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 만에 독주체제 막 내려…야당 의원 포섭? 연립정권 확대? 야권으로 정권 교체 가능성도
일본 요미우리신문이 유권자 1000여 명을 대상으로 ‘여당 과반 의석 실패’에 대한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응답자 절반 이상이 만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의 58%가 ‘잘됐다’고 대답해 ‘좋지 않다(25%)’라는 응답보다 두 배 이상 많았다.
또한, 지난해 말 터진 자민당 파벌 ‘비자금 스캔들’이 이번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서는 90%가 ‘그렇다’고 답했다. 다만 이시바 시게루 총리가 여당 과반 의석 확보 실패에 책임을 지고 사임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56%가 ‘사임할 필요가 없다’라는 의견을 밝혔다.
해외 언론들도 이번 자민당의 참패를 비중 있게 보도했다. 미국 CNN은 “일본 유권자들의 분노가 반영된 결과”라며 “자민당 내 정치자금 스캔들과 경제 부진에 대한 심판 여론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선거전 초반만 해도 자민당·공명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했다. 그러나 입헌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이 비자금 문제를 집중적으로 공략하면서 “여당의 과반 의석 달성이 어려울 수 있다”라는 보도가 연이어 나왔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는 “이시바 총리가 굴욕적인 타격을 입게 됐다”고 전했다. 취임 8일 만에 국회를 해산하고 총선을 치른 이시바의 승부수는 결국 자충수가 되고 말았다. 당장 11월 11일 열릴 예정인 ‘총리지명선거’도 위태로운 상황이다. 뉴욕타임스는 “만약 이시바가 총리직을 지키지 못하면 과거 일본 정계의 특징이었던 ‘회전문 리더십’으로 되돌아갈 수도 있다”고 짚었다. 일본은 2006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물러난 이후 5년 동안 총리가 6번이나 바뀌었다. 이를 두고 외신들은 ‘회전문식 교체’라며 비꼰 바 있다.
프랑스 일간 르몽드는 “이번 선거 참패로 이시바 총리가 구심력 저하를 피할 수 없게 됐다”고 지적하며 “자민당이 다른 정당을 포섭해 정권을 유지하려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로 이시바 총리는 개표가 마무리된 후 “사퇴하지 않고 정권유지를 위해 국민민주당(24석)에 협력을 구하겠다”는 뜻을 주변인에게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민당 1강 체제가 무너짐에 따라 일본 정계는 여당과 야당이 팽팽한 백중세로 변했다. 이시바 정권은 존속 자체도 불투명하다. 아사히신문은 일본 정계의 향방과 관련해 “한 치 앞도 내다보기 어려운 정국으로 접어들었다”며 유력한 시나리오 3가지를 거론했다.
#시나리오① 정책별로 부분연합
일본 중의원 의석수는 총 465석으로 과반은 233석이다. 이번 선거에서 자민당은 191석, 연립여당인 공명당은 24석으로 합쳐서 215석을 얻었다. 과반수에는 18석이 모자란다. 국회에서 법안이나 예산안, 조약안 등을 통과시키려면 야당의 협력이 필수적인 상황이다. 이로 인해, 뜻이 맞는 야당과 ‘부분연합’을 이루는 선택지가 떠오르고 있다. 자민당과 공명당이 정책별로 각기 다른 야당과 협력해 과반수를 얻어 통과시키는 것이다.
가령, 이번 선거에서 약진한 국민민주당의 다마키 유이치로 대표는 “정책이 일치한다면 여야 가리지 않고 협력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이시바 총리도 10월 28일 기자회견에서 “우리가 부족한 부분, 고쳐야 할 부분은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싶다”며 부분연합을 시사했다. 자민당 간부에 따르면 “이시바 총리는 다마키 대표가 중시하는 전기·가스요금 가격 인하 등 가계 지원책을 경제 대책이나 보정 예산안에 포함시킬 생각”이라고 한다.
과거에는 무소속 당선자, 야당 의원들을 포섭해 ‘당의 몸집’을 불리는 작전도 펼쳤다. 1996년에도 자민당은 중의원 선거에서 과반수 확보에 실패했는데, 당시 자민당 간사장 대행이었던 노나카 히로무는 야당 의원들을 빼내와 단독 과반을 되찾은 적이 있다. “차례차례 의원을 낚아온다고 하여 노나카 간사장 대행을 ‘낚시터 아저씨’라 불렀다”라는 일화가 유명하다.
#시나리오② 연립정권의 틀 확대
자민당과 연립여당 공명당이 비슷한 성향의 야당에 손을 내밀어 연립의 틀을 확대하는 방안도 있다. 이 경우 일본유신회(38석)와 국민민주당(28석)이 가능성이 큰 것으로 꼽힌다. 만약 자민당이 일본유신회나 국민민주당과 손을 잡으면 각각 259석, 249석이 돼 ‘안정 다수석’을 확보하게 된다. 다만, 양당 내부에서는 “선거기간 내내 불법 비자금 문제로 자민당을 비판해 온 만큼 자민당과의 연립은 유권자에 대한 배신”이라는 부정적인 기류가 강하다. 이와 관련, 아사히신문은 “과거 자민당은 정책도 이념도 다른 사회당의 무라야마 도미이치 위원장과 연립정권을 출범한 적도 있다”며 “아직 무엇이 일어날지 알 수 없다”고 지적했다.
#시나리오③ 야권으로 정권 교체
마지막은 자민당과 공명당을 제외한 나머지 야권이 하나로 뭉쳐 정권이 교체되는 시나리오다. 예를 들어 입헌민주당(148석), 일본유신회(38석), 국민민주당(28석), 레이와신센구미(9석), 공산당(8석), 참정당(3석), 사민당(1석) 등 야당 당선자를 합하면 235석으로 과반 의석수를 넘긴다. 실제로 1993년에 8개 당파가 힘을 합쳐 호소카와 연립정권을 출범시킨 바 있다. 당시 자민당은 38년 만에 처음으로 권좌에서 밀려났다. 단, 호소카와 연립정권은 내부 조율에 갈팡질팡했고 불과 8개월 만에 닻을 내리는 단명정권으로 끝났다.
이시바 총리 재지명될까?
중의원 해산에 의한 총선거가 실시되면, 투표일로부터 30일 이내 특별국회가 소집된다. 쉽게 말해 새로운 총리를 뽑기 위한 국회다. NHK에 따르면, 특별국회는 11월 11일이 유력하다. 총리지명선거에서 과반수를 얻은 국회의원이 총리로 선출되는데, 자민당이 총선에서 과반을 확보하지 못한 만큼 이시바 총리가 정권을 유지하려면 야당의 협력이 꼭 필요한 상황이다.
과반수를 획득한 사람이 없는 경우에는 상위 2명이 결선투표를 진행한다. 현재로서는 자민당의 이시바 시게루 총리와 제1야당 입헌민주당의 노다 요시히코 대표가 맞붙을 가능성이 크다. 요미우리신문은 “국민민주당이나 일본유신회가 최종적으로 노다 대표에게 투표하지 않으면 이시바 총리가 총리로 지명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