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의 시스템 공천·승부수 전략 등 참패 원인…설문조사선 대통령실 책임 다수, 친윤·친한 갈등 뇌관 부상
#201일 만에 발간된 ‘총선백서’
10월 28일 국민의힘 총선백서특별위원회(특위)는 최고위원회의 보고를 거쳐 267쪽에 달하는 총선백서를 공개했다. 당초 특위는 7·23 전당대회 전에 백서를 내놓을 계획이었지만, 총선 참패 책임론 공방 등 불필요한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비대위 의견을 받아들여 발간 시점을 미뤘다. 백서 공개가 미뤄지면서 전대 과정에서 불거진 문제들도 추가로 담기게 됐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의 ‘김건희 여사 문자 읽씹(읽고 씹음) 논란’과 ‘비례대표 공천과정 잡음 의혹’ 등이다.
‘마지막 기회’라는 제목의 백서엔 22대 총선 참패 원인과 책임이 담겼다. 구체적으로 △불안정한 당정관계 △미완성의 시스템 공천 △절차적 문제와 확장성 부재 야기한 비례대표 공천 △승부수 전략 부재 △조직 구성 및 운영의 비효율성 △효과적 홍보 콘텐츠 부재 △당의 철학과 비전의 부재 △기능 못한 싱크탱크 여의도연구원 등 8가지를 꼽았다. 당정관계를 제외하면 총선 참패 책임 대부분을 당에게 돌리는 모양새다. 사실상 총선을 지휘했던 한동훈 대표 책임론을 부각한 것으로 읽힌다.
패배 원인 중 ‘불안정한 당정관계로 국민적 신뢰 추락’은 백서 맨 앞에 나왔다. 특위는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수수 의혹과 이종섭 호주대사 임명, 황상무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 발언 논란 등 연이은 이슈가 정권심판론에 불을 붙였지만, 당도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함께 존재한다”며 “위 이슈들에 대해 당은 대립각을 세우기보다 정부의 기조를 따라가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는 등 당정 사이에 건강하고 생산적인 긴장이 조성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백서는 총선 당시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김건희 여사 문자를 읽고 무시했다는 논란도 담았다. 특위는 “총선 패배 두 달 뒤에 드러난 이른바 영부인 문자 논란은 비대위원장과 대통령실 모두 적절한 대응에 실패했으며, 총선 과정에서 원활하지 못했던 당정관계가 주요 패배 원인이었음을 다시 한 번 구체적으로 확인해줬다”고 설명했다.
미완성의 시스템 공천과 절차적 문제와 확장성 부재를 야기한 비례대표 공천은 각각 두 번째와 세 번째 장을 차지했다. 특위는 시스템 공천 전략을 반쪽짜리로 혹평하며, 현역의원 재배치 및 국민추천제도 졸속 추진 논란 등이 불거졌다고 지적했다. 비례대표 공천의 절차적 하자, 총선 막판에 불거졌던 비례대표 ‘사천 논란’도 참패 주요 원인으로 지목했다. 사실상 당시 총선 공천 전략을 주도한 한동훈 비대위원장에게 책임을 묻는 셈이다.
특위는 “총선 업무를 총괄한 사무총장(친한계 장동혁 의원) 스스로 ‘반쪽짜리 시스템 공천’이었다고 평가했다. 당이 일찍부터 인재 영입을 준비하지 못해 후보군에 한계가 있었고, 사실상 총선 직전에 만든 기준은 많은 사람들이 납득하기 어렵다는 것”이라며 “일부 출마자들은 경선·결선 기준이 다소 비합리적이었다는 점(다자경선에서 과반에 다름없는 득표를 했음에도 결선을 치른 사례), 현역 의원 재배치나 국민추천제와 같이 기존의 원칙과 기준에서 벗어난 공천 사례들이 발생하며 시스템이 100% 지켜지지 않았다는 점에 대해 아쉬움을 나타냈다”고 진단했다.
특위는 “공관위의 비례대표 후보 면접 최종 심사결과 자료가 국민의미래 지도부 및 사무처 실무진과 공유되지 않았고 현재도 남아있지 않다. 이는 심각한 절차적 하자로 ‘시스템 공천’이 이루어졌는지 의문을 초래한다”며 “명단 발표 시 이례적인 비례대표 연속 공천, 징계 및 형사처벌 전력자 공천, 호남 인사와 사무처 당직자 배려 부족 등의 이슈가 불거지며 사천 논란으로 막판 내홍을 야기했다. 특히 공천 신청을 하지 않은 후보가 당선 안정권에 배정된 점에 대해서도 납득하기 어렵다. 비례 공천에 대해 다양한 우려의 목소리가 전달되었으나 지도부는 공천을 강행했다”고 지적했다.
총선 당시 친윤계 이철규 의원은 국민의힘 위성정당인 국민의미래 비례대표 공천을 두고 공개 반발하면서 ‘한동훈 사천’ 논란이 불거졌다. 비례대표 명단에 올랐던 이시우 전 국무총리실 서기관과 강세원 변호사가 사천을 받았다는 주장은 전당대회 과정에서도 재차 언급됐다. 또 이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의 측근 주기환 전 광주시당위원장이 당선권 밖에 배치된 것 등을 두고 ‘호남 홀대’라고 비판했다.
승부수 전략 부재에서는 한동훈 대표가 내세웠던 ‘이조(이재명·조국) 심판론’ 등을 패배 원인으로 지목했다. 특위는 “집권여당은 ‘유능함’을 앞세워야 했다. 정부의 정책과 성과를 적극적으로 홍보할 수 있는 선거 전략을 체계적으로 세워야 했으나 실패했다. 선거 초반 당은 국민택배 콘셉트의 공약 홍보로 선전했다. 하지만 조국혁신당 등장 후에는 이조심판론으로 선회, 이후에는 개헌저지선 확보와 같은 읍소 전략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민생과 경제가 실종됐다”며 “백서특위 설문조사에서 보듯 이조심판론은 집권여당의 선거전략으로 적절하지 못했다고 판단되며, 오히려 선거를 정권심판론에 가두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짚었다.
나머지 △조직 구성 및 운영의 비효율성 △효과적 홍보 콘텐츠 부재 △당의 철학과 비전의 부재 등 3가지도 당이 총선에서 역할을 하지 못한 것을 지적했다. 특히 한동훈 총괄선대위원장 1인 체제 한계를 지적했다. 특위는 “총선을 앞두고 비대위 체제가 들어서면서 사무총장, 여의도연구원 원장을 포함한 모든 지휘부가 교체되면서 정책의 연속성을 이어나갈 수 없었다”며 “선거기간 직면하는 각종 위기상황, 특히 조국혁신당 출현에 따른 중대한 선거구도 변화에 대해 선대본부와 상황실의 대응방향 결정이 기민하고 적절하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기능 못한 싱크탱크 여의도연구원’ 부분에서는 △여론조사 결과의 부정확성 △여론조사 결과 및 빅데이터 보고서 미활용 △정당 산하 정책연구기관으로서의 역할 미비 △연구원 운영 방향의 안정성과 연속성 담보 부재 등을 문제로 지적했다. 특위는 “한동훈 총괄선대위원장의 유세지원 동선 결정에 여의도연구원장이 깊이 관여하는 등 선대위 운영에서 많은 문제점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당시 홍영림 여의도연구원장은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선임했다.
#‘친한 vs 친윤’ 새로운 뇌관
국민의힘 총선 후보와 당직자, 국회 보좌진, 출입 기자 등 544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는 대통령실 책임을 꼬집었다. 구체적으로 △이종섭·황상무 이슈(8.90점) △윤석열 대통령의 대파 논란(8.75점) △김건희 여사 이슈(8.51점) △해병대 채 상병 이슈(8.24점) △의대 정원 확대(8.09점) △조국혁신당 출현(8.05점) △당정 관계 이슈(7.96점) 순으로 선거에 영향을 끼쳤다고 꼽았다. 1~5위 순위는 모두 대통령실과 연관된 문제다. 백서가 맨 앞장에 내세운 당정관계는 마지막인 7위에 그쳤다. 아울러 ‘윤석열 정부의 상황 대응 및 정책 방향에 만족했냐’는 질문에 만족한다는 2.11점에 불과했다.
계파색이 상대적으로 옅은 김용태 국민의힘 의원도 이번 총선 참패는 윤석열 정부에 대한 중간평가라고 밝혔다. 10월 30일 김 의원은 채널A ‘정치시그널’에서 “이번 총선은 결과적으로 큰 틀에서 윤석열 정부가 잘하고 있는지, 잘못하고 있는지에 대한 평가에 대한 총선이었다고 생각한다. 그거를 부정할 필요도 없고 딱 그거를 인지하는 게 중요한 것 같다”며 “여당이 패배하고 나서 대통령께서도 사과하는 뉘앙스의 말씀을 많이 하셨던 걸로 알고 있다. 본인의 책임이라는 표현도 했었고”라고 말했다. 이어 “공천에 대한 문제, 당정에 대한 문제, 선거 전략에 대한 문제(는) 부차적인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친윤계와 친한계는 총선백서를 두고 미묘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10월 29일 친윤계 김재원 국민의힘 최고위원은 ‘정치시그널’에서 “(대파 논란 등이) 요즘 만약에 나갔으면 그게 그렇게 큰 논란이 됐겠어요?”라고 반문하며 “권력을 잡은 사람들의 하나의 잔칫상으로 비례대표 제도가 운영되어서 안 된다. 비례대표 공천 과정은 정말 중요한데도 불구하고 아무도 모르는 방법, 아무도 납득하지 못하는 방법으로 진행이 됐다”고 꼬집었다. 이어 “(현재 최고위원회에) 당시 공천을 책임진 사람도 있고 당선돼서 현역 의원이 된 사람도 있으니 ‘지금 문제 삼은들 무슨 의미가 있겠나’라는 분위기인 것 같다”고 덧붙였다.
같은 날 친윤계 장예찬 전 국민의힘 최고위원은 SNS에 “공관위에서 저와 도태우 후보를 긍정적으로 평가했으나, 외부의 비난 공세에 흔들렸다는 점, 공관위 및 비대위와 조율된 사과문을 올렸어도 공천이 취소됐다는 점, 경선을 거쳐 지역 유권자의 검증과 선택을 받아 공천받은 만큼, 혼란이 야기됐다는 점, 모두 명백하게 총선백서에 명시가 됐다”며 “총선백서를 근거로 부당한 공천 취소의 책임을 묻겠다”고 한동훈 대표를 직격했다.
10월 29일 친한계 장동혁 의원은 SBS ‘김태현의 정치쇼’에서 “시스템 공천이 불완전했다, 완전하지 못했다라고 하는 것은 시스템 공천은 몇 년을 준비해야 되는 것 아닙니까?”라고 반문하며 “21대가 시작되면 22대를 위해서 4년간 시스템 공천을 준비해야 되는데요. 4년간 그걸 준비하지 못했다면 과연 누구 잘못이냐. 결국은 4년 내내 당을 운영했던 모든 사람들의 잘못이다라고 하는 것과 똑같은 결과가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같은 날 친한계 구자룡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은 ‘정치시그널’에서 “총선 패배 원인에 대해서 요인이 뭐냐고 생각하냐고 했을 때 당정에 대한 이슈는 점수가 굉장히 낮다. 왜 제목을 그렇게 뽑았는지 의문스러웠다”며 “만약에 당정 일체로서 총선을 치렀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는 취지라면 한동훈 비대위가 뭐 하러 들어왔을까요? 그냥 김기현 체제로 치르면 됐지. 김기현 체제는 완전 동조화 돼 가지고 일체로서 민주당으로부터 용산 출장소라는 비판을 받았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힘들었던 거 아닌가요?”라고 말했다. 이어 “한 발짝 더 들어가 ‘그래서 당정 사이에서 책임이 뭐다’ 라고까지 갔어야 되는데 당정이 문제였다고 하면 모두의 책임이라는 건데 굉장히 두루뭉술하다”고 지적했다.
친한계는 ‘이조심판론’을 내세운 것도 당시 여권 지지율이 떨어져 100석 획득도 어렵다는 얘기가 나왔을 때 꺼냈던 전략이라는 입장이다. △이종섭·황상무 이슈 △윤석열 대통령의 대파 논란 △의대 정원 확대 등이 여론을 악화시켜서 어쩔 수 없이 전략을 수정해야만 했다는 것이다. 친한계 신지호 전략기획부총장은 최고위에서 수시로 바뀌는 여론 흐름을 백서에 반영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고 전해진다.
허일권 기자 oneboo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