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안·부산 감천마을 등 예술 통해 지역 활성화 도모…문화예술·기획·거버넌스 ‘삼박자’ 갖춰야
허나 지금은 양상이 조금씩 바뀌고 있다. 시들어버린 지역에 문화예술을 매개로 다시 활력을 불어넣는 곳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문화예술로 지역경제를 견인하겠다는 프로젝트도 심심찮게 보인다. 실제로 지난 5년간 문화도시로 선정된 24곳은 문화예술을 매개로 지역활성화를 꿈꾸고 있다. 올해 말 대한민국 문화도시 선정을 놓고도 16개 도시가 열띤 경쟁을 벌인다. 이외에도 여러 지역에서 이런 문화예술 중심의 대담한 계획을 실행 중이다.
#예술로 지역 되살린 일본 나오시마
문화예술로 지역을 재생한 사례로 흔히 일본 나오시마(直島)를 예로 든다. ‘예술 섬 나오시마’를 검색하면 수많은 뉴스, 연구논문, 탐방 소개가 나온다. 영국의 세계적 관광잡지 '콘데나스트 트래블러'(Conde Nast Traveler)에서는 죽기 전에 가보고 싶은 세계 7대 명소로 나오시마섬을 소개하면서 “쇠퇴하던 섬을 예술로 채우자 세계 예술의 성지가 되었다”며 극찬을 아끼지 않는다. 매년 50여만 명이 다녀간다는 나오시마. 풍요로운 자연환경과 현대 건축물의 위용 그리고 문화예술을 지역 곳곳에 배치한 기획력 등 섬 전체가 잘 짜인 미술관 같다는 세간의 평이 이를 뒷받침한다. 그렇다면 실제 나오시마는 어떤 곳이며, 문화예술이 지역에서 얼마만큼 각광을 받을까?
나오시마는 일본 시코쿠 가가와현 카가와군 세토내해(瀨戶內海)에 위치해 있으며(오카야마市 남쪽) 둘레 16km, 인구는 3000명 정도인 작은 섬이다. 나오시마는 원래 광업이 주된 산업이었으나 시간이 흘러 광업은 사양길을 걷는다. 최현희는 ‘문화예술을 통한 도시혁신 성공 모델 연구(2023)’에서 “1980년 제련소마저 경쟁력을 잃고 문을 닫았다. 중금속 폐기물로 처리하지 못한 쓰레기가 쌓여 심각한 환경문제로 이어졌다. 1978년부터 1990년까지 무려 60만 톤의 산업 폐기물이 나오시마와 인근 테시마섬에 버려지면서 최악의 산업폐기물 집산지가 되어버린 것이다. 사람들이 살 수가 없었고, 젊은 사람들은 다 떠나고 노인들만 남아 있는 절망의 섬이 되었다”면서 단일한 중심산업의 쇠락이 지역사회에 가져오는 폐혜를 짚었다.
이때 나오시마를 변화시킨 한 인물이 등장한다. 일본 출판기업 베네세의 회장 후쿠다케 소이치로가 그 주인공이다. 그는 기업의 사회공헌 일환으로 나오시마를 예술의 섬으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발표하였다. 이후 1987년부터 시작된 일명 ‘나오시마 프로젝트’는 “세계의 모든 어린이들이 함께 모이는 장을 만들겠다”는 베네세그룹 측의 기대와 지역의 의지, 그리고 이를 지원한 행정당국의 노력이 어우러져 시행될 수 있었다.
나오시마 프로젝트는 크게 ‘미술관 프로젝트’와 ‘이에(家, 집)프로젝트’ 그리고 ‘세토우치트리엔날레축제’로 나뉜다. 첫째 ‘미술관 프로젝트’는 먼저 베네세그룹이 나오시마의 대지를 매입한 뒤 일본 유명 건축가 안도 타다오에게 설계를 맡겼다. “문화가 경제를 이끌어야 한다”는 소이치로 회장의 철학은 환경 파괴로 황폐해진 자연에 숙박시설과 미술관을 짓고 예술작품을 전시하겠다는 프로젝트로 구체화가 되었다. 1992년 ‘베네세하우스 뮤지엄’을 시작으로 2004년에는 섬의 능선을 침해하지 않도록 지하에 건립한 ‘지중미술관’이 설립되었다. 이어 ‘이우환미술관’과 ‘테시마미술관’이 건립되면서 거장들의 미술작품이 섬의 곳곳에 위치하게 되었다.
‘이에(家,집)프로젝트(Art House Project)’는 마을의 빈집과 공터를 미술관으로 탈바꿈하는 계획으로서 쇠퇴하던 마을에 활력을 불어넣고자 하였다. 마을 전체를 예술지역으로 만들겠다는 이 야심찬 계획은 섬의 중심인 혼무라지역을 대상으로 추진되었다. 베네세그룹은 망가져가는 가옥을 매입하고 이곳에 작가를 초청하여 그 집에 걸맞은 작품구상을 하도록 했고 지역주민들이 도슨트가 되어 관광객에게 작품을 해설하는 일을 하고 있다. 카도야(Kadoya·角屋), 미나미데라(Minamidera·南寺), 고오신사(Go’o Shrine·護王神社), 하이샤(Haisha)는 대표적 작품으로 유명하다.
‘세토우치 트리엔날레(The Setouchi Art Triennale)축제’는 세토내해 지역의 12개 섬과 해안 도시에서 열리는 예술제들을 일컫는 국제예술축제로 기간별로 나누어 봄부터 가을까지 8개월간 열린다. 최현희는 같은 연구(2023)에서 “세토우치 예술제는 2010년 제1회 트리엔날레를 시작으로 3년마다 “바다(海), 도시(都市), 마을(里)”의 조화라는 주제로 전시를 열고 있으며, 현대화와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지역의 가치와 의미를 새롭게 정의하는 것이 목표”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후 세토우치 트리엔날레에 세토내해 섬들을 찾아오는 관광객이 연간 100만 명이 넘는 등 이 계획은 대성공을 거두게 된다.
나오시마프로젝트는 종료된 사업이 아닌 진행 중인 사업이다. 베네세그룹은 이에(家, 집)프로젝트을 계속 추진하겠다고 하며 ‘세토우치 트리엔날레축제’는 2025년에 다시 개최될 예정이다. 이처럼 문화예술을 중심에 놓고 지역사회를 발전시키는 전략은 나오시마 사례에서 보듯 매우 유효하고 중요한 사례가 되고 있다.
#신안군과 부산 감천마을의 성과
국내에서도 문화예술을 중심으로 지역을 활성화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추진하는 도시가 여럿 있다. 신안군 예술섬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전남 신안군은 모두 1025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지역이다. 현재 신안군은 ‘1도 1뮤지엄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최근 신안군 안좌도는 세계 첫 수상미술관의 건립을 눈앞에 두고 있다. 나오시마 사례를 벤치마킹하였고 이를 통해 인구 소멸위기에 처한 신안의 각 섬에 예술을 통한 지역활성화를 이뤄내겠다는 구상을 실현하고 있다. 이렇듯 하나의 섬에 하나의 박물관 미술관을 짓겠다는 ‘1도 1뮤지엄’사업은 총 27개의 뮤지엄 건립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현재까지 16개를 완성했으며 현재도 11개 뮤지엄이 건립되고 있다.
신안군이 섬 전체를 보라색으로 칠한 이른바 ‘퍼플섬’ 계획은 많은 관광객을 모으는 데 성공했다. 예술을 통한 섬의 부흥을 경험한 신안군은 군내의 섬 전체에 문화와 예술이 꽃피는 지역으로 꾸며내는 일련의 계획을 진행 중이다. 사실 신안군은 인구소멸 고위험지역이지만 최근 전라남도에서 유일하게 인구가 증가된 곳이라고 한다. 이는 문화예술이 인구 유입에 긍정적 영향을 끼치고 있는 사례로 봐야 한다.
이호상·이명아는 ‘문화예술을 매개로한 도시재생 전략에 관한 사례연구(2016)’를 통해서 “지역의 실생활적 측면과 문화적 내용의 평가를 통해 지속가능한 발전가능성을 추구해야한다”고 주장하면서 부산 감천마을 사례를 들었다. 부산 감천동의 ‘골목길 프로젝트’는 골목길 곳곳에 아기자기한 작품을 설치하면서 빈집 갤러리들과 함께 지역의 정취를 만드는 데 주력했고, 운영에 있어서도 ‘감천동 문화마을 운영협의회라는 민관거버넌스를 통해 발전방안과 마을재생의 실질적인 주체가 되어 끊임없는 지역활성화를 도모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오시마 프로젝트에서도 베네세 측과 지역주민들의 거버넌스로서 관광협의체가 주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살펴볼 때 거버넌스의 동력이 지역활성화에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지를 알 수 있다.
#문화예술의 중요성 점점 커져
서두에 이야기한 3대 천덕꾸러기 중 문화예술은 최근 들어 점차 그 중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삶의 풍요를 말할 때 하나의 척도였던 예술은 점차 필수불가결한 것이 되고 있고, 지역의 경제를 견인하는 일정 부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문화예술이라는 재료를 지역과 환경에 맞추어서 어루만지는 좋은 기획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리고 협력적 거버넌스의 중요성은 거듭 강조되어야 할 부분이다. 지역에 애착을 갖고 지속성을 갖춰 발전방향의 가늠좌 역할을 하는 것은 거버넌스의 건실함이 좌우한다. 좋은 문화예술과 좋은 기획은 사람의 손에서 길러지고 커나가는 법이다. 나오시마는 이 삼박자를 잘 갖추고 있었음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최근 부산 영도구는 문화도시 사업 일몰을 결정했다고 한다. 영도구는 1차로 법정문화도시가 된 지역으로 5년간 괄목할 만한 많은 성과를 냈다. 하지만 사업의 일몰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일몰은 즉 문화도시를 통해 일구었던 커뮤니티와 문화예술 그리고 사람들의 정서가 더 이상 계속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에 부산 영도주민들은 문화도시의 성과를 이어가야 한다며 행정당국에 대화를 촉구하고 나섰다. 문화가 중요해진 시대에 문화예술의 부재를 염려하는 행동이다.
지역을 살리는 방법에서 문화는 이미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다. 단순히 당국의 예산이나 의지 문제로 가부가 결정되어서는 안 된다. 예술이 지역을 살리는 주요한 동력으로 발현되기 위해서는 ‘지역의 고유성을 반영한 문화예술, 좋은 기획, 협력적 거버넌스’라는 삼박자가 반드시 갖춰져야 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진형우. 예술단체, 세종문화회관, 문화도시센터장을 역임한 문화예술 기획자다. 문화에는 ‘동기, 방법, 움직임, 강렬함, 행동’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사람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의 모습으로 정의돼야 한다고 믿으며 하루를 가치 있게 사는 방법을 찾으려 노력 중이다.
진형우 문화예술 기획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