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전화 포렌식에 거짓말탐지기까지, 결과는 군무원 단독 범행으로 일단락…국방부 “과잉수사 사실무근”
“방첩사가 정보사 공작파트를 대대적으로 수사했다. 군 수사기관에 자료를 제출하면서 내밀한 공작 보안 사안들이 다시 노출되는 형국이 됐다. 정보사 내부 사기는 바닥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진지하게 퇴직을 고려하는 이들도 나오고 있다. 블랙요원 신상유출 사건에 대한 방첩사의 ‘과잉 수사’에 공작파트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쑥대밭이 됐다. 그야말로 초토화가 됐다고 봐도 무방하다.”
군 내부 소식통의 전언이다. 국군 정보사령부 군무원 A 씨를 둘러싼 ‘블랙요원 신상유출 사건’은 단독 범행으로 가닥이 잡혔다. 국방부 검찰단은 방첩사령부 수사 결과를 토대로 A 씨를 구속기소했다. A 씨는 중국 정보요원에게 우리 측 군사기밀을 전달한 대가로 1억 6000만 원 규모 금전을 차명계좌 등을 통해 수수한 것으로 파악됐다. 간첩혐의는 적용되지 않았다.
A 씨가 블랙요원 신상을 유출한 사건은 군이 자랑하는 휴민트에 엄청난 타격을 줄 전망이다. 지금까지 조성해 온 휴민트 파이프라인을 전면 재설계해야 하는 상황이다. A 씨 범행은 국내 정보기관 해커가 북한 당국 서버에서 ‘정보사 블랙요원 명단’을 발견한 뒤 신고하면서 덜미가 잡혔다.
방첩사는 A 씨 범행 사실을 인지한 뒤 전격적으로 정보사를 수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면서 공작파트 소속 조직원 대부분이 조사 대상이 됐다. 이들은 스마트폰 포렌식 대상자가 됐다. 그중 일부는 거짓말 탐지기 수사까지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공작파트 요원 스마트폰 포렌식이 진행되면서, 현재진행형이던 공작 관련 보안 사안들이 노출될 수 있다는 불만도 나온다. 대부분 공작사업에 대한 ‘리셋’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방첩사는 ‘대남 공작’을 방어하는 군 내부 정보기관이다. 정보사 공작파트는 ‘대북 공작’ 최전선에 서는 조직이다. 역할이 정반대인 조직이 ‘블랙요원 신상유출 사건’으로 접점이 생긴 셈이다. 방첩사는 A 씨 범행 사실을 인지한 뒤 공범을 찾는 과정에서 대대적으로 정보사를 조사한 것으로 전해진다.
취재에 따르면 정보사 고위 관계자가 방첩사 수사에 적극 협조하는 스탠스를 취하면서 방첩사 수사 강도가 높아진 것으로 알려졌다. 방첩사는 4주일이 넘는 기간 동안 정보사 공작파트에 상주하며 공범 찾기에 나선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군 내부 소식통은 “정보사 요원들이 이번 블랙요원 신상유출 사건과 관련해 말 그대로 ‘탈탈’ 털렸다”면서 “사실상 방첩사가 ‘군사보안’이라는 영역을 수사하면서, 정보사의 ‘공작보안’ 영역을 깊숙이 들여다본 셈”이라고 했다.
정보사 공작파트가 방첩사 수사에 무방비로 노출된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수사 범위와 절차 등에 대해 협의를 총괄해야 할 정보사 여단장이 사실상 공석이었다. 방첩사 상주조사에 앞서 정보사 여단장은 정보사령관과 갈등을 빚으며 하극상 논란 중심에 섰다. 여단장은 직무배제 인사처분을 받았다. 여단장이 자리를 비운 사이 정보사 수뇌부가 방첩사 수사에 적극 협조하며 정보사 공작파트 전체를 총망라하는 수사가 가능해졌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한 정보당국 관계자는 “방첩사가 계획적으로 정보사를 수사했다기보다, 전체 인원에 대한 전수조사 격으로 수사를 한 것”이라면서 “수사 결과가 사실상 단독 범행으로 결론난 것이 과잉 수사 방증”이라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정보사 내 공조자가 있다는 용의점을 가지고 수사를 한 게 아니고 그냥 전면적인 수사를 했다”면서 “혹시 벼룩이 있을까봐 초가삼간을 다 태워본 꼴 아니냐”고 비판했다.
이 관계자는 “정보사 공작파트는 그동안에도 군 내부에서 ‘서자’ 취급을 받아왔다”면서 “최근엔 각종 이슈가 불거지면서 역대급 외풍이 불고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그는 “예산을 많이 할당받지도 않고, 급여를 더 받는 조직이 아니어도 ‘군인 정신’ 하나로 성과를 내 왔던 정보사 휴민트가 십자포화를 당하는 국면을 편하게 바라볼 수는 없다”고 했다.
전직 정보당국 관계자는 “블랙요원 신상명단 유출 사건에서 유출한 개인(군무원 A 씨)의 양심적인 문제도 분명 크지만, 시스템적인 미비점으로 ‘개인의 일탈’을 자정하지 못했던 부분도 분명 있다”면서 “방첩사가 범죄 공조자를 찾으려고 정보사를 대대적으로 수사한 부분은 정보사 시스템 자체를 붕괴시킬 위험이 있는 대목”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정보사 공작파트에도 시스템을 개선할 여지를 남겨줘야 하는데, 수사라는 명분 아래 공작보안이 통째로 노출된 상황이 연출된 것으로 안다”면서 “정상적인 절차대로라면 공작 보안이 노출된 사안의 경우 공작을 전면 중단해야 한다”고도 했다.
다만 국방부 내부에선 방첩사의 이번 수사를 두고 ‘깔끔한 수사’였다는 시각도 있다. 8월 28일 국방부 관계자는 “쉬운 사건이 아니”라면서 “기무사가 해체되면서 수사 인원이 줄었다가 방첩사 방첩 수사단이 창설됐는데 짧은 시간에 최선의 노력으로 수사를 잘했다는 평가가 나온다”고 했다.
또 다른 군 고위 관계자는 “방첩사가 공들여 수사하다가 (언론에) 노출돼서 어려움이 있었다”면서 “최선을 다해서 수사했고, 군 검찰이 객관적으로 수사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정보사와 방첩사의 임무 특성이 전혀 다른 까닭에 이번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차도 존재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국방부 측은 방첩사 수사와 관련한 논란에 “방첩사는 관련 법령에 의거 적법 절차를 준수한 가운데 수사를 진행했다”면서 “과잉수사는 사실무근”이라고 해명했다. 정보사 공작파트를 대상으로 포렌식 및 거짓말탐지기 수사를 진행했는지 여부에 대해 국방부는 “현재 수사 및 재판 중 사안에 대한 세부적 답변이 제한된다”고 했다.
충암고 전성시대, 정보파트 인사에도 영향?
‘블랙요원 신상유출 사건’ ‘정보사 수뇌부 갈등’ 등의 이슈가 정보사를 뒤덮었다. 그 가운데 군 정보파트 장성급 인사 진급 경쟁에 대한 이야기도 회자된다.
최근 정치권에선 방첩사령부와 777사령부 등 군 주요 정보기관 사령관에 ‘충암고 라인’이 배치된 것을 두고 공방이 벌어진 바 있다. 윤석열 정부가 대통령 고교 동문을 주요 직위에 배치했다는 논란이 벌어진 까닭이다. 충암고 출신인 777사령관의 경우 임기제로 소장 계급장을 단 인물로 전해진다. 정보사령관은 정식 진급으로 소장 계급장을 달았다. 두 사령관은 육사 50기 동기생이다.
통상 정보사령관과 777사령관은 중장 계급에 해당하는 국방정보본부장 자리를 두고 경쟁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경쟁에서는 임기제 진급보다는 정식 진급한 ‘투스타’가 유리한 경우가 많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런데 최근 군 안팎에서 ‘충암고 라인’ 존재감이 부각되면서 정보 파트 진급 경쟁 구도를 바라보는 시각에 유의미한 변화가 생겼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