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자 없는 독주 속 우원식 출마론 눈길…비명계 설 연휴 전후로 본격적인 세 결집 채비
한국갤럽이 12월 17~20일 전국 만 18세 이상 유권자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장래 정치 지도자 선호도’ 조사(표본오차 95%, 신뢰 수준 ±3.1%포인트)에서 이재명 대표는 37%로 1위를 차지했다. 다음으로는 한동훈 홍준표(각 5%) 조국(3%) 오세훈 김문수 이준석 유승민(2%) 안철수 우원식(1%) 순이었다.
이 대표가 다른 잠룡들을 압도하는 구도다. 우원식 국회의장과 조국 전 조국혁신당 대표를 제외한, 보수진영 정치인들의 지지율을 합친 수치(19%)보다 2배 가까이 높다. 한국갤럽 조사에서 이 대표는 한동안 20%대를 보여 왔는데, 이번 조사에선 30%대를 기록하면서 박스권을 탈출했다는 분석이다.
그럼에도 이 대표로선 다소 아쉬운 지점은 있다. 당 지지율(48%)보다 낮고, 대답을 유보한 응답자가 35%나 된다는 것이다. 이는 중도층은 물론 당 지지층에서조차 이 대표에 대한 ‘확신’을 갖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다. 최근 ‘우클릭 행보’에 나서면서 집토끼 반발을 사고 있는 이 대표 딜레마와 맞닿아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여론조사 자세한 사안은 한국갤럽 또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참조).
민주당 안팎에서 이 대표 본선 경쟁력에 의구심을 표하는 기류가 커지는 것도 이 대표에겐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총선 이후 ‘친명 일극체제’ 구축에 성공했고, 조기 대선에서 가장 유리한 고지를 선점한 것은 분명하지만 여전히 고개를 갸웃거리는 비토 세력이 적지 않다는 분석이다.
정치권에선 민주당에서 플랜B가 가동될 수 있을지에 주목한다. 이 대표가 앞서 공직선거법으로 예상 밖 중형을 선고받자 비명계 움직임이 빨라질 것이란 관측이 나온 바 있다. 하지만 이 대표의 당 장악력은 공고하기만 했다. ‘위기일수록 뭉쳐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렸고, 신3김(김경수 김동연 김부겸)으로 대표되는 비명계는 숨을 골라야 했다.
하지만 대선 시계가 가동되자 ‘이재명 대안론’은 주요 변수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이 대표가 과연 보수 진영 후보를 이길 수 있을까라는 물음과 함께였다. 친명계 한 초선 의원은 “지금 이 대표 말고 누가 있느냐”라고 반문하면서도 “오히려 이게 더 불안하다. 대안론까지는 아니더라도 괜찮은 경쟁자가 있는 게 좋을 것 같다. 이재명만 보이니까 이재명만 공격하는 것”이라고 했다.
비명계 인사들로부턴 더욱 높은 수위의 발언을 들을 수 있었다. 12월 24일 만난 한 전직 비명계 의원은 “지금 여론은 ‘윤석열은 탄핵하고, 이재명은 안 된다’로 요약할 수 있다. ‘탄핵 트라우마’를 갖고 있는 보수 진영은 빠르게 대권 체제로 전환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언제 자격을 잃을지 모르는 이재명한테만 기대고 있다”면서 “지금은 우리가 이길 것 같지만 막상 선거가 시작되면 그땐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 없다. 미리 준비를 해야 한다”고 했다.
비명계에선 박근혜 탄핵 때 치러진 19대 대선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많다. 당시 문재인 후보는 41.1% 득표율로 당선됐다. 홍준표(24.0%) 안철수(21.4%) 유승민(6.8%) 심상정(6.2%) 순이었다. 보수진영 후보로 꼽혔던 홍준표-안철수-유승민 단일화가 이뤄졌다면 승리를 쉽게 얻기 어려운 형국이었던 셈이다.
한 비명계 의원은 당내 경쟁자가 없는 현실을 꼬집었다. 그는 “2017년 때 문재인 후보는 경선에서 이재명 안희정 후보와 치열하게 싸웠다. 문재인이 주류인 친문계가 내세운 후보였지만, 그땐 일극체제와 같은 말이 없었다”면서 “보수진영에서 오세훈 홍준표 한동훈 이준석 등이 레이스를 펼친다면 흥행 면에서 봤을 때 우리가 크게 밀릴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 비명계 의원은 “누가 나오더라도 윤석열보단 센 후보일 것이다. 이재명 대표는 20대 대선 때 윤석열에게 졌다”고 강조했다.
최근 우원식 국회의장의 대선 출마 여부가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 풀이된다. 우 의장은 계엄 및 탄핵 정국 때 리더십을 발휘하며 높은 평가를 받았다. 한국갤럽이 12월 10일부터 12일까지 만 18세 이상 1002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정계 요직 인물 개별 신뢰도’ 조사에서 우 의장은 56%로 주요 대선 후보들을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우 의장 행보에 시선이 쏠리는 것은 그가 친명계와는 거리가 있다는 부분과 무관하지 않다. 우 의장은 2024년 5월 16일 국회의장 선거 때 친명계가 밀었던 추미애 의원을 누르고 당선됐다. 정치권에선 이변이라고 했다. 이로 인해 우 의장은 민주당 강경 지지층으로부터 문자 폭탄을 받아야 했다.
우 의장은 대선 출마 여부에 선을 그었다. 우 의장은 12월 19일 외신 기자회견에서 ‘대선에 출마할 생각이 있느냐’는 질문에 “임기가 2026년 5월 30일까지”라면서 “대선 도전에 대해서 아직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아직’이라는 뉘앙스를 두고 정가에선 많은 해석이 나오기도 했다.
앞서의 비명계 의원은 “만약 정상적인 날짜에 선거가 치러졌다면 몰라도, 직을 그만두면서까지 대선 후보로 나오진 않을 것 같다”면서 “이와는 별개로 우 의장 출마 얘기가 왜 나오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이재명 독주’에 대한 반감으로 보인다. 그만큼 진보 진영이 다른 대권 후보를 필요로 하고 있다는 뜻”이라고 했다.
우 의장 외에도 탄핵 정국 때 몸풀기 행보를 했던 ‘신3김’을 비롯해 정세균 전 국회의장, 이광재 전 의원, 이낙연 전 총리 등도 잠룡으로 분류된다. 비명계에선 조기 대선이 유력한 만큼, 2025년 설 연휴를 전후로 본격적인 세 결집에 나서겠다는 전략인데 이를 위해 ‘이재명 대항마’들과 꾸준히 접촉 중이라고 전해진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