는 과정도 손쉽게 풀어갈 수 있다.
게임 홈페이지에 따르면 6위안(1100원)부터 30위안, 328위안(6만 9000원) 640위안(12만 원) 등 다양한 선물 패키지를 구매할 수 있는 것으로 나온다. 최고 가격의 패키지는 1988위안(38만 원)에 달했다.
왕웨 소식이 알려진 후 오래 전부터 이 게임을 했다는 한 대학생은 방송 인터뷰에서 “돈을 쓰지 않고 게임을 하는 것엔 한계가 있다. 아이템을 사면 바로 요괴를 업그레이드할 수 있다. 훈련으로는 될 일이 아니다”라면서 “혼자 하는 게임이 아니라, 많은 이용자들이 비교와 경쟁을 하기 때문에 아이템 구매에 대한 유혹이 너무 크다”고 말했다.
왕웨는 다른 이용자들로부터 “돈으로 아이템을 사면 요괴를 더 빨리 키울 수 있다”는 말을 듣고, 6월 한 달간 3만 위안(570만 원)을 충전했다. 아이템을 구매할 때 모두 외할머니 신용카드로 결제했지만, 신분을 확인하는 절차는 따로 없었다고 한다. 왕웨의 요괴 캐릭터는 단숨에 많이 성장했지만 어느 순간 다시 정체기에 들어섰다.
왕웨는 게임에 흥미를 잃었고, 추가로 충전해야 한다는 것도 부담스러워 게임을 중단했다. 그 후 위챗 등에서 ‘새로운 아이템이 추가로 생성됐다’ ‘혜택이 대폭 늘어났다’는 광고를 보고 다시 시작했다. 왕웨는 아이템을 계속 충전했고, 어느새 9만 위안(1700만 원)이 넘는 돈을 게임에 썼다.
덕분에 왕웨의 계정은 한때 요괴 랭킹 순위 최상단까지 올랐다. 왕웨가 게임에 쓴 금액은 총 13만 2114위안(2508만 원)이었다. 외할머니는 카드 청구서를 보고 깜짝 놀랐고, 왕웨를 추궁한 끝에 이 사실을 알게 됐다. 외할머니와 왕웨는 게임회사에 전화를 걸어 환불을 요구했지만 거절당했다.
왕웨 측은 자신의 진단서, 장애증명서 등을 제출했지만 역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외할머니는 왕예가 민사행위 능력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사법감정을 실시했다. 왕웨는 감정장애, 우울증 발작, 인지기능 및 사회기능 손상, 의사표현 불가, 지적능력 부재 등의 소견을 받았다. 감정서는 왕웨에 대해 ‘민사행위능력 없음’이라고 진단했다.
왕웨 측은 여러 소비자 관련 단체에 도움을 구했다. 또 여론도 왕웨에 대해 호의적이었다. 게임업체엔 비난 전화가 쇄도했고, 홈페이지에도 악플이 달렸다. 심도대천 불매 운동까지 벌어졌다. 인터넷상에선 공방이 벌어지기도 했다. 왕웨 측의 딱한 사정과는 별개로 ‘외할머니의 관리 소홀’에 대한 지적이 불거지면서다. 일부 전문가와 누리꾼들은 외할머니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꼬집었다.
한 변호사는 “법적 문제와는 별개로 이용자를 탓할 사안은 아니라고 본다. 일반인 역시 언제든 그런 식으로 당할 수 있다. 심지어 왕웨는 정신장애가 있는 아이”라면서 “게임업체의 홍보, 마케팅에 부적절하거나 위법이 없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처벌이 워낙 경미하니 업체들의 상술이 도를 넘었다. 발견되면 엄벌에 처해야 한다”고 했다.
논란이 커지자 회사 측은 왕웨에게 연락을 취해 30% 환불한다고 알렸다. 왕웨 측이 이를 거절하자 회사는 절반을 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왕웨 외할머니는 전액을 돌려받겠다는 입장이다. 8월 7일 왕웨 측은 “회사 관계자로부터 60%까지 주겠다는 말을 들었지만 우리는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했다.
결국 회사 측은 왕웨에게 전액 돌려주겠다며 고개를 숙였다. 회사 관계자는 “정확한 정보는 밝히기 어렵다. 왕웨 측과 충분히 조율됐다”고 했다. 여기엔 당국 차원의 압박도 작용했다는 후문이다. 당국 관계자는 “이런 문제가 꾸준히 발생했다. 그동안 피해를 봤지만 제대로 구제된 적이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관련 규제나 감시가 미비하다는 지적을 받아들여 개선에 나설 것”이라고 했다.
중국=배경화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