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수 살리기 시급, 추경과 금리 인하 동시 필요…경제 정책, 정치와 분리 신호 대외에 줘야
#내수 시장 살려야…추경 편성 항목 두고는 이견
한국 경제는 저성장 장기화에 직면해 있다. 11월 말 한국은행은 내년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2.1%에서 1.9%로 하향 조정했다. 12월 18일 이창용 한은 총재는 내년 경제성장률이 1.9%보다 낮아질 위험이 커졌다고 밝혔다. 글로벌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내년 한국 경제성장률을 시장 전망치보다 낮은 1.8%로 전망했다. 민간연구소 현대경제연구원은 내년 한국 경제성장률로 기존(2.2%)보다 낮은 1.7%를 제시했다.
내수 시장 살리기가 급선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내수 경기는 올해 들어 급속도로 얼어붙었다. 지난 11월 통계청이 공개한 올해 3분기 재화 소비 수준을 나타내는 소매판매액지수는 100.6으로 지난해 3분기보다 1.9% 하락했다. 2022년 2분기(-0.2%) 이후 10개 분기 연속으로 감소했다. 이는 1995년 관련 통계를 작성한 이래 가장 긴 감소 추세다. 한국경제인협회는 기업 사업보고서 분석을 토대로 올 상반기 620개 내수기업 매출액이 2020년(-4.2%) 이후 처음으로 감소했다고 밝혔다.
적극적인 확장 기조 재정 정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내년도 예산 조기 집행과 함께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이 필요하다는 데에는 대다수 전문가가 공감했다. 지난 10일 정부안보다 4조 1000억 원 깎인 2025년도 예산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이와 관련, 강인수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난 2년 반 동안 추경을 편성하지 않았다. 세수 펑크가 발생해 정부가 쓸 수 있는 돈도 한계가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정세은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내년에 임시로 증세하는 방안을 고려하더라도 추경 편성을 생각해 볼 수 있다”라고 말했다.
세부적인 추경 항목을 두고는 다양한 의견이 나온다. 송영관 한국개발연구원(KDI) 선임연구위원은 “일시적으로 유동성 문제에 봉착한 자영업자들에게 이자 비용을 지원하는 등의 방안을 고려해 볼 수 있다”라고 밝혔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도 “생계 지원 측면에서 추경이 이뤄질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취업자 수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내수 진작을 위해선 소득이 발생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 산업에 기술 투자를 늘리는 식의 추경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외에는 신용카드 연말 소득공제 혜택 강화, 자동차 개별소비세 인하 등이 정부가 검토해 볼 만한 내수 진작 대안으로 제시됐다. 지난 12월 17일 금융위원회는 내년부터 연 매출 30억 원 이하 가맹점의 카드수수료를 매출액에 따라 0.05~0.10%포인트(p) 인하해주기로 했다.
#기준금리 추가 인하 필요 목소리
내수 진작을 위한 다른 방안으로는 기준금리 추가 인하가 꼽힌다. 현재 한국 기준금리는 3.00%다. 한은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는 10월과 11월 기준금리를 각각 0.25%p 인하했다. 2회 연속 인하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약 16년 만이다. 내수 회복세와 수출 증가세가 둔화한 데다 미국 보호무역주의 등 통상 환경에 변화가 생기면서 한은이 선제적으로 대응했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내년 1월 16일 금통위 회의까지 경제지표 움직임을 보고 금리 인하 여부를 판단하겠다는 입장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추경과 금리 인하가 동시에 필요한 시점이라는 의견이 많았다. 김찬희 신한투자증권 수석연구원은 “에너지 가격이 안정돼 있고 소비자물가상승률도 1%대 중반까지 떨어졌다. 금리 인하로 인한 당장의 물가 상승은 큰 고려 요인은 아닐 것 같다”고 말했다. 이택근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에서 금리 인하 속도 조절론 얘기가 나온 점은 한은에 부담이 될 수 있다”면서도 “내수가 워낙 안 좋은 데다 탄핵까지 발생하면서 소비심리가 위축됐기 때문에 국내 상황을 좋게 만드는 게 더 중요한 듯하다”고 밝혔다.
다만 환율 방어가 문제다. 12월 19일 외환시장에서 1달러당 원화 환율은 1451.9원에 마감했다. 고환율이 계속되면 물가 상승 부담 때문에 금리 인하에 나서기 어려울 수 있다. 미국 국채 금리 상승, 내년 1월 트럼프 대통령 취임으로 인한 불확실성 등이 글로벌 자금의 달러 자산 선호 현상을 부추길 것이란 전망이다. 한은과 기획재정부 등 외환 당국은 국민연금과 외환스와프 거래 한도를 기존 500억 달러에서 650억 달러로 증액하기로 했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부 교수는 “환율 안정을 위해 한미 통화스와프를 추진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파트너십 체결 한계…대외 신인도 제고 목소리
대외적으로 정책 대응이 어렵다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에서 미국과 중국 등 주요국과의 실질적인 협상이 지연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김광석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정권 교체에 대한 불안감이 있는 상황에서 외국과 파트너십 체결을 하는 데 한계가 생긴다. 외국 주요 투자자들은 관망세를 갖고 기존에 있었던 투자 의사를 철회하는 일이 빚어질 수 있다”라고 말했다.
특히 내년 1월 출범하는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 대한 대응 능력을 두고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보편관세 도입과 같은 보호무역정책을 추진할 예정이다. 강구상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세계지역연구1센터 북미유럽팀장은 “우리나라가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부과 조치에 맞서 협상력을 발휘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한국이 실질적 협상이 가능할 때까지 미국이 기다릴 가능성은 있다. 대미 무역수지 흑자가 왜 늘어나고 있는지, 우리나라가 미국 경제에 기여하는 부분은 얼마나 되는지 등 대응책을 잘 마련해둬야 하는 시점”이라고 분석했다.
국내 경제 정책이 정치와는 분리돼 움직인다는 신호를 대외에 줘야 한다는 지적도 힘을 얻고 있다. 이택근 연구위원은 “민생 법안이나 산업 경쟁력을 강화하는 법안이 처리되는 등 경제 정책 시행에는 문제가 없다는 모습을 해외에도 보여줄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송영관 선임연구위원은 “정치적 혼란을 빨리 끝내는 게 사실 필요한데, 지금으로선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과 국회가 협조해 안정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라고 제언했다.
김명선 기자 se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