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영 ‘중형’ 선고 재판부 회피 논란…재판부 “또 다른 헌법 가치 저해 위험 있다” 요청 기각
10월 8일 수원지법 형사11부(재판장 신진우)는 이재명 대표의 외국환거래법 위반, 남북교류협력법 위반,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뇌물 등 혐의에 대한 두 번째 공판준비기일을 열었다. 공판준비기일은 본격적인 재판을 앞두고 범죄 혐의에 대한 피고인 입장을 확인하고, 증거 조사 계획 및 혐의 입증 계획 등을 논의하는 절차다. 피고인에게 출석 의무가 부여되지 않는 만큼 이 대표는 법정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날 이 대표 변호인은 9월 30일 재판부에 재배당을 요청한 사유를 설명했다. 이 대표 측은 “현 재판부는 이화영 전 부지사의 외국환거래법 위반 등 사건 1심에서 유죄 판결을 했기 때문에 이재명 사건까지 맡는 건 무죄추정 원칙에 비춰 적절하지 않다고 본다”고 했다.
이 대표 측은 “현 재판부가 검토한 수사 기록에는 이재명 피고인이 증거로 동의하지 않을 증거도 포함돼 있을 거고, 공정한 재판 의지를 가지더라도 사건에 대한 예단과 편견을 가지지 않는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아무런 사전 지식도 없는 백지 상태에서 사건을 심리해야 공정할 거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검찰 측은 “재배당 요청 자체가 통상의 공범 사건에서 보기 힘든 특혜를 요구하는 것”이라며 “재판부 기피 사유는 소송법상 불공정한 재판을 진행할 것이라는 객관적 사정이 있어야 하는데 본 사건은 그러한 사유가 없다. 이는 재판을 지연시키려는 주장”이라고 반박했다.
앞서 6월 7일 형사11부는 이 전 부지사에 징역 9년 6월 선고했다. 재판부는 쌍방울그룹이 이 전 부지사 청탁을 받아 스마트팜 사업비, 이재명 대표 방북 비용 등 총 800만 달러를 대납했다고 판결했다. 이를 바탕으로 6월 12일 검찰은 이재명 대표를 불구속 기소했다. 이 대표는 이 전 부지사와 공모, 쌍방울그룹이 북한에 800만 달러를 대납하게 한 혐의를 받는다.
이재명 대표 측은 공범인 이화영 전 부지사에 대해 1심에서 유죄를 선고한 형사11부를 피하고자 재배당을 요청한 것으로 분석된다. 민주당 정치검찰사건조작 특별대책단(대책단)도 이재명 재판 논리를 구축하며 형사11부를 조목조목 비판한 바 있다. 정치권에선 민주당이 과반 의석을 이재명 대표 방탄에 악용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대책단은 이화영 1심 판결을 정치판결·편파판결로 규정하며 3가지 문제점을 지적한 것으로 파악됐다. 첫째, 쌍방울이 2019년 1월과 5월 두 차례에 걸쳐 작성한 대북 사업 협약서, 쌍방울 IR 자료, 국정원 문건 등에 대북송금 800만 달러가 이재명 대표를 위한 대납비용이 아니라는 점을 가리키고 있다는 게 대책단 주장이다. 그런데 형사 11부가 대납비용이라 쓸 수 없으니 사업비라고 허위로 쓴 것이라는 검찰 주장을 받아들였다고 지적했다.
두 번째는 당시 북미 정상회담 결렬로 남북 관계가 경색됐고,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으로 항소심에서 당선무효형을 선고받은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방북을 추진하는 것은 비상식적이라는 이화영 전 부지사 변호인 주장이 더 설득력이 있다고 옹호했다. 문재인 정부의 남북정상회담 특별수행단에서 이재명 지사가 포함되지 않아 대북 송금을 통해 방북을 추진했다는 법원 결정을 꼬집었다.
세 번째는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의 전문 증거밖에 없는 판결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당사자 사망’ 등의 특수한 상황에서만 전문 증거가 인정된다는 게 대책단 주장이다. 또 국정원 문건, 김성태 전 회장 진술 번복 등으로 전문 증거의 신빙성 떨어짐에도 법원에서 증거로 인정된 점을 문제 제기했다. 이는 이재명 대표 변호인 측이 내세우고 있는 논리와 흡사하다. 민주당 대책단이 이 대표 개인을 위해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지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양측 입장을 검토한 재판부는 검찰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지금과 같은 상황에 대한 명확한 실무상·법률 문헌상 근거가 없다. 이런 상황에서 재배당 요청을 받아주면 자칫 또 다른 헌법 가치를 저해할 위험이 있다”며 “이재명 측 변호사가 말한 점을 무겁게 생각한다. 헌법과 형사소송법에 따라 실체적 진실을 발견하고 피고인의 인권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신중하게 심리할 것이며, 재배당 형태로 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아울러 재판장은 “아시다시피 관련 사건 판결이 확정될 경우 증거법상 영향을 미치는 부분이 있어서 재판부가 반영 내지는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며 “조심스럽지만, 심리 효율성 측면에서 (관련 사건과) 중복되는 부분을 먼저 심리할 필요가 있나 싶다”고 말했다. 사실관계와 증거기록이 상당 부분 겹치는 이화영 전 부지사 사건 판결이 1심과 마찬가지로 유죄로 확정된다면, 이미 확인된 사안을 본 사건 재판 과정에서 재차 따져볼 필요가 없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이창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증거가 부족해서 무죄가 될 여지는 있겠지만, 국민 상식선에서 바라보면 이재명 대표는 유죄 받지 않겠나”라며 “이화영 전 부지사가 누굴 위해서 대북송금 행위를 했는지만 보면 된다. 부지사가 도지사 몰래 이 일을 추진했다는 건 비상식적이다. 이 전 부지사 변호인도 ‘이화영에 대한 유죄 판결은 불가피하게 향후 이재명에 대한 유죄를 추정하는 유력한 재판 문서로 작용할 것’이라고 밝히지 않았나”라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민주당은 사법부를 전방위적으로 압박하고 있다. 10월 2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쌍방울 대북송금’ 사건 담당인 박상용 수원지검 부부장검사에 대한 탄핵 청문회를 열었다. 앞서 6월엔 대책단이 쌍방울그룹 대북송금 재수사 특검법을 발의하기도 했다. 이에 국민의힘은 이재명 사법리스크 방탄을 위해 과반 의석을 악용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허일권 기자 oneboo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