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희 특검법 표결 후 여당 의원들 퇴장 ‘투표 불성립’…여의도 ‘탄식’ 광화문 ‘환호’ 집회현장 엇갈린 표정
#탄핵 찬반 집회에 교통마비
이날 오후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으로 시민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행렬은 국회의사당부터 여의도역까지 뻗어 있었다. 평소에는 한산했던 육교도 시민들이 가득했다. 부모 손을 잡고 나온 아이부터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경험했다는 노인까지 나이대가 다양했다. 한 20대 초반 대학생들은 서로 어느 학교에서 나왔고, 몇 학번인지 인사를 나누는 모습도 보였다. 이들은 촛불을 들었다. 한목소리로 ‘윤석열 탄핵’을 외쳤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등 노동계도 참여했다. 이들은 ‘3차 민중 총궐기’를 열었다. 집회 신고 인원은 20만 명이다. 시위대 측은 총 100만 명이 모였다고 추산했다. 경찰은 비공식 추산으로 14만 9000명이 모였다고 밝혔다. 경찰은 시민들이 계속 모여들자 시위대 규모 계산을 중단했다. 경찰은 여의도 등 서울 전역에 135개 중대, 총 1만 2000여 명을 투입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하철은 국회의사당역과 여의도역은 무정차로 통과했다. 집회 장소로 가는 시민들이 몰려서다. 서강대교 남단 구간과 국회대로는 전면 통제됐다. 시민들은 질서정연하게 집회 장소로 합류했다. 경찰과 일부 시위 참가자들이 나서서 질서를 유지했다.
보수 성향의 단체는 광화문 일대에 모였다. 극우 인사로 알려진 전광훈 목사가 이끄는 ‘대한민국바로세우기운동본부’ 등이 주축이 됐다. 이들은 ‘주사파 척결 자유 대한민국 수호 국민대회’라는 현수막을 내걸었다. 현장에 모인 시위대는 성조기와 태극기를 흔들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구속, 주사파 척결 등의 구호를 외쳤다. 주최 측은 경찰에 약 1만 2000명을 참가자로 신고했다.
탄핵 찬성 시위대 근처에서 사고가 발생했다. 한 50대 남성이 분신을 시도했다. 그는 자신의 몸에 인화성 물질을 뿌린 것으로 전해졌다. 불을 붙이려다 주변 경찰에 제지됐다. 분신 동기에 대해서는 ‘폭거와 불의에 항거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긴장 감돌았던 본회의장
국회 출입구는 시위대 난입 등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봉쇄됐다. 본회의장이 있는 국회 본관은 긴장감이 감돌았다. 국민의힘에 비해 숫자가 더 많은 야권 당직자가 본회의장 앞에 결집해 있었다. 민주당 당직자들은 손에 ‘윤석열 탄핵’ ‘내란 행위 즉각수사’ 등의 문구가 적힌 손팻말을 들고 있었다. 옷에는 ‘윤석열 탄핵’이 적힌 스티커를 붙였다. 온종일 팻말에 적힌 구호를 외쳤다. 마치 시위 현장 같았다. 국민의힘 당직자들은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오후 5시경 민주당 의원들이 본회의장으로 들어갔다. 민주당 당직자들이 도열했다. 의원이 지나갈 때 박수와 응원을 보냈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충돌을 우려해 우회로를 통해 들어간 것으로 전해졌다.
본회의장 안에서 충돌이 발생했다. 본회의 시작 전 진보당 의원 3명이 단상 앞에 나와 여당 의원들을 향해 ‘탄핵 부결은 내란 공범’이라는 손팻말을 들었다. 그러자 여야 의원들이 고성을 주고받았다.
첫 안건인 ‘김건희 특검법’ 재의표결이 시작됐다. 야당 의원들은 연신 국민의힘 의원들에게 탄핵 투표에 참여하라고 소리쳤다. ‘국민의힘은 내란 공범’이라며 비난하는 의원들도 있었다. 박충권 국민의힘 의원이 야당 의석 쪽으로 와서 항의했다. 민주당 의원들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물리적인 충돌 전 다른 의원들이 상황을 정리했다.
박성재 법무부 장관은 김건희 특검법 재표결 때 중도 퇴장했다. 항의하는 한창민 사회민주당 대표를 노려보기까지 했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사실 국무총리가 오늘 오셔야 하는데 국정 현안 때문에 양해를 구해서 대신 왔으면 대신 온 국무위원으로서 책임을 다해야 하는데 중간에 가는 것은 국회를 무시하는 것이고 국민을 무시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 장관은 비상계엄 선포 직전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건희 특검법 재의표결 이후 국민의힘 의원들도 본회의장을 나갔다. 표결 불참은 당론에 따른 행동이었다. 이들은 굳은 표정으로 본회의장 옆문으로 빠져나갔다. 안철수 의원만 본회의장에 남아 있었다. 본회의장을 떠나는 국민의힘 의원들을 향해 민주당 당직자들은 ‘위헌 정당 해산하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김건희 특검법은 찬성 198표, 반대 102표로 최종 폐기됐다.
탄핵소추안 표결이 시작됐다. 안철수 의원을 제외한 국민의힘 의원들은 의원총회장에 모여있었다. 혹시 모를 이탈 표를 방지하기 위한 ‘꼼수’로 풀이된다. 그러나 이탈자가 발생했다. 김예지 의원은 다시 본회의장에 들어왔다. 야당 의원들이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그 다음 민주당 당직자들 사이에서 환호성이 나왔다. 김상욱 의원이 본회의장으로 향하면서다. 민주당 당직자들은 ‘김상욱’ 이름을 연호했다. 야당 의원들도 격려와 박수를 보냈다. 다만 김 의원은 소신에 따라 표결에 참여했지만, 당론에 따라 부결표를 던졌다고 했다. 그러자 민주당 당직자들 사이에서는 실망과 분노의 목소리가 나왔다.
#경호 받으며 뒷문으로 나간 추경호
우원식 의장은 국민의힘에 표결 참여를 호소했다. 부결표라도 던지라고 했다. 참석 의원 수가 200명에 미치지 못하면 정족수 미달로 투표가 성립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와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를 불러 양당 협상을 유도했다. 그러나 추경호 원내대표는 의원총회장에서 나오지 않았다.
야당 의원들은 국민의힘 의원총회장으로 항의성 방문을 했다. 야당 의원들은 국민의힘에 표결 불참은 ‘비겁한 행위’라고 지적했다. 국민의힘 측은 ‘나가라’ ‘투표는 자유’라며 반발했다. 우 의장은 오후 9시 20분을 표결 마감 시간으로 정했다. 마지막으로 정동영 민주당 의원 등이 설득을 위해 의원총회장을 찾았지만, 소득 없이 발길을 돌렸다. 탄핵소추안은 의결 정족수를 충족하지 못해 자동 폐기됐다.
야당 의원들은 ‘비겁한 퇴장’이라고 성토했다. 박찬대 원내대표는 국민의힘 의원 이름을 한 명, 한 명 차례로 불렀다. 비상계엄 해제 결의안 표결에 참여한 18명 의원의 이름은 특히 강조했다. 박 원내대표가 선창하면 야당 의원들이 이름을 다 함께 외쳤다. 바깥에 시민들도 본회의장 중계 화면을 지켜보며 따라서 연호했다.
우원식 의장은 “부당한 비상계엄을 저지른 대통령에 대한 탄핵은 정파의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 역사와 민주주의 문제를 바로 세우는 문제”라며 “투표에 참여조차 하지 않는 이 모습을 역사와 국민, 세계가 어떻게 평가할 것 같으냐. 책임질 수 있느냐. 두렵지 않으냐”고 비판했다.
여야는 본회의 직후 향후 대책을 수립하기 위해 회의를 했다. 표결 불참을 당론으로 채택한 추경호 원내대표는 사의를 표명했다. 추 원내대표는 경호를 받으며 의원총회장 뒤편으로 빠져나갔다. 이날 벌어진 사태에 대해서 어떠한 설명도 없었다. 기자들의 질문도 받지 않았다. 그리고 국민의힘 의원들은 추 원내대표 재신임에 뜻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의원들도 침묵을 치킨 체 경호를 받으며 빠져나갔다. 국민의힘 보좌진협의회는 공지에서 충돌을 자제하라고 했다. 대신 현장 상황 채증에 주력하라고 지시했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퇴장할 때 민주당 당직자들이 격분한 상태로 뛰어왔다. 민주당 당직자들은 ‘위헌 정당 해산하라’ ‘윤석열 탄핵’ ‘쿠데타 공범’ ‘부역자’ 등의 비난을 쏟아냈다. 일부 국민의힘 당직자들이 ‘이재명 대표 사법리스크’를 거론하며 ‘이재명 구속’을 외쳤다. 그러나 그 소리는 민주당 당직자들의 목소리에 묻혔다.
#희비 엇갈린 집회 현장
탄핵소추안이 자동폐기되자 윤 대통령을 지지하는 보수집회가 열린 광화문에서는 환호성이 나왔다. 현장 곳곳에서는 ‘이겼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일부 참석자는 오후 6시경 조기 해산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탄핵 찬성 측을 향해 ‘윤석열이 이겼다’ ‘집에나 가라’고 조소한 것으로 전해졌다. 전광훈 목사는 무대 위에 올라 “제2의 계엄령을 선포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의도에서는 탄식이 나왔다. 탄핵을 찬성하는 시위대는 허탈감과 분노를 표출했다. 실시간 중계를 보며 본회의장을 떠나는 의원들의 이름을 외치며 ‘탄핵 표결에 동참하라’고 외쳤다. 본회의가 끝난 다음에도 촛불을 들고 구호를 외쳤다.
일부 시위대는 K팝 노래를 틀고 춤을 추기도 했다. ‘나는 스파게티 몬스터 연맹’ ‘혼자 온 사람들’ ‘강아지 발냄새 연구회’ ‘꽃 심기 클럽’ ‘잠들지 못하는 편집자들’ 등 유머러스한 깃발을 흔드는 이들도 있었다.
8일 새벽 1시에도 집회는 멈추지 않았다. 일부 시민들이 남아 국회 출입문 앞에서 경찰과 실랑이를 벌였다. 한 시민은 일요신문에 “원래 정치에 그렇게 관심은 없었다. 그러다 계엄령을 보고 나왔다. 어제도 나왔다. 국회 안에서 돌아다니는 차가 없어지는 것을 보고 집에 가려고 한다. 취업준비생이라 시간 많다. 계속 집회에 나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강원 기자 2000w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