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성 등 재판에서 증언 “테라 유치하려고 절차 생략”…코인원 “사실무근, 모든 거래 지원 앞서 리스크 파악 검토”
서울남부지방법원 형사합의14부는 테라·루나 폭락 사태와 관련한 테라폼랩스 공동창업자 신현성 씨 등 9명의 자본시장법 위반 등 혐의 재판에서 지난 11월 7일 전직 코인원 상장총괄 임원 A 씨 증인신문을 진행했다. 앞서 지난 10월 17일엔 전직 코인원 상장팀장 B 씨 증인신문이 이뤄졌다.
코인원은 업비트, 빗썸에 이어 국내 3위 규모 거래소다. 코인원은 2019년 5월 7일 루나를 전 세계 최초로 상장해 거래를 지원했다. 2019년 4월 24일 테라·루나 메인넷(블록체인을 운영하는 네트워크)이 출시된 지 약 2주일 만이었다. 코인원은 2020년 6월 테라(테라KRT)도 상장했다.
테라폼랩스는 테라·루나 알고리즘 연동을 통해 테라 가격을 일정하게 유지해 실생활 결제 수단으로 활용하겠다고 홍보했다. 하지만 2022년 5월 테라·루나 모두 가격이 폭락했다. 당시 증발한 테라·루나 시가총액은 약 50조 원에 달했다. 검찰은 테라 가격 고정 알고리즘은 처음부터 실현될 수 없는 허구였다면서 신현성 씨 등 테라폼랩스 관계자들을 자본시장법 위반과 사기 등 혐의로 2023년 4월 기소했다.
신 씨 등에 대한 재판에서 전직 코인원 임직원 2명은 테라·루나 상장 과정에 미비한 점이 있었다고 공통적으로 증언했다. 그런데 테라폼랩스 측에 속았다기보다는 코인원에서 신규 고객을 유치하고자 선제적으로 나선 결과라는 취지로 증언했다. 그래서인지 신 씨 등 피고인 측 반대신문이 아주 적극적이지는 않았다.
검찰은 지난 11월 7일 증인신문에서 전직 코인원 상장총괄 임원 A 씨에게 "수사기관에서 (테라·루나) 알고리즘 실현 가능성에 대해 특별한 논의가 없었다고 진술했다. 코인원에서 (테라·루나) 알고리즘 실현 가능성을 제대로 검토하지 않았다는 건가"라고 물었다.
A 씨는 "그렇다. 아무래도 초창기 프로젝트였고 실질적으로 코인원 내부에 기술적 검토를 할 수 있는 인원이 많지 않았다"고 답했다. 검찰은 A 씨에게 "수사기관에서 두고 봐야 할 알고리즘이라는 취지로 진술했다. 세계 최초로 상장하는 코인 알고리즘을 제대로 검토하지 않고 상장 이후 지켜보겠다는 생각을 어떻게 할 수 있느냐"고 재차 물었다. A 씨는 잠시 뜸 들이더니 "인원이 많지 않았다. 기술적 검토에 한계가 있었다"는 답변을 반복했다.
신현성 씨 변호인은 A 씨 반대신문에서 "코인 상장은 엄격한 기준이 있는 주식 상장과 다르다. 프로젝트 초기에 상장이 이뤄지는 게 일반적"이라며 "모든 세부사항이 구체적으로 확정된 이후 상장이 이뤄진다고 볼 수 없다. 상장을 위해 제출한 자료에는 여러 변동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신 씨 변호인은 A 씨에게 "테라 프로젝트 작동 원리가 다른 코인 프로젝트와 다르게 의문점이 있거나 부족한 점이 있었나"라고 물었다. A 씨는 "초기 단계였고 만들어가는 단계라 의문을 가지지는 않았다"고 답했다.
신 씨 변호인은 전직 코인원 상장팀장 B 씨가 10월 17일 증언한 내용을 A 씨에게 되물었다. A 씨는 B 씨 법정 증언 내용에 모두 동의했다. B 씨는 "코인원은 루나를 최초로 상장하고자 적극적으로 노력했다. 테라 프로젝트는 세간의 관심을 많이 받아 어느 거래소든 상장하고자 하는 수요가 컸다. 저희(코인원)가 먼저 어프로치(접근)해서 딜을 따낸 걸로 기억한다"고 10월 17일 증언했다. B 씨는 코인 상장 기준에 대해 "초창기에는 기준이 없어서 중구난방이었다"고 말했다.
B 씨는 또 "명성이 높은 코인은 빠르게 상장할 필요가 있어서 절차가 생략된 채 (상장이) 진행되는 경우가 있었다"며 "2위와 차이가 크게 나는 3위 거래소 코인원은 협상력이 낮아 을의 지위에 있어서 (코인 발행사에) 서류 제출을 적극적으로 요구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B 씨는 아울러 "솔직히 말하면 (2020년 6월) 테라KRT 상장 때 (코인원이) 을 지위에 있다 보니까 (테라폼랩스에) 자료 제출을 강제할 수 없었다. 자료를 전체적으로 못 받았다"며 "저희(코인원) 입장에서는 (테라KRT를) 유치해야 했다. 여러 거래소가 경쟁하다 보니까 코인원에서 테라KRT를 통해 서비스를 론칭하고 싶어서, 절박해서 절차가 생략됐다"고 주장했다.
코인원 측은 A 씨와 B 씨 증언이 "사실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코인원 관계자는 "당사는 모든 거래 지원에 앞서 발생할 수 있는 리스크에 대해 파악하고 검토하고 있다"며 "루나 거래 지원 당시 리서치 담당자였던 B 씨가 작성한 보고서도 보유하고 있다"고 11월 14일 밝혔다. 그는 테라KRT 상장 과정에 관해서도 "거래 지원 심사 정책에 따라 테라KRT 거래 지원 검토에 필요한 자료를 모두 제출받았다"며 "이를 토대로 거래 지원 심사를 진행했다"고 말했다.
한편 A 씨와 B 씨는 징역형을 살고 있다. 두 사람은 코인원 재직 시절 퓨리에버 등 29개 이상 코인을 상장해주는 대가로 브로커로부터 뒷돈을 받은 혐의로 2023년 4월 구속기소됐다. 테라·루나와는 무관한 사건이었다. 퓨리에버 코인은 시세조종 이후 가격이 폭락해 2023년 3월 서울 강남구에서 벌어진 납치·살인 사건 발단이 되기도 했다. 2023년 9월 1심은 A 씨에게 징역 4년에 추징금 약 19억 원, B 씨에게 징역 3년 6월에 추징금 약 8억 원을 선고했다. 항소와 상고 모두 기각돼 지난 7월 형이 확정됐다.
코인원은 A 씨와 B 씨 구속 이후 2023년 4월 "일부 담당자의 불법 행위를 인지하지 못했다. 코인원 임직원이 수년간 노력해서 다져온 기업 및 개개인의 신용과 명예도 심각한 손해를 입었다"며 "피의자들이 저지른 불법 행위로 인해 당사에 피해가 발생한 부분에 대해서는 손해배상 청구 등 최대한의 법률적 조처로 철저히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밝혔다.
1심 재판부는 2023년 9월 "임직원 상장 비리를 제대로 관리·감독하지 못한 코인원에도 상당한 책임이 있다"고 판시했다. 그러면서 "가상자산 시장은 코인 발행재단과 투자자 사이 정보 비대칭성이 뚜렷한 시장"이라며 "가상자산은 이미 제도권 자산으로 편입됐고 연간 거래량이 수백조 원에 이를 정도로 깊숙이 자리 잡았다. 이러한 공공성에 비추어 가상자산의 거래소 상장에 대해 철저한 감시와 관리가 요구된다"고 지적했다.
남경식 기자 ngs@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