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세권 부지 포함 올해 신탁공매 60% 유찰…분양 성과 기대 낮아 한동안 시장 회복 난망
#공매 나온 토지 줄줄이 유찰
한국자산관리공사 온비드에 따르면 올해 1월 1일~9월 23일까지 개찰이 진행된 부동산 신탁사의 토지 공매 건수(기관명을 신탁으로 지정한 후 기타일반재산 중 대지 입찰 건수를 취합, 취소 공고 포함)는 총 3380건이다. 이 중 유찰된 건수는 2039건(60%)에 달했다. 낙찰된 건수는 22건(0.65%)에 그쳤다. 신탁사 토지 공매 건수는 2022년 1417건, 2023년 3476건 등으로 증가 추세에 있다.
신탁사가 공매에 부치는 토지는 주로 시행사가 대출 이자를 부담할 여력이 없는 사업장이다. 시행사에 브릿지론(토지 매입을 위한 단기 대출로 사업이 본격화되기 전 PF)을 내준 금융기관(대주단)은 브릿지론 만기 연장에 실패하는 등 사업이 회생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하면 신탁사에 공매를 맡긴다. 대출 일부라도 회수하기 위해서다. 서진형 광운대 부동산법무학과 교수(한국부동산경영학회장)는 “개발 사업에 착수했다가 브릿지론에서 본PF(사업이 본격화된 PF)로 전환에 실패하거나, 완공됐는데 분양이 안 돼 공매로 나온 경우가 많다”라고 말했다.
공매로 나온 토지들은 매수자를 찾지 못하는 사례가 두드러지고 있다. 서울 역세권에 있는 부지도 유찰이 거듭되고 있다. 지하철 6호선 이태원역 인근의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124-3·4 토지는 지난해 9월과 올해 2, 5월 공매에 부쳐졌지만 유찰됐다. 올해 8월부터 진행되고 있는 4번째 입찰은 11번째 회차까지 진행된다. 7번째 입찰 회차까지는 투자자가 나오지 않았다.
이 토지는 스타로드자산운용이 업무·리테일 시설을 지을 예정이었다. 하지만 512억 원 규모 브릿지론 만기 연장에 실패하며 공매에 부쳐진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9월 최초 공매 시 해당 토지의 최저입찰가는 685억 원이었다. 올해 8월 4번째 공매의 1회차 최저입찰가는 645억 원이었다. 10회차 입찰까지 낙찰자를 찾지 못하면 입찰 마지막 회차인 11회차의 최저입찰가는 386억 원으로 떨어진다.
지난 8월 공매에 나온 서울 강동구 천호동 358-12 대지는 5회차 입찰까지 유찰됐다. 이 공매 입찰은 7회차까지 진행된다. 이 토지의 감정가는 282억 원이다. 해당 부지 공매업무를 맡은 신영부동산신탁 한 관계자는 “건축 인허가까지는 끝났는데 PF 대출 실행이 안 된 부지”라며 “대출금이 연체되면서 금융기관에서 원금을 회수하기 위해 공매를 진행하게 된 사례”라고 설명했다.
지방에 위치한 토지 매물도 유찰이 거듭되기는 마찬가지다. 경기도 시흥시 정왕동 2724 외 1개 부지는 지난 8월부터 진행되고 있는 공매 입찰에서 1~4회차가 유찰됐다. 이번 공매 입찰은 14회차까지 진행된다. 이 부지는 앞서 지난해 3월 8번에 걸쳐 입찰이 진행됐지만 투자자를 찾지 못했다. 해당 부지는 시화멀티테크노밸리(MTV) 내 거북섬에 위치한 1만 5574㎡ 규모의 초대형 부지다. 감정평가액은 1073억 원에 달한다. 부동산 개발업체 더웨이브시화MTV는 이 부지에 생활형숙박시설을 지으려 2021년 830억 원 규모의 브릿지론을 받았다. 하지만 브릿지론 연장에 실패해 공매에 돌입했다.
토지 공매 유찰이 빈번한 이유는 가격을 둘러싼 매수측과 매도측의 의견차 때문이다. 부동산 신탁사 한 관계자는 “부동산 시장이 악화한 상황에서 매수자가 토지를 사서 PF를 일으키기는 부담이 크다. 최근 PF 조달 금리가 다소 떨어지기는 했지만 대주단을 모집하는 것도 어려운 실정”이라고 말했다. 부동산 신탁사 다른 관계자는 “대지를 사도 공사를 바로 진행하기도 어렵다. 당장 수익을 낼 수 있는 상품이 아니어서 사려는 사람들이 많이 없다”라고 밝혔다.
#당분간 온기 돌기는 힘들 듯
공매로 나오는 토지 매물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금융당국은 부실 PF 사업장의 구조조정에 고삐를 죄고 있다. 그간 금리 인상과 부동산 경기 회복을 기다리며 대출 만기 연장으로 버티던 PF 사업장에 금융당국은 경·공매 압박을 가하고 있다. 지난 6월 금융당국은 PF 사업성 평가 등급 3단계(양호·보통·악화우려)에서 4단계(양호·보통·유의·부실우려)로 세분화해 1차 사업성 평가를 진행했다. ‘유의’를 받은 사업장은 자율 매각 및 재구조화를, ‘부실우려’ 사업장은 경·공매 등을 통해 사업장을 처분하게 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지난 8월 29일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PF 1차 사업성 평가에 따르면 ‘유의·부실우려’ 사업장은 총 21조 원 규모였다. 전체 금융권 PF 익스포저(대출과 채무보증 등 위험노출액, 216조 5000억 원)의 9.7% 수준이다. 1차 사업성 평가는 연체, 연체유예 또는 만기연장 3회 이상 사업장(33조 7000억 원)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금융당국은 3개월 이상 연체된 사업장은 1개월 주기로 6개월 안에 공매를 완료해달라고 촉구했다. 지난 8월 29일 금감원 브리핑에서 박상원 금감원 중소서민부문 부원장보는 “사업장 정리계획이 제출되면서 9월 중순부터는 경·공매가 활발하게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공매로 나온 PF 사업장이 주인을 찾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앞서의 신탁사 관계자는 “금리 인하 전망도 나오지만 브릿지론이 본PF로 전환되려면 분양 성과에 대한 기대가 있어야 한다. 현재 공사비가 많이 올라간 터라 금리를 인하한다고 해서 사업성이 좋아질지는 의문”이라며 “내년 상반기는 지나야 입찰되는 토지가 늘 것 같다”고 내다봤다. 금융업계 한 관계자는 “적어도 올해 하반기에는 시장 상황이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 같다”며 “금리 인하가 되더라도 부동산 시장에 곧바로 영향을 끼치기까지는 시차가 있다”고 밝혔다.
수도권과 지방 사업장 간 양극화가 심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서진형 교수는 “내년 말까지는 공매로 나온 토지가 유찰되는 사례가 지속될 것 같다”며 “특히 지방은 장기적으로 상황이 어렵다고 봐야 한다. 지역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임재만 세종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수요가 없으면 땅값이 내려가도 사업하기가 힘들다”며 “결국엔 지역 균형 발전이 핵심”이라고 지적했다.
김명선 기자 se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