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거비 비싸고 주차비는 무료…월 생활비 30만원대 800명 차량 생활
영국 남서부 브리스톨의 다운스는 ‘도시의 보석’이라고 불릴 만큼 예부터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는 곳이었다. ‘선데이타임스’가 선정하는 ‘영국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에서도 항상 순위에 올랐으며, 심지어 2017년에는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그런데 2024년에는 달랐다. 12년 역사상 처음으로 순위에 오르지 못한 것이다. 부분적인 이유는 폭등한 집값 때문이었다. 실제 2023년 통계에 따르면 브리스톨 전역은 런던을 제외하고 영국에서 집값이 가장 비싼 지역으로 꼽혔다. 이처럼 주거비가 비싸다 보니 전통적인 주거 형태를 포기하고 이동식 차량, 즉 카라반이나 밴을 개조해 살림을 차리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브리스톨 시의회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다운스 지역 주변에는 밴, 모터홈, 카라반에서 사는 주민이 최대 800명에 달하고 있다. 이는 영국에서 가장 높은 수치로, 2020년 이후 네 배로 증가한 것이다. 이는 모두 무료 주차가 가능하기 때문에 벌어진 현상이기도 하다.
도로 곳곳에 늘어선 밴이나 카라반을 바라보는 지역 주민들 사이에서는 한숨이 새어 나오고 있다. 심지어 “혐오스럽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40년 동안 이 지역에서 거주하고 이는 헬렌 모리스(79)는 ‘더선’에 “저들이 여기서 살 수 있도록 허가를 받았다는 사실이 역겹다”면서 “한번은 우리집 앞 도로변에 주차를 한 적이 있는데, 소음과 쓰레기 때문에 경찰에 신고했다”라고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서 “이제는 거리를 걷는 게 불안하다. 여기 주민들은 그들이 여기에 사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이 지역을 망치고 있다”고 비난했다.
반면, 잠시 스코틀랜드로 이주했다가 고향인 브리스톨로 돌아온 수학 과외 교사인 캘럼은 “집값이 너무 비싸서 밴을 사기로 결심했다. 집이나 땅을 사기 위해 저축을 할 계획이지만 아마 10년은 걸릴 듯하다”라면서 밴에서 살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낡은 밴을 그럴듯한 이동식 주택으로 개조해서 살고 있는 그는 “여름에는 전기가 무료다. 겨울에는 한 달에 소형 발전기를 가동하는데 약 7.50파운드(약 1만 3000원) 정도의 비용이 든다. 물은 주유소에서 무료로 가져온다”면서 “혹시 문제가 발생할 경우를 대비해 돈을 따로 저축해 두고 있다. 엔진이 고장나거나 주차 딱지를 뗄 수도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집세가 나가지 않기 때문에 생활비는 거의 들지 않는다. 한 달 생활비로 200파운드(약 36만 원) 정도를 지출하지만 마음 먹기에 따라 더 절약할 수 있다. 캘럼은 “지금은 버는 돈의 대부분을 연금에 넣고 있다. 그전에는 항상 임대료로 나갔기 때문에 연금을 부을 여력이 없었다”면서 현재 생활에 만족하고 있다고 밝혔다. 출처 ‘더선’.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