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 다 첫 우승 도전, 내년 1월 결승 3번기…변 9단 “지금까진 많이 졌으니 이젠 이길 때”
중국의 난적 딩하오 9단을 8강에서 꺾고 올라온 이지현과, 박정환 9단에게 거의 졌던 바둑을 마지막에 역전시키며 준결승전에 오른 변상일은 중반까지 치열하게 맞섰다. 하지만 중반, 하변에서 이지현에게 몇 차례 승부처를 벗어난 수가 나오면서 승부의 균형이 무너졌다. 이후는 변상일의 일방적인 페이스. 결국 중반까지 이어졌던 박빙의 흐름이 무색하게도 204수 만에 이지현이 돌을 거두고 말았다.
변상일은 승리 후 “2년 연속 결승에 진출했으니 LG배는 인연이 있는 대회라고 생각한다. 지난해 결승에서는 패했지만, 이번에는 꼭 우승하고 싶다”며 우승컵에 대한 강한 열망을 드러냈다. 이어 “결승 상대인 커제 9단은 경험도 많고 승부 감각이 뛰어난 까다로운 상대다. 상대 전적에서는 내가 많이 밀리지만, 그에 대한 부담은 없다. 지금까지 많이 졌으니 이제는 내가 이길 때가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한편 본선 진출자 중 최고령인 원성진 9단(40)은 셰얼하오 9단, 쉬자위안 9단, 신민준 9단을 잇달아 꺾으며 돌풍을 일으켰으나, 준결승에서 커제 9단에게 막혔다. 중반까지 흐름을 주도했지만 상대 대마를 공격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순간 집중력이 흐트러진 것이 패인이 되었다.
결승에 진출한 커제 9단은 “신안에 오기 전까지 결승에 올라갈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결승전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아직 모르겠다”며 “변상일 9단은 세계 최정상급 강자 중 한 명이고, 특히 인공지능(AI)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 또 평소 대국 내용도 아주 수준이 높기 때문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로써 내년 1월 20일부터 열리는 이번 LG배 결승전은 변상일 9단과 커제 9단의 3번기로 치러지게 됐다. 커제는 2014년 바이링배 우승을 시작으로 2020년 삼성화재배까지 메이저 세계대회 통산 8회 우승을 기록하고 있다. 반면 변상일은 2022년 춘란배 우승이 전부다. 하지만 최근 세계대회 성적만 놓고 보면 변상일 9단도 뒤지지 않는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1997년생 동갑내기인 둘 간의 상대 전적은 커제가 5전 전승으로 앞서 있다.
홍민표 국가대표 감독은 “두 기사의 스타일을 고려할 때 결승전은 굉장히 치열한 전투 바둑이 될 것”이라 예상했다. 그는 “변상일 9단의 입장에선 그동안 커제에게 패했던 패턴을 심도 있게 분석해 해결책을 찾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또한 상대 전적이 좋지 않다는 심리적 부담을 떨쳐내는 것이 두 번째 중요한 부분이다”라고 말했다. 홍 감독은 “준비 시간이 충분하지 않다면 변상일 9단이 약간 불리할 수 있겠지만, 남은 시간 동안 결승전을 잘 준비한다면 기대승률은 51% 이상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제29회 LG배 조선일보 기왕전의 우승상금은 3억 원, 준우승 상금은 1억 원이다. 제한시간은 각자 3시간이며 40초 초읽기 5회가 주어진다. 현재까지 한국은 13회, 중국은 12회, 일본은 2회, 대만은 1회 우승을 차지했다.
[승부처 돋보기] 제29회 LG배 준결승전 흑 이지현 9단(한국) 백 변상일 9단(한국) 204수 끝, 백 불계승
[장면도] 흑의 의도
큰 전투 없이 잔잔하게 흘러온 국면. 하지만 정중동이라고 이런 바둑이 더 어려운 법이다. 이때 등장한 흑1이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흑의 의도는 백2·4로 고분고분 받아주는 것. 그러면 흑5까지 자연스럽게 △ 한 점을 싸안을 수 있다. 하지만….
[실전진행] 흑, 제자리걸음
상대의 주문에 끌려 다니지 않는 백2의 후진기어가 침착한 수. 이지현 9단은 내친김에 흑3으로 뚫었지만 백4 이후 8이 실속 있는 진행이다. 흑은 왼쪽에 세 수나 들였지만, 백 모양에 비해 제자리걸음인 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다.
[흑의 최선] 피차 어려운 승부
그러므로 흑은 장면도 흑1 대신 이 그림 흑1부터 7의 수순을 밟는 것이 좋았다. 이 진행이라면 좌하 백도 엷은 모습이어서 피차 승부를 장담할 수 없는 바둑이었을 것이다.
유경춘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