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붕 붕괴·누수·단전, 사업주는 “하나님이 한 거야”…떠나는 데도 사업주 허가 필요 ‘현대판 노예제’
#“하나님이 한 거야” 역정내는 사업주
“이게 눈이라는 거야. 신기하다!” 캄보디아에서 온 이주노동자 A 씨는 경기도 용인의 한 농장에서 근무했다. 그는 한국에서 처음 눈을 봤다고 했다. 첫눈이 내린 날엔 수북하게 쌓인 눈 사진을 SNS(소셜미디어)에 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설렘도 잠시였다. 밤새 내린 눈이 A 씨가 사는 비닐하우스 위로 쌓였다. 곧 지붕이 무너져 방안으로 물이 새기 시작했다. 설상가상 누전이 되면서 방 전체 전기가 끊겼다. 전기가 없으니 물을 데울 수도 없었다. 밤이 되자 견딜 수 없는 추위가 몰려왔다. 하지만 비닐하우스 안에 설치돼 숙소로 활용한 컨테이너의 얇은 패널은 바람을 제대로 막아주지 못했다.
“내가 했냐? 내가 한 거 아니야. 하나님이 한 거야.” A 씨를 고용한 사업주는 이 모든 게 “하나님 때문”이라고 했다. 숙소를 옮겨주거나 고쳐주지는 않았다. 다른 숙소를 알아봐 달라고 호소하자 언성이 높아졌다. 며칠 뒤 A 씨는 농장에서 쫓겨났다. 그는 “눈과 비를 맞으면서 짐을 옮기는데 정말 힘들었다.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어쩔 수 없다”며 말을 줄였다.
“차양막으로 덮어둔 비닐하우스가 노동자들이 사는 곳이에요. 전부 불법건축물인데 노동자들끼리는 기숙사라고 부릅니다.” 지난 12월 4일 찾은 경기 포천시의 한 농지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평야를 빼곡하게 채운 비닐하우스들 중 유독 눈에 띄는 곳이 있었다. 농작물이 심어진 비닐하우스 수십 개를 지나면 검정색 차양막을 덮어둔 비닐하우스가 한 개씩 나왔다. 옆에는 철골로 엉성하게 만든 건조대에 빨래가 널려있었다. 취재에 동행한 포천이주노동자센터의 김달성 목사는 “이런 곳에서 길게는 10년까지도 산다”고 말했다.
이곳 노동자들에게 주어지는 휴일은 보통 한 달에 이틀 정도다. 주로 토요일에 쉬는데 봄부터 여름까지 많이 바쁠 땐 한 달에 하루도 못 쉬는 경우가 있다. 휴일이 되면 종교 생활을 하기도 하지만 쉬는 시간 대부분은 잠을 자고 남자들은 농기구 손질을 한다고 했다.
“저건 뭔가요?” 기숙사라 불리는 비닐하우스에서 조금 떨어진 곳엔 흉물스러운 작은 막사가 있었다. 쇠파이프를 땅에 박고 천막을 둘렀는데 옆으로 기울어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았다. 김 목사는 “화장실”이라고 했다. “노동자들이 사는 곳에 화장실이 없거든요. 저렇게 비닐하우스 옆에 천막이 있는 건 다 화장실이에요.”
김 목사와 함께 인근의 다른 농장들도 살펴본 결과, 거주하는 인원에 따라 비닐하우스 크기만 다를 뿐 낙후된 거주환경은 비슷했다. 물탱크를 가져다 놓은 곳이 일부 있긴 했지만 하수 시설까지 마련된 곳은 거의 없었다. 영하의 날씨에 LP 가스로 난방을 이어가고 있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산화탄소 중독 위험도 크다. 지난 10월에도 강원 평창군 진부면 간평리의 한 비닐하우스에서 외국인 근로자 2명이 난방용 LP 가스 기기를 틀어 놓고 잠이 들었다가 일산화탄소에 중독돼 숨졌다.
김이찬 지구인의 정류장 대표는 겨울이면 이주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저체온증과 일산화탄소 중독 예방 강의를 한다. 그는 “국가에서 해주지 않으니 어쩌겠느냐”며 “아직도 연탄으로 난방을 하는 곳이 있다. 연탄을 본 적도 없는 더운 나라에서 온 스무 살 짜리 애들이 일산화탄소 중독 사고를 당하기 때문에 우리끼리라도 살아보자는 뜻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본적인 주거 인권이 보장된다고 하기에 너무나 열악한 환경임에도 노동자들 다수는 매달 15만 원에서 많게는 40만 원의 월세를 내고 비닐하우스에 살고 있었다. 익명으로 취재에 응한 노동자들은 근로계약을 체결할 때 ‘매월 임금에서 숙식비용을 공제하기로 한다’는 내용에 서명했다고 했다. 어디서 살게 될지에 대한 설명은 자세히 듣지 못했다고. 다만 이들이 서명한 공제동의서에는 ‘사용자로부터 자세한 설명을 듣고 자유로운 의사로 동의한다’고 쓰여있었다.
#임금체불 당해도 사업주 허락 있어야 떠날 수 있어
이주민 지원 단체들은 고용허가제가 현대판 노예제도와 다름없다고 비판한다. 여러 측면에서 노동자의 자유를 극도로 제한하기 때문이다. 고용허가제 대상 업종은 내국인 지원자가 많지 않은 어업, 농업, 건설업과 300인 미만의 제조업이다. 업종은 처음 신청할 때부터 정해지고 이후 다른 업종으로 이동하는 건 불가능하다.
같은 업종 내에서 근무지만 바꾸는 것도 쉽지 않다. 원칙적으로 사업주 동의가 있어야 한다. 휴·폐업 혹은 부당한 대우 등 사업주에게 귀책사유가 있는 경우 예외적으로 허용된다. 다만 사업주 위반 사항을 입증하는 건 노동자 몫이다. 교통수단도 마땅치 않은 지방에서 한국말까지 서툰 이들에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몸이 좋지 않거나 임금체불을 당해도 사업주의 ‘허락’을 받아야만 떠날 수 있다. 노동자 임의대로 근무지를 떠났다가 사업주가 이탈신고라도 하면 그대로 불법체류자가 되기 때문이다. 사업주에게 “내가 널 데려오느라 얼마나 애썼는데 다른 곳으로 가고 싶으면 500만 원을 내놓고 가라”는 말을 들은 노동자도 있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이주노동자들 상당수는 언론과의 접촉을 꺼리거나 “괜찮다” 정도의 답을 내놓았다. 김 목사는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노동자들의 비자 연장 여부 역시 고용주 손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현행법상 E-9(비전문취업) 비자를 받고 입국한 이주노동자는 기본 3년, 연장 시 1년 10개월로 최대 4년 10개월까지 노동이 가능하다. 이후 재신청하면 다시 4년 10개월 동안 노동할 수 있는데 연장하기 위해선 반드시 고용주의 사인이 필요하다. 김 목사는 “고용허가제가 고용주와 노동자를 철저하게 주종관계로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변화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20년 겨울, 캄보디아 이주노동자 속헹 씨가 난방시설이 없는 비닐하우스에서 사망한 채로 발견된 후 이주노동자 숙소에 대한 제도적 논의가 시작됐다. 고용노동부는 2021년부터 비닐하우스 내 컨테이너와 같은 불법 가설건축물을 숙소로 제공하는 사업자에겐 신규 고용허가를 내주지 않기로 했다. 기존의 열악한 시설에 사는 노동자의 경우 자유롭게 사업장을 변경할 수 있도록 하는 대책도 내놨다.
그러나 현장에선 대책이 통하지 않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김 목사는 “숙소 제공이 의무가 아니기 때문에 노동부에 ‘숙소 미제공’으로 고용 허가를 받고 실제로는 불법 숙소를 제공하는 사업주들이 적지 않다”고 했다. 법의 허술한 점을 노리는 것이다. 열악한 시설에 사는 노동자가 사업장을 변경할 수 있게 하는 방안도 효과적이진 않다. 어차피 다른 사업장의 숙소 환경도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속헹 씨 사망 이후 시설이 너무 안 좋은 숙소들은 일부 폐쇄됐어요. 변화가 있는 건 사실이죠. 그런데 나라에서 규정을 만들어 놓고 단속을 너무 안 해요. 여기도 폐쇄된 숙소인데 누군가 낙서를 한 모양이네요.” 취재팀과 동행하던 김 목사가 한 비닐하우스를 가리켰다. 군데군데 찢어진 차양막에는 하얀색 글씨로 ‘죽어버리지 마’라고 쓰여있었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