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고향’ 등 단어로 응답 유도하기도…“조작 대부분 공천조사에서 벌어져”
일요신문이 만난 다수의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다른 국가와 비교해 봐도 한국의 여론조사 규제가 강한 편”이라고 입을 모았다. 특히 공표용 여론조사의 경우 여심위 세부기준이 적용돼 여론조사 과정까지 모니터링하므로 조작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했다.
문제는 비공표 여론조사다. 이 중에서도 특히 정당 공천조사에서는 범죄 수준의 여론조사 왜곡과 조작이 종종 벌어진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공표 목적이 없으므로 여심위의 검증 과정을 피할 수 있고 해당 조사가 왜곡 또는 조작됐는지 확인할 만한 사람이 당 내에 사실상 없기 때문이다.
#할당량 못 채우면 ‘뻥튀기’
비공표 여론조사에서 왕왕 일어나는 조작 기법 중 하나는 ‘마사지’다. 여론조사기관은 연령·지역 등 계층별 응답률이 고르지 않을 때 가중치 배율 작업을 한다. 가중치 배율이란 원래 표집되어야 할 비율이 면접실사 단계에서 제대로 지켜지지 않을 때 전산과정에서 이 값을 보정하는 작업을 말한다. 예를 들어 서울에 사는 20대 남성 30명의 응답이 필요한 상황인데 10명밖에 채우지 못 했다면 기존 10명의 결과에 3을 곱해 30명의 값으로 ‘뻥튀기’하는 것이다. 업계에선 이를 ‘마사지 한다’고 표현한다.
여론조사 업계에선 응답률만큼이나 이 가중치 배율을 중요하게 본다. 취재에 응한 현직 여론조사 업체 관계자는 “응답률은 조사 방식을 엄격하게 할수록 떨어지기 마련이다. 현실적인 상황을 고려하면 가중치 배율을 보고 여론조사의 품질을 가늠해본다”며 “무작위표집이든 할당표집이든 잘 되면 당연히 가중치 배율이 낮아진다. 가중치 배율이 높으면 그만큼 여론조사의 품질은 떨어진다고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여심위는 공표용 여론조사에 대해 가중치 배율을 0.7배~1.5배로 제한을 두고 있다.
문제는 비공표 여론조사에는 가중치 배율 규정이 별도로 없다는 점이다. 최근 논란의 중심에 선 명태균 씨와 미래한국연구소도 여론조사 과정에서 실제보다 더 많은 응답자가 있는 것처럼 조작했다는 의심을 받는다. 명 씨가 2021년 9월 대선과정에서 미래한국연구소 직원 강혜경 씨에게 “젊은 애들 응답하는 계수를 올려서 홍준표 후보보다 윤석열이 더 나오게 해야 한다”고 말한 녹취록도 공개됐다. 김태열 전 미래한국연구소장 역시 최근 MBC 인터뷰에서 “(명 씨가) ‘시골 군수 공천은 발로 살짝 건드리면 된다’고 수차례 얘기했다”고 했다.
다만 가중치 배율 작업의 경우 신뢰도의 영역이지 현행법상 불법이 아니다. 명 씨가 자신은 여론조작을 한 것이 아니라 가중치 배율을 수정한 것뿐이라는 입장을 고수하는 이유다.
#특정 후보 유리하게 표본 조작
두 번째는 아예 표본을 섞는 ‘표본 쿠킹’이다. 당내 후보 경선에서 여론조사 참여 비율을 당원 30% 국민 70%로 정했다고 했을 때, 유효 당원 30%의 데이터베이스에 후보 측이 가져온 당원 명부를 섞어버리는 것이다. 예컨대 1000명의 유효당원 중 300명을 덜어내고 그 자리에 특정 후보를 지지하는 당원 300명을 넣으면 그 후보자의 지지율은 올라갈 수밖에 없다.
취재 결과, 미래한국연구소는 과거 이와 유사한 수법을 쓰다 불법 여론조사를 한 혐의(공직선거법 위반)로 수차례 법적 처벌을 받은 바 있었다. 판결문에 따르면 미래한국연구소는 2019년 3월 한 지역구 총선과 관련 비공표 여론조사를 하면서 성별·연령대·거주지 등이 확인되지 않은 유·무선 전화번호 데이터를 19만 개를 사용했다. 허위의 응답자 샘플을 만들어 입맛대로 조사를 진행한 셈이다.
뿐만 아니다. 미래한국연구소는 여심위가 여론조사와 관련된 자료 제출을 요구하자 문제가 될 수 있는 특정 문항을 제외한 결과를 제출하기도 했다. 이와 같은 수법은 2020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와 2022년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도 자행됐다. 창원지법은 “여론 형성과정에 인위적으로 개입하여 선거의 공정성을 훼손한 점에서 죄질이 나쁘다”며 세 번의 재판에서 모두 벌금 300만 원을 선고한 것으로 확인됐다.
공표되어선 안 되는 여론조사를 일부러 외부로 흘리는 이른바 ‘용도 변경’ 여론조사도 문제다. 대통령실이나 정당 등 정치권에서 내부 활용 용도로 여론조사를 해놓고 객관성이 보장된 조사인 것처럼 언론에 공개하는 것이 그 예다. 오랫동안 여론조사 전문가로 활동한 김헌태 박사는 “‘여론을 만들기 위한 여론조사’를 하는 경우 의뢰자의 의도에 따라 객관성이 떨어지는 문항들이 구성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런 여론조사를 해놓고 ‘이것이 민심이다’ ‘여론은 이렇다’면서 외부에 공개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부도덕한 조작법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김헌태 박사는 “왜 서구의 주요 선진국들은 여론조사를 공천의 수단으로 활용하지 않는지 그 이유에 대해 생각해봐야 한다. 정당 공천에 여론조사를 쓰는 나라는 한국이 거의 유일하다”며 “국회가 정치인의 면면을 살피기보다는 ‘이기면 다 된다’는 승리지상주의에 빠진 것이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비공표 조사도 신고 의무 확대하나
이 밖에도 여론조사 대상자들에게 거짓 응답을 유도하거나 특정 의도를 가진 질문만 골라 하기도 한다. 책 '여론조사, 모르면 말하지 마세요'에서는 문항에 의한 편향성 문제를 제시한다. 어떻게 묻느냐에 따라 여론조사 결과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반드시’ ‘꼭’과 같은 부사를 질문에 넣으면 응답자들은 대체로 부정적 답변을 하는 경향이 있다. 일상생활을 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여론조사 전화를 받는 국민들로서는 ‘대통령이 이 일을 꼭 해야 한다고 보십니까?’라는 질문을 받게 되면 ‘꼭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싶은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반면 설문 내용에 후보자의 고향이나 출신지를 넣으면 응답률 및 답변에 일부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은 의견이다.
검찰은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수사를 받는 명 씨가 제20대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정치인들로부터 대가를 받고 여론조사 조작 의혹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명 씨는 대선 과정에서 23차례 비공표 여론조사를 진행한 바 있다. 일요신문이 입수한 명 씨의 구속영장에 따르면 검찰은 명 씨를 미래한국연구소의 실질적 운영자라고 적시했다.
한편 22대 총선에서 여심위 심의를 위반한 여론조사는 총 127건으로 이 가운데 ‘조사 결과 왜곡·조작’은 24건, ‘거짓·중복 응답 유도’는 27건, ‘표본의 대표성 미확보’는 7건으로 집계됐다. 지난 20대 대선에서는 9건의 ‘조사결과 왜곡·조작’이 적발됐다. 이 조사들은 특정 후보에게 유리하도록 연령대별 가중치를 부여하거나 왜곡된 표본을 쓴 것으로 드러났다.
여심위 관계자는 현재 일부 공표용 선거 여론조사에만 적용되던 신고 의무를 비공표 여론조사에도 확대 적용하는 방안을 고려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현행 규정상 비공표 조사는 신고 의무는 물론 결과등록 의무도 없어 실태 파악이 어려운 상황이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