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대 리그 승률 1위 팀 간 역대 5번째 매치업…막강한 화력 대결이 가장 큰 볼거리
먼저 월드시리즈에 오른 건 아메리칸리그 패권을 차지한 양키스다. 양키스는 10월 20일(한국시각) 끝난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십시리즈에서 클리블랜드 가디언스를 4승 1패로 물리치고 2009년 이후 15년 만에 월드시리즈 진출을 확정했다. 다저스는 다음 날인 10월 21일 뉴욕 메츠와의 내셔널리그 챔피언십시리즈를 4승 2패로 마쳐 2020년 이후 4년 만에 다시 월드시리즈 무대를 밟게 됐다. 이로써 올 시즌 MLB 승률 전체 1위(0.605·98승 64패) 다저스와 2위(0.580·94승 68패) 양키스가 월드시리즈에서 맞붙는 '퍼펙트 매치업'이 완성됐다. 양키스는 통산 28번째, 다저스는 통산 8번째 우승에 각각 도전한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두 팀의 월드시리즈는 10월 26일 다저스의 홈 로스앤젤레스 다저스타디움에서 7전 4선승제로 막을 올린다.
#오타니 vs 저지
이번 월드시리즈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다저스의 오타니 쇼헤이(30)와 양키스의 애런 저지(32)가 펼치는 '세기의 대결'이다. 둘은 올해 내셔널리그와 아메리칸리그 최우수선수(MVP)를 사실상 예약한 현역 최고 스타플레이어들이다. 몸값도 천문학적이다. 오타니는 올 시즌을 앞두고 자유계약선수(FA)가 돼 다저스로 이적하면서 10년 총액 7억 달러에 사인했다. 전 세계 프로스포츠 역대 최고액 계약이다. 저지는 그보다 1년 먼저 양키스와 9년 계약을 하면서 역시 3억 6000만 달러라는 거액을 약속 받았다. 당시 역대 MLB FA 최고액 신기록이었는데, 투수와 타자를 겸업하는 오타니에게 1년 만에 1위를 물려줬다.
오타니는 올 시즌 MLB 역사상 최초로 50홈런-50도루를 달성하는 신기원을 열었다. 팀이 치른 162경기 가운데 159경기에 출장해 타율 0.310, 홈런 54개, 130타점, 도루 59개, OPS(출루율+장타율) 1.036의 놀라운 성적을 냈다. 저지는 양대 리그를 통틀어 홈런(58개), 타점(144점), OPS(1.159) 1위에 올랐다. 158경기에서 중심타자 겸 주전 외야수로 뛰면서 타율도 0.322를 기록하는 정확성을 자랑했다. 올해 규정 타석을 채운 MLB 전체 타자 중 OPS가 '1'을 넘긴 선수도 오타니와 저지뿐이다. MLB닷컴은 "한 시즌 50홈런 타자가 소속된 팀끼리 월드시리즈에서 맞붙는 건 올해가 사상 처음"이라고 썼다. 아메리칸리그 홈런왕과 내셔널리그 홈런왕을 보유한 팀들끼리의 대결도 1956년 이후 68년 만이다. 재밌게도 당시 월드시리즈 매치업 역시 양키스(미키 맨틀)와 다저스의 전신 브루클린 다저스(듀크 스나이더)였다.
심지어 둘은 오타니가 LA 에인절스에 몸담았던 2023년까지 3년 연속 아메리칸리그 MVP를 놓고 엎치락뒤치락하던 라이벌 관계다. 2021년엔 오타니, 2022년엔 저지, 2023년엔 다시 오타니가 번갈아가며 MVP 트로피를 가져갔다. 특히 2년 전인 2022년의 대결이 백미였다. 저지는 당시 홈런 62개를 터트리면서 팀 선배 로저 매리스가 1961년 남긴 종전 아메리칸리그 역대 한 시즌 최다 홈런(61개) 기록을 61년 만에 갈아 치웠다. 또 금지 약물의 도움을 받지 않은 타자로는 역대 3번째로 한 시즌 60홈런을 돌파했다. 오타니는 타자로 홈런 34개와 95타점을 기록하면서 투수로도 15승, 평균자책점 2.33에 탈삼진 219개를 기록했다. 그가 만장일치로 MVP가 됐던 2021년보다 더 좋은 성적이었다.
결국 '62홈런'의 상징성을 등에 업은 저지가 그해 MVP로 선정됐고, 오타니는 이듬해 다시 만장일치로 MVP에 올라 한을 풀었다. 오타니가 지난해 말 내셔널리그의 다저스로 이적하지 않았다면, 올해도 2022년을 능가하는 MVP 불꽃 대결이 펼쳐졌을지도 모른다.
#'MVP 대결'에 열기 고조
현지 언론의 관심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MLB 사무국은 공식 소셜미디어(SNS)에 저지와 오타니가 마주 보는 듯한 모습으로 편집한 사진을 올리면서 "두 명의 최고 스타가 월드시리즈에서 맞붙는다. 승자는 누구일까"라고 썼다. MLB닷컴도 "월드시리즈가 끝나고 몇 주 뒤에야 정규시즌 MVP가 확정되지만, 저지와 오타니의 수상은 유력하다"며 "월드시리즈에서 아메리칸리그 MVP와 내셔널리그 MVP의 대결을 보게 되는 것"이라고 썼다.
AP통신도 사실상의 'MVP 대결'에 주목했다. "1980년 이후 양대 리그 MVP가 월드시리즈에서 만난 건 1988년 커크 깁슨(다저스)과 호세 칸세코(오클랜드 애슬레틱스), 2012년 버스터 포지(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 미겔 카브레라(디트로이트 타이거스)가 전부다. 올해의 저지와 오타니가 세 번째로 기록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매체는 '홈런왕 대결'과 관련해서도 "오타니와 저지 이전에 양대 리그 홈런왕이 월드시리즈에서 격돌한 사례는 다섯 번뿐이었다"며 "1921년 베이브 루스와 조지 켈리, 1928년 루스와 짐 보텀리, 1936년 루 게릭과 멜 오트, 1937년 조 디마지오와 오트, 1956년 맨틀과 스나이더가 정규시즌을 홈런 1위로 마친 뒤 월드시리즈에서 경쟁했다"고 소개했다.
두 선수도 자신들에게 쏟아지는 관심을 잘 알고 있다. 둘 다 이번 월드시리즈가 데뷔 후 첫 출전이라 더 그렇다. 저지는 10월 23일 뉴욕 양키스타디움에서 열린 현지 언론과의 기자회견에서 관련 질문을 받자 "오타니는 감명 깊은(Impressive) 운동선수이자 최고의 야구 선수다. '야구'라는 종목의 앰배서더(홍보대사)나 다름없다"며 "오타니는 타격의 정확성과 파워는 물론이고, 스피드까지 갖췄다. 올 시즌 그가 도루 50개 이상(59개)을 해내면서 타석에서도 엄청난 결과를 낸 것을 두고 수많은 찬사가 나왔지만, 그 대단함을 다 표현하기엔 부족할 것 같다"고 극찬했다.
저지는 또 "오타니가 같은 아메리칸리그에서 뛰던 지난 시즌까지는 정규시즌에 여러 차례 대결했다. 당시 그의 타구가 (외야수인) 내 머리 위로 날아가 홈런이 되는 장면도 여러 번 봐야 했다"며 "그래도 이번엔 느낌이 다르다. 가장 중요한 순간에 가장 큰 무대인 월드시리즈에서 그와 대결하는 기회를 얻게 된 건 정말 멋진 일"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월드시리즈 전까지의 페이스는 오타니가 더 낫다. 디비전시리즈에서 부진했던 오타니는 챔피언십시리즈 6경기에서 타율 0.364, 홈런 2개, 6타점, 9득점으로 살아나는 기색을 보였다. 특히 올가을 득점권 타율은 0.667(9타수 6안타)다. 반면 저지는 챔피언십시리즈까지 올해 포스트시즌 1할대 타율(0.161)을 벗어나지 못했다. 전매특허인 홈런도 디비전시리즈에서는 나오지 않았다가 챔피언십시리즈에서 2개를 때려 체면치레를 했다.
오타니는 내셔널리그 우승이 확정된 직후 "월드시리즈 출전은 내 인생의 목표였는데 이뤄지게 돼 기쁘다. 다음 목표는 당연히 월드시리즈 우승"이라며 "양키스는 저지, 후안 소토를 보유한 최고의 팀이다. 둘 외에도 양키스는 매우 뛰어난 선수로 라인업을 짠다. 다저스 선수들 모두 힘을 모아 양키스와 맞설 것"이라고 출사표를 던졌다. 오타니는 2018년 빅리그에 데뷔했지만, 한 번도 포스트시즌 무대를 밟지 못했다. 올해는 염원하던 가을 무대를 마음껏 누리고 있다. 만만치 않은 상대를 만나게 된 저지는 "다저스는 모든 걸 갖춘 팀이다. 하지만 나는 어린 시절 양키스가 월드시리즈에 올라 우승할 때의 감동을 여전히 기억한다"며 "이번 시리즈도 무척 특별한 경험이 될 것 같아 기대된다"고 각오를 다졌다.
#MLB가 기다린 매치업
오타니와 저지의 대결을 차치하더라도, 전통의 명문 구단 다저스와 양키스의 21세기 첫 월드시리즈 격돌은 그 자체로 MLB 최고의 흥행카드다. 두 팀이 월드시리즈에서 만난 건 1981년 이후 무려 43년 만이다. 20세기에 총 11차례 월드시리즈 무대에서 만났던 다저스와 양키스가 마침내 역대 12번째 맞대결을 펼치게 됐다. 월드시리즈 역사상 가장 자주 맞붙은 매치업이고, 두 번째로 많은 양키스-샌프란시스코(7회) 대결보다 5번이나 더 많다. 맞대결 시 우승 횟수는 양키스가 8회(1941·1947·1949·1952·1953·1956·1977·1978년), 다저스가 3회(1955·1963·1981년)로 양키스의 압승이었다. 그러나 가장 최근 맞대결인 1981년 월드시리즈에선 다저스가 4승 2패로 양키스를 꺾고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양키스는 자타가 공인하는 '올 타임 넘버 원' 팀이다. 지난해까지 총 40차례 참가한 월드시리즈에서 27차례 정상에 올라 역대 최다 출전과 우승 기록을 모두 보유하고 있다. 월드시리즈 출전 횟수에선 LA 다저스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이상 18회)가 공동 2위, 우승은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11회)가 2위였는데 둘 다 양키스와 격차가 크다. 다저스는 올해 19번째 월드시리즈에 오르게 되면서 지구 라이벌이자 숙적인 샌프란시스코를 2위로 밀어내고 내셔널리그에서 가장 월드시리즈에 많이 진출한 팀으로 등극했다. 특히 2010년 이후에는 전성기에 가까운 성적을 내고 있다. 3회(2017·2018·2020년) 월드시리즈에 올라 1회(2020년) 우승하는 기세를 뽐냈다. 반면 양키스는 월드시리즈 진출과 우승 모두 2009년이 마지막이었다.
무엇보다 올해 월드시리즈는 여러모로 '최고'의 자리에 있는 팀들끼리의 대결이다. MLB 사무국이 1994년 포스트시즌에 와일드카드를 도입한 이후 양대 리그 승률 1위 팀끼리 맞붙은 월드시리즈는 올해가 5번째에 불과하다. 정규시즌 승률이 더 높은 다저스가 월드시리즈 1~2차전과 6~7차전을 홈에서 치를 수 있는 어드밴티지를 얻었다. 또 미국 경제매체 포브스는 올해 MLB 30개 구단 가치 평가에서 양키스와 다저스를 각각 1위와 2위로 평가했다. 양키스가 75억 5000만 달러, 다저스가 54억 500만 달러로 추산됐다. 이뿐만 아니다. 올해 양키스는 선수단 연봉 총액 3억 3322만 달러로 MLB 30개 구단 중 2위, 다저스는 2억 4982만 달러로 3위에 이름을 올렸다. 실력과 돈을 모두 보유한 '스타군단'이 서로에게 창을 겨누는 모양새다.
#진정한 홈런 군단은?
그만큼 올해 월드시리즈는 좀처럼 승자를 점치기 어렵다. 스포츠 베팅 전문 어플리케이션인 'ESPN 벳(Bet)'에 따르면, 팬들은 다저스의 4승 2패 우승-다저스의 4승 3패 우승-양키스의 4승 3패 우승을 순서대로 점쳤다. 6차전 이전에는 끝나지 않는 접전을 예상한 셈이다. 그중에서도 막강한 타선 대결이 가장 큰 볼거리다. 다저스 타선은 올해 정규시즌 팀 타율 0.258(전체 4위·리그 3위), 홈런 233개(전체 2위·리그 1위), OPS 0.781(전체 1위)의 위용을 뽐냈다. 오타니-무키 베츠-프레디 프리먼으로 구성된 'MVP 트리오'가 굳건히 버티고 있다. 프리먼은 2020년 내셔널리그 MVP였고, 베츠는 2018년 보스턴 소속으로 아메리칸리그 MVP를 받았다. 저지조차 "다저스는 상위 타선에 MVP가 3명이나 있다. 시작과 동시에 그 세 명을 상대하는 건 투수에게 매우 힘든 일"이라고 혀를 내둘렀을 정도다. 양키스는 팀 타율 0.248(전체 9위·리그 4위)과 OPS 0.762(전체 3위·리그 1위)에서 다저스에 조금 뒤지지만, 팀 홈런 237개로 MLB 전체 1위에 오른 '홈런 군단'이다. 홈런 1위 저지가 버티고 있고, 후안 소토(41개)와 장칼로 스탠턴(27개)도 MLB를 대표하는 거포들이다. 실제로 양키스는 챔피언십시리즈 5차전에서 스탠턴의 동점 홈런과 소토의 연장 결승포로 월드시리즈행 티켓을 가져왔다.
자연스럽게 월드시리즈 예매 전쟁도 뜨겁다. 스포츠 전문 매체 디 애슬레틱은 최근 "올해 월드시리즈 입장료가 MLB 역사상 가장 비쌀 수 있다"고 보도했다. 이 매체는 "미국 온라인 티켓 재판매 플랫폼인 '스텁허브(StubHub)'에서 1~3차전 티켓 중 가장 저렴하게 살 수 있는 표가 약 1100달러에서 1300달러에 판매되고 있다. 평균 가격은 1667달러"라고 전했다. 1667달러는 약 230만원에 달하는 거금이다. 108년 만의 우승을 노리던 시카고 컵스와 68년 만의 우승에 도전하던 클리블랜드가 맞붙었던 2016년 월드시리즈 이후 가장 비싼 가격이라는 후문이다. 애덤 부델리 스텁허브 대변인은 디 애슬레틱에 "현재 판매 흐름으로 볼 때, 구매를 원하는 이용자 수 측면에서 스텁허브 역사상 표가 가장 많이 팔리는 월드시리즈가 될 가능성이 크다"며 "다저스와 양키스라는 두 상징적인 팀이 보유하고 있는 엄청난 팬덤의 영향"이라고 분석했다. 판매량은 이미 2021년 대비 2배, 2022년 대비 4배를 넘어선 것으로 알려졌다.
배영은 중앙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