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시로’ ‘사랑’ 등 주옥같은 히트곡 29곡 열창…관객 앞에 무릎 꿇은 뒤 무대 뒤로 사라져
‘트롯의 황제’ 나훈아(78)는 이렇게 말하며 그의 59년 가수 인생에 마침표를 찍었다. 2024년 4월부터 은퇴 투어를 시작한 지 9개월 만이다. ‘박수칠 때 떠나라’가 명언이라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다. 하지만 실천은 어렵다. 그러나 나훈아는 그 어려운 마지막 단추를 스스로 끼웠다.
#7만 명과의 뜨거운 안녕
나훈아는 1월 10∼12일 서울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공원 KSPO돔(구 체조경기장)에서 총 5차례 공연을 진행했다. 이 공연으로 나훈아는 약 6만 명과 만났다. 공연 시작 전부터 팬들은 ‘가황 나훈아님 고마웠습니다. 사랑합니다. 영원히 함께해요’라는 문구가 새겨진 플래카드를 들고 그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나훈아는 “고맙습니다. 오늘 날씨도 추분데(추운데) 귀한 시간 내주신 여러분 정말 진짜 억수로 고맙습니다. 오늘 저는 잘할 깁니다. 정말 신명나게, 애낄(아낄) 것도 없고 인자, 잘할 깁니다”라면서 “저는 오늘 여러분을 그냥 못 보냅니다. 노래로 패쥑이가 보낼 것입니다”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고향역’부터 ‘사내’까지…59년을 관통하다
나훈아는 약속된 오후 7시 30분 공연을 시작했다. 1초도 틀리지 않았다. 영상으로 등장한 기차는 그의 데뷔해인 1967년으로 시작해서 2025년에 멈춰 섰다. 그러자 나훈아는 ‘고향역’을 부르며 등장했고, ‘체인지’와 ‘고향으로 가는 배’를 이어갔다. ‘물레방아 도는데’를 부를 때는 영상 속의 1986년 나훈아와 무대 위의 2025년 나훈아가 듀엣으로 호흡을 맞추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그는 여전한 체력을 과시하기라도 하듯 ‘18세 순이’를 부를 때는 분홍옷을 입고 1층을 마구 뛰어다녔다.
2시간 30분 동안 진행된 이 공연에서 나훈아는 주옥같은 히트곡인 ‘무시로’, ‘사랑’, ‘영영’ 등을 선곡했다. 관객들에게 마지막으로 청춘의 기운을 돌려주겠다며 ‘청춘을 돌려다오’를 부를 때는 전매특허인 하얀색 민소매 셔츠와 찢어진 청바지 차림으로 등장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가장들을 위로하는 ‘남자의 인생’을 부를 때는 숙연해졌고, ‘테스형’을 부를 때는 나훈아가 곧 소크라테스가 돼 위정자들에게 호통을 치는 듯했다.
#‘미스터 쓴소리’의 마지막 일침
나훈아는 언제나 그랬듯 ‘공’을 부르며 간주 동안 만담을 들려줬다. ‘띠리∼’라는 후렴구는 이 세상을 향한 그의 한탄이나 풍자였다. 나훈아는 “이제 그만하는 마당에 아무 소리 안 할라캤는데 (지휘자 불러) 나가 요새 갑자기 방향 감각이 없다, 오른쪽이 어데고? 왼쪽이 어데고? 왼쪽이 오른쪽 보고 잘못했다고 생난리직이고 있다. 니는 잘했나?”라고 꼬집었다.
이어 어머니의 가르침을 이야기하며 “형과 나는 노상 싸웠습니다. ‘둘 다 바지 걷어라’하고 동생도 형도 패뿌렸습니다. 까막눈인 우리 어머니는 아무것도 모르는 분이 이 세상 두 개의 논리를 하나로 만들며 ‘형제가 싸우면 안 돼’라고 하셨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묻고 싶습니다. 너거가 지금 하는 꼬라지가, 국가를 국민을 위해 하고 있는 짓거리인지?”라고 덧붙였다.
나훈아는 정쟁 속에서 ‘국방’과 ‘경제’가 등한시되는 상황도 한탄했다. “지금 머리 위에 폭탄이 떨어져도 이상할 것이 없는 나라가 대한민국입니다. 군인들이 계속 잡혀 들어가고 찔찔 울고 앉아있고, 이들한테 울 생명을 맡긴다? 웃기지 않나?”라며 “언론이 너무 많다. 이 언론들이 그것(탄핵 집회)만 생중계하고 있다. 누가 좋아할까? 북쪽 김정은이 좋아한다. 저렇게 생중계하고 비추면 안 된다. 정치하는 분들이 국방 이야기를 해야 한다. 절반은 우리 먹고 사는 경제 생각, 국방을 생각해야 한다”고 호통쳤다.
#나훈아, 정말 돌아오지 않을까
공연이 진행되는 내내 팬들은 “은퇴하지 말라”고 외쳤다. 시간이 지나, 나훈아가 다시금 대중 앞에 서지 않을까. 하지만 그의 각오는 단단해 보였다. 나훈아는 “저는 구름 위를 걸으며 살았습니다. 별이었기 때문에 스타니까”라고 운을 뗀 뒤 “그게 좋을 것 같아도 사람이니까 별로 사는 게 쉽지 않았다. 이제 땅에서 걸으면서 살려 한다”면서 “지금까지 살며 가장 잘한 게 마이크 놓는다는 이 결심을 한 거다”라고 말했다.
마지막 곡은 ‘사내’였다. 강인한 경상도 사나이인 그의 이미지와 딱 부합하는 곡이다. ‘사내답게 갈 거다’라는 가사는 ‘훈아답게 갈 거다’로 바꿔 불렀다. 마지막 순간에는 그가 쥐고 있던 마이크를 드론에 실어 멀리 보냈다. 더 이상 마이크를 잡지 않겠다는, 마이크를 내려놓겠다는 그의 다짐을 행동으로 표현한 셈이다.
“저는 결코 울지 않을 겁니다. 아침에 연습하고 스태프들이 말을 하지 않아도 슬픈 기운이 돌았습니다. 저는 마이크 내려놓는 게 스태프들에게 죄를 짓는 기분입니다. 고맙고 미안하지만 울지 않겠다고 결심하고 있습니다. 정말 조마조마하게 설마설마하며 살았습니다. 고맙습니다. 이제는 여러분이 불러 주십시오.”
이렇게 말하며 나훈아는 관객들 앞에 무릎을 꿇었다. 59년간 그를 지지해준 팬들을 향한 마지막 인사였다. 이후 나훈아는 뒤돌아 무대 뒤로 사라졌다. 시대를 풍미한 가객의 뒷모습은 여전히 거대했다.
안진용 문화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