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캠프 인사 “‘9.1%p 차 승리’ 여론조사로 회의” 주장…유입 경로 불분명 속 윤 통해 전달 가능성 주목
#신용한 폭로 파문
명태균 씨는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대선후보 측에 불법 여론조사를 무상으로 제공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미래한국연구소에서 여론조사 업무를 담당했던 강혜경 씨가 국회에 제출한 녹취록에 따르면 명 씨는 지난 대선 때 윤석열 후보 지지도를 파악하는 여론조사를 했다.
2022년 2월 28일 강 씨와의 통화에서 명 씨는 “그럼 지금부터 매일 (대통령) 선거일까지 (여론조사를) 돌린다”라고 지시를 내렸다. 강 씨는 당내 경선 때부터 대선 본선까지 80여 건의 여론조사가 실시됐고, 비용은 3억 7500만 원이 들었다고 주장했다.
윤석열 후보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제출한 대통령 선거 비용 자료엔 미래한국연구소 여론조사에 지출된 내역은 없다. 김영선 전 국민의힘 의원은 강 씨와의 통화에서 “명태균이가 바람 잡아갖고 윤석열 대통령을 돕느라고 벌어들이는 돈의 대부분을 거기다 썼잖아”라고 말했다. 여론조사를 했지만 돈은 받지 못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는 대목이다.
민주당은 여론조사 과정에서 명 씨가 국민의힘 당원 명부를 활용했다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노종면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미래한국연구소가 2021년 10월 국민의힘 당원 57만 명의 명부를 입수해 미공표 여론조사를 했다고 밝혔다.
명 씨가 여론 조작을 지시한 정황도 나왔다. 명 씨는 2022년 2월 28일 강 씨와의 통화에서 “어차피 공표할 건 아니잖아요. 그냥 조사만 하는 거는 관계없잖아요. 사전투표할 거냐, 그다음 후보 누구 찍을 거냐? 거기는 허경영이 빼요. 그다음에 기타 후보 가져가면 되죠. 그다음에 정당 지지. 그거 3개만 딱 물어보면 간단하죠”라며 “이게 연령별 득표율을 하면 더 60세나 이런 데 다 올라가제. 윤석열이가. 그거 계산해 갖고 넣어야 된다”고 지시했다. 가중치를 조절해 윤석열 후보 지지율을 높이려는 시도로 풀이된다(관련기사 “윤석열 여론조사 대가로 김영선 공천” 명태균 사건 ‘키맨’ 강혜경 녹취록 공개, 위력은?).
이런 가운데, 미래한국연구소의 여론조사 보고서가 윤석열 캠프 핵심 참모진에게 공유됐다는 주장이 나왔다. 신용한 전 서원대학교 석좌교수는 미래한국연구소가 2022년 3월 8일 작성한 여론조사 보고서가 윤석열 캠프 안에서 공유됐다고 밝혔다.
신 전 교수는 박근혜 정부 시절 청와대직속청년위원장(장관급)을 지냈다. 이후 바른미래당으로 당적을 옮겼다가 다시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으로 복귀했다. 대권 후보였던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의 대선 캠프 상황실장을 역임했고, 대선 땐 윤석열 캠프에서 정책총괄지원실장을 맡았다. 신 전 교수는 윤석열 캠프에서 분야별 전문가 600여 명의 보고를 받아 취합해 윤 후보에게 보고하는 업무를 수행했다고 했다.
신 전 교수는 복수의 언론에 관련 파일이 자신의 외장하드에서 발견됐다고 했다. 외장하드에는 윤석열 캠프 활동 때 만들거나 확보한 약 7GB(기가바이트) 분량의 자료가 저장된 것으로 전해졌다. 신 전 교수는 대선 당일인 2022년 3월 9일 이 보고서가 핵심 참모진들에게 공유됐다고 했다. 이후 신 전 교수는 보고서 파일을 ‘전략조정 회의’ 폴더에 저장했다고 기억했다. 뉴스타파에 따르면 저장 시점은 2022년 3월 9일 오후 2시 31분이다.
신 전 교수가 언급한 전략조정 회의는 아침에 열렸다. 이 회의에는 분야별 실무 책임자가 참석했다. 복수의 언론 보도와 취재에 따르면 윤재옥 선대본부 부본부장 겸 상황실장, 이철규 국민의힘 전략기획부총장, 김은혜 공보단장, 일정을 총괄한 강명구 의원, 박민식 선대위 전략기획실장, 김오진 선대위 정무기획팀장·이슈대응단장 등이 주요 참석자였다. 신 전 교수는 이들이 ‘각 파트별 책임자’였다고 말했다.
대선 당일 공유된 미래한국연구소 여론조사 결과는 미공표 보고서였다. 신 전 교수는 보고서가 다른 여론조사 추세와 달리 지나치게 낙관적이었다고 평가했다. 윤 후보가 이재명 민주당 후보를 9.1%포인트(p) 차로 오차 범위 밖에서 이기는 것으로 나왔기 때문이다. 신 전 교수는 경향신문에 “(명 씨는) 기분 좋게 만들어서 후보 마음에 들었고, 그 다음에는 ‘가스라이팅’을 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며 “제가 1%p 내외 어려운 게임이 될 거라고 (캠프) 멤버들하고 얘기를 해도 멤버들이 다 듣질 않았다”고 주장했다.
#"보고서가 왜 거기에…"
신 전 교수에 따르면 여론조사 데이터는 캠프의 주요 의제였다. 여론조사 결과에 따라 후보 동선이 변경될 정도였다고 한다. 참모진 회의 결과는 대부분 윤석열 후보에게 보고된다. 명태균 보고서가 회의에서 다뤄졌다면 윤 후보에게도 전달됐을 가능성이 높은 셈이다.
윤재옥 의원은 명태균 보고서를 본 적도 받은 적도 없다고 반박했다. 이철규 의원은 명태균 보고서로 회의했다는 보도는 사실이 아니라며 뉴스타파 기자와 신 전 교수를 명예훼손 혐의로 서울경찰청에 고소했다고 밝혔다.
신 전 교수는 일요신문에 “(윤재옥 이철규 의원이) 전략이나 이런 쪽에서 주로 (여론조사를) 다룬 것으로 알고 있다고만 (뉴스타파에) 했다”며 “그날 회의에 이철규 의원이 참석했다 안했다는 것은 기억이 나지 않기 때문에 (언론에) 단정적으로 말씀드린 적 없다”고 했다. 신 전 교수는 보고서 유입 경로를 특정하지 못했고, 회의 참석자를 정확히 기억하지 못했다.
실명이 언급된 캠프 관계자들도 명태균 보고서를 검토한 기억이 없다고 입을 모았다. 박민식 전 국가보훈부 장관에 따르면 고정된 회의 참석자는 정해지지 않았다. 때에 따라 선거 유세 지원에 나가는 등 일정 변동이 잦았기 때문이다. 회의는 윤재옥 의원이 주재한 것으로 보인다. 박 전 장관은 이철규 의원이 ‘회의를 10번 하면 1번 올 정도’로 드물게 참석했다고 전했다.
복수의 캠프 관계자들은 당시 여론조사는 여의도연구원에서 매일 이뤄졌다고 기억했다. 이 자료는 기밀로 다뤄졌고, 선대본부장에게만 직보됐다고 한다. 캠프에서 공식적으로 공신력 있는 여론조사 기관에 의뢰한 여론조사도 있었다. 박 전 장관은 “(명태균 여론조사 같은) 그런 여론조사가 넘쳐서 홍수였다. 바쁜 후보가 (주요 여론조사) 샘플 볼 시간도 없었다”다고 했다. ‘회의에 올라왔더라도 대수롭지 않게 지나쳤을 가능성’에 대해서는 “이 여론조사가 특별한 가치가 있어야 회의 테이블에 올려놓지”라고 말했다.
일정을 총괄했던 강명구 의원은 “(본인은) 메시지 팀장이었기 때문에 아침에 들어가서 우리 일정이 오늘 어떻게 된다고 보고했고, 일정에 대해 어떤 제안을 주시면 그것을 검토해 그 자리에서 보고하고 나왔다”다고 했다. 강 의원은 최소한 본인이 합류한 뒤에는 윤 대통령이 명 씨와 관련된 일정을 잡은 적은 없었다고 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캠프 관계자는 “(명태균이) 그렇게 영향력이 있다고 평가하는 사람 별로 없었다”며 “(신 전 교수가 있는) 정책총괄지원실은 조직도에도 없다. 캠프 내에서 위상이 (낮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명태균 여론조사 같은 것은) 보지도 않는다. 한국갤럽하고 리얼미터만 가지고 한참 분석하지, 무슨 그런 것 가지고 총선 전략을 짜나”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민주당 등 야권에선 비공식 라인을 통해 보고서가 전달됐을 가능성에도 주목한다. 명 씨 측이 윤 대통령 측에 직접 보고서를 건넸고, 이것이 다시 실무진에게 내려왔을 수 있다는 것이다.
뉴스타파에 따르면 명 씨는 “나는 그게(보고서) 왜 거기(윤석열 캠프) 있는지 잘 모르겠다”고 부인했다. 이철규 의원 등 캠프 인사와 소통하거나 윤석열 캠프를 방문한 사실도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대선 본선 기간 내내 대통령과 전화는 했다고 말했다. ‘2022년 1, 2, 3월에 윤 대통령을 만났냐’는 질문에는 “만났겠죠. 안철수는 그러면 어떻게 단일화가 됐겠어요”라고 했다. 명 씨가 윤 대통령에게만 직접 보고했고, 이렇게 올라간 보고서가 캠프 실무진에게 내려왔을 가능성이 있는 셈이다.
이강원 기자 2000w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