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지 몰린 러, 전력 재배치 분석…북 경제·군사 이익 얻었지만 중국과의 관계 새로운 숙제로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 소식이 전해지자 군사 전문가들은 즉각 러시아의 군사력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나섰다. ‘워싱턴포스트’는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부 장관의 말을 빌려 “이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를 본격 침공한 지 2년여 만에 러시아의 군사력에 상당한 약점이 발생했음을 시사한다”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이보다 앞서 푸틴 대통령이 군수품 부족분을 보충하기 위해 동맹국인 이란과 북한에 드론, 미사일 및 기타 군수품을 요청한 바 있다고 덧붙였다. 오스틴 장관은 이에 대해 “이는 푸틴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큰 곤경에 처해 있음을 나타내는 신호”라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미 외교안보 전문 매체인 ‘포린폴리시’는 ‘북한의 러시아 파병이 정말 중요한 이유’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모스크바에는 수치스러운 일이고, 우크라이나에는 나쁜 소식이며, 한국과 다른 나라에는 매우 두려운 전개”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북한이 지난 수년간 러시아에 막대한 양의 포탄을 제공함으로써 간접적으로 우크라이나 전쟁을 지원해왔다는 점도 상기시켰다.
또한 ‘포린폴리시’는 북한군 병력의 투입에 있어서 러시아에게 중요한 건 ‘위치’라고 강조했다. 요컨대 북한 지원군을 최전방에 배치할 경우 쿠르스크 주변의 분쟁을 러시아에 유리하게 종결지을 수 있다는 것이다. ‘포린폴리시’는 쿠르스크에 북한군을 배치하는 것은 두 가지 측면에서 중요하다고 말했다. 첫째, 정치적으로는 지난 6월, 모스크바와 평양 간에 체결된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협정’의 조건에 잘 부합한다. 이 협정에는 “어느 한 쪽이 다른 국가 또는 여러 국가의 무력 침공을 받아 전쟁 상태에 놓일 경우, 다른 쪽은 지체 없이 군사 및 기타 자원을 제공해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전문가들은 이 협정이 북한 병력을 우크라이나에 파견하는 한편, 또 다른 협력을 모색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줬다고 믿고 있다.
둘째, 쿠르스크가 이번 전쟁에서 엄청난 중요성을 갖게 된 만큼 쿠르스크 주변에 병력을 새로 투입할 수 있다면 러시아는 자국의 군대를 다른 곳에 재배치해 전력을 강화할 수 있다. 이를테면 도네츠크에서 병력을 이동해 우크라이나 방어망이 뚫릴 가능성이 높은 남쪽에 재배치함으로써 자포리지아 및 드니프로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 길을 트겠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외교정책연구소 ‘유라시아 프로그램’의 선임 연구원인 롭 리는 쿠르스크 주변의 전세가 우크라이나 쪽으로 서서히 기울고 있는 상황에서 “전투태세를 갖춘 1만여 명의 추가 병력은 큰 차이를 만들 수 있다”라고 분석했다.
그렇다면 파병을 통해 북한이 얻는 건 무엇일까. ‘뉴욕타임스’는 이에 대해 ‘북한은 왜 러시아를 돕기 위해 병력을 배치하는가’라는 제하의 기사를 통해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상당한 보상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실제 대부분의 경우 한 나라의 국가 원수는 자국 병력을 다른 나라에 파병할 때 어떤 대가를 기대하기 마련이다. 이에 미국 정부가 던진 질문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다. 첫째, 푸틴은 김정은에게 무엇을 제공할까. 둘째, 러시아는 북한의 미사일 및 핵 개발에 도움을 줄까. 셋째, 이 맞교환이 위험한 신흥 군사 동맹의 탄생을 의미할까.
‘뉴욕타임스’는 조지타운대 정부 및 국제관계학 교수이자 워싱턴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 석좌인 빅터 D. 차 박사의 말을 인용해 “다른 나라에 병력을 파견하는 것보다 더 강력한 신호는 없다”고 말하면서 “김 위원장은 북한군을 보냄으로써 러시아에 더 많은 대가를 요구할 수 있는 지렛대를 얻게 됐다”고 분석했다.
수십 년 동안 북한의 군사 활동을 추적해 온 전문가들 역시 북한이 두 가지 측면에서 러시아의 도움을 구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단기적으로는 군사력을 강화하고, 장기적으로는 미국과 주변국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적인 보장을 얻는 것이다. 단기적으로 러시아 측에 요구할 수 있는 구체적인 지원으로는 미사일 능력 향상이 있다.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러시아에 제공된 북한산 미사일은 기대만큼 좋은 성능을 발휘하지 못했으며, 따라서 러시아는 이번 거래를 통해 북한에 미사일 능력을 개선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또한 다른 한편으로는 다수의 탄도 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는 핵 추진 잠수함을 포함해서 전반적인 핵 프로그램 발전을 모색할 수 있다. 북한은 군사위성 3기를 발사하겠다는 목표를 아직 달성하지 못한 상태며, 아마도 이 분야에서 러시아가 매우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뉴욕타임스’는 내다봤다.
러시아는 또한 북한의 재래식 군대를 현대화하는 데도 도움을 줄 수 있다. 현재 북한이 사용하는 대부분의 전차, 항공기 및 기타 장비는 구소련 시대의 노후화된 무기들이다. 때문에 교체 및 업그레이드가 절실히 필요한 상태며, 푸틴이 마음만 먹으면 우크라이나 전쟁 지원의 대가로 북한에 현대적인 신식 무기를 비롯해 금전적 지원 및 식량 등 기타 직접적인 지원을 제공할 수 있다. 차 박사는 이번 병력 이동을 통해 김 위원장이 푸틴 대통령에게 더 많은 것을 요구할 수 있는 위치가 됐다고 말하면서 “두 국가 사이에서 역사상 처음으로 김정은이 운전석에 앉았다(주도권을 쥐고 있다). 그런데 왜 더 많은 대가를 요구하지 않겠는가”라고 했다.
한편 40년간 북한 문제를 다뤄온 전략국제문제연구소의 시드니 사일러 선임 고문은 미국과 동맹국들에게 이보다 더 심각한 위험은 어쩌면 따로 있을지 모른다고 주장한다. 요컨대 김 위원장이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를 돕는 대가로 더 장기적인 목표를 모색할 경우다. 사일러는 “이제 김정은은 생존의 길을 찾았다”고 말하면서 “뒤를 봐줄 친구를 찾았고, 이로써 미국과 국제사회의 핵 프로그램과 관련된 압박과 위협을 모두 무시할 수 있게 됐다. 그에게는 푸틴이라는 친구가 생겼다”라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뉴욕타임스’는 북한과 러시아 두 정상 간의 우정은 미국의 외교 정책과 다른 국가들 간의 상호 작용 방식에 장기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 역시 “소수의 국가들, 특히 이란 및 북한과 동맹을 맺은 러시아, 그리고 중국이 국제 질서의 기본 원칙을 변화시키려 한다”라고 경고했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도 ‘북한이 러시아에 병력을 파견함으로써 얻는 것’이라는 기사를 통해 비슷한 의견을 나타냈다. 북한이 러시아에 병력을 파견하기로 결정한 이유가 한반도 분쟁 발생 시 러시아로부터 군사기술과 인력을 제공받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유럽북한연구소의 비상근 연구원인 가브리엘라 베르날은 “북한은 외환이나 식량을 지원받는 것 외에도 핵, 미사일, 위성 및 기타 군사 프로그램 등 러시아의 군사 기술에 관심이 많다”고 지적했다. 북한의 이번 결정과 유럽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언급한 베르날은 “대부분의 유럽 국가가 우크라이나를 지지하고 러시아에 맞서고 있기 때문에 북한이 러시아 편에 서는 것은 우크라이나뿐만 아니라 유럽에 대한 선전포고로 해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이로 인해 앞으로 유럽연합이 훨씬 더 공격적인 대북 정책을 취할지도 모른다”라고 덧붙였다.
그런가 하면 브뤼셀 자유대학교(VUB)의 라몬 파체코 파르도 교수는 푸틴의 침략적 행동이 “러시아 영토에 대한 제국주의적 개념에 기반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따라서 북한은 불법 침략을 지원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비난했다. “북한은 제국주의에 반대해야 하건만 현재 러시아의 제국주의적 야망을 직접적으로 지원하고 있다”고 말한 파르도 교수는 러시아에 군대를 파견하는 과정에서 북한이 직면한 장기적 위험은 크게 두 가지라고 지적했다. 첫 번째 위험은 푸틴 이후의 시대에 있다. 다시 말해 크렘린궁의 차기 대통령으로 다른 인물이 당선될 경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전쟁을 지원해온 나라들과 단절을 도모할 수 있다. 두 번째 위험은 중국이 러시아와 북한의 긴밀한 관계에 불편함을 느끼고 있다는 점이다. 파르도 교수는 “궁극적으로 중국은 북한의 주요 후원자이자 지원국이다. 따라서 두 나라 간의 긴장이 초래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NBC 역시 ‘북한이 러시아에 병력을 지원함으로써 중국이 불편해진 이유’라는 기사를 통해 비슷한 의견을 내놓았다. 중국이 오랫동안 북한의 주요 동맹국이었다는 점을 언급한 NBC는 “김정은의 모스크바와의 관계 강화로 인해 북한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이 약화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요컨대 중국 입장에서 북한의 파병은 모스크바의 영향력이 점차 북한에 깊숙이 미치고 있음을 나타내는 가장 근래의, 그리고 가장 우려스러운 신호라는 것이다. 이와 관련, 뉴욕에 본사를 둔 컨설팅 회사 ‘유라시아 그룹’의 창립자 겸 대표인 이안 브레머는 “중국은 이에 대해 매우 불편해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하면서 “만일 북한이 실제 러시아와 함께 싸우고 있다면, 러시아가 북한을 지원하고 방어하려는 의지 역시 이와 같은 수준일 것이다. 이는 여러 면에서 북한의 가장 중요한 보호자였던 중국을 대체하는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한편 CNN은 ‘북한, 이란, 중국이 러시아의 전쟁을 지원함에 따라 ‘새로운 축’이 부상하고 있는가’를 통해 “미국 정부는 반서방 국가들이 협력을 모색함에 따라 훨씬 더 광범위하고 긴급한 안보 위협이 발생하고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라고 보도했다. 가령 이란은 수백 대의 드론을 비롯해 단거리 탄도 미사일을 러시아에 제공했으며, 중국은 무기 제조에 사용할 수 있는 마이크로전자제품 및 공작 기계와 같은 상당한 양의 물자를 대량으로 러시아에 지원했다.
이러한 새로운 협력 관계에 대해 ‘국방전략평가그룹’은 러시아, 중국, 이란, 북한을 ‘악의적인 동맹의 축’으로 규정한 상태다. 이들 4개국은 미국에 대한 적대감을 공유하고 있으며, 이로써 각 나라가 개별적으로 미국이나 동맹국에 위험을 가할 경우, 여러 지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분쟁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그러면서 CNN은 북한과 러시아의 군사적 동맹은 이제 유럽에서 벌어지는 격렬한 분쟁과 한반도의 냉전 상태를 더욱 긴밀하게 연결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 나라 간의 협력, 상호 신뢰 심지어 이해득실에 관해서는 한계가 존재한다고 말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베를린에 있는 ‘카네기 러시아 유라시아 센터’의 알렉스 가부예프 소장은 “각 나라의 관계는 각국의 생존 전략, 지정학적 문제, 그리고 그들이 직면하고 있는 당장의 또는 10년 후의 위기에 따라 형성됐다”라고 말하면서 “이들은 모두 독재 정권이며, 미국을 공통의 적으로 삼고 있다. 이것이 그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접착제 역할을 하고 있지만, (네 나라 모두가) 어느 정도 선에서 협력할지는 아직 조율되지 않았다”라고 분석했다.
따라서 현재의 동맹이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에도 지속되고, 4개국이 보다 긴밀하게 협력하는 관계로 발전할 수 있을지는 중요한 질문으로 남아있다고 덧붙였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