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신용카드 훔쳐 수백만 원 긁어…“지인과 순댓국 먹은 건 범행 합리화 의도”
10월 31일 경기 일산동부경찰서는 강도살인미수 및 유사강간 혐의로 30대 남성 A 씨를 검찰에 구속 송치했다고 밝혔다. A 씨는 지난 23일 오전 2시 40분쯤 고양시 일산동구 백석동의 한 노래방에서 술을 마시던 중 70대 여성 업주 B 씨를 둔기로 폭행해 의식을 잃게 하는 등의 혐의를 받고 있다. B 씨가 옷이 일부 벗겨진 상태로 발견돼 경찰은 A 씨에게 유사강간 혐의를 함께 적용했다.
최초 신고자인 B 씨의 지인 C 씨는 이날 새벽 B 씨 소유 휴대전화 번호로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하지만 목소리의 주인이 B 씨가 아니라고 판단해 자신의 남편을 깨워 노래방으로 보냈다. C 씨의 남편이 현장에서 B 씨의 부상 사실을 확인한 직후 C 씨는 경찰에 신고했다. 23일 오전 4시 5분쯤 C 씨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추가 범행 피해 등에 대비해 즉시 강력팀 형사 전원을 동원해 통신조회로 위치추적을 하고 일대를 수색했다.
경찰이 사건 현장에 도착했을 때 B 씨는 머리에서 피를 많이 흘린 채 의식불명인 상태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MBC 보도에 따르면 소방 관계자는 “B 씨 발견 당시 코와 인중, 잇몸, 입술 등의 부위에 다발성 열상이 있는 상태였다”고 말했다. B 씨 옆에서는 범행에 사용된 전기포트와 술병 등도 발견됐다. 경찰에 따르면 전기포트는 밑 부분이 벌어질 정도로 망가져 있었다.
최초 신고 뒤 약 3시간 여가 지난 23일 오전 7시 30분쯤 경찰은 차로 약 13분 거리에 위치한 일산동구 장항동 한 식당에서 만취 상태로 지인과 순댓국밥을 먹고 있던 A 씨를 긴급체포했다. A 씨는 자신이 살고 있는 고시원에서 옷을 갈아입고, 수사기관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범행 때 입은 옷은 세탁을 맡긴 것으로 드러났다.
피해자 B 씨는 현재 의식을 약간 회복했지만 아직 위독한 상태인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B 씨가 진술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상태는 아니다”라고 밝혔다. 사건 현장 인근 상인은 “대단히 충격적”이라면서 “(B 씨는) 평소에 그렇게 해코지를 당할 분이 아니다. 상당히 안타깝고 빨리 쾌차하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경찰은 만취 상태였던 A 씨가 술이 깬 뒤 범행 동기와 경위 등을 조사했지만 구체적인 진술을 확보하지 못했다. A 씨는 “(B 씨를) 폭행한 것 같긴 한데, 피해가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다”면서 “폭행한 이유는 술에 취해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사강간 등 추가 범행 사실에 대해서도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조사 결과 A 씨와 B 씨는 서로 일면식이 없다. A 씨는 B 씨의 신용카드 2장과 휴대전화를 훔쳐서 달아났다. 이후 A 씨는 고급 술집에 가 피해자의 신용카드로 200만 원 상당을 결제한 사실이 확인됐다. 뿐만 아니라 그가 이날 시비가 붙은 행인을 폭행했다는 112신고도 접수된 사실이 밝혀졌다.
10월 25일 의정부지법 고양지원은 A 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법원은 “도주 우려가 있다”며 구속사유를 밝혔다. 25일 구속 전 피의자 신문(영장실질심사)을 위해 법원에 출석한 A 씨는 “혐의 사실을 인정하느냐” “돈을 노리고 범행한 것이냐” 등 취재진의 질문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말과 달리 A 씨는 범행의 고의성을 의심할 만한 행동 양상을 보였다. 현장 인근 CC(폐쇄회로)TV 영상에는 지하에 위치한 노래방에서 나온 A 씨가 불과 5분 만에 다시 가게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찍혔다. 경찰은 A 씨가 노래방 입간판의 불을 끄기 위해 현장에 재진입했다고 설명했다. 피해자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서가 아닌 새벽에 다른 손님이 찾아와 자신의 범행이 발각될 것에 대비한 행동이다.
또 범행 직후 집으로 가 당시 입었던 옷을 빨래하고 새 옷을 입고 다시 외출하는 행동 역시 증거를 은폐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명백히 고의성을 가진 범행으로 보인다. 만취한 사람이 어떻게 입간판 불을 끄고, 옷을 갈아입는 행동을 하겠느냐”면서 “A 씨가 지인과 순댓국을 먹은 행동은 자신의 범행을 합리화하거나 당황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려는 의도가 있었다고도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곽준호 법무법인 청 변호사는 “간판을 끄기 위해 다시 현장으로 돌아간다거나 하는 것은 정교하게 범행을 은폐하는 행동이라고 볼 수 있다”면서 “피의자는 술에 취했다고 주장하지만 법정에서 이러한 주장이 받아들여질지 의문이다. 게다가 전기포트로 머리를 다치게 했다면 고의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당연히 사망에 이르는 중상해를 입힐 수 있다고 예상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곽 변호사는 “최근 형사재판에서는 피의자가 ‘음주로 인한 심신미약’을 주장하면 재판부가 ‘음주로 이런 범행을 저질렀다’고 생각하고 반성하지 않는 감형 요구를 무시하는 경향이 짙다. 죄질이 좋지 않아 강도살인미수 혐의만 인정된다 하더라도 최대 징역 30년형 혹은 무기징역까지도 선고될 수 있을 것 같다”고 내다봤다.
경찰 관계자는 “범행 동기를 (금전과 간음 중) 어느 쪽이라고 단정짓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두 목적을 동시에 이루려고 했을 수 있다”면서도 “현재까지 파악된 바로는 아무래도 신용카드를 훔쳐 쓴 점을 들어 금전 목적에 조금 더 비중이 있지 않나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손우현 기자 woohyeon1996@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