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공 커피’ 나눠주는 청년·‘MAGA’ 구호도 보여…체포 찬성 집회는 밝은 분위기 “이겼다” 기쁨 나눠
#윤석열 체포 디데이
1월 14일 저녁 윤석열 대통령 2차 체포영장 집행이 임박했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국민의힘 원내지도부는 긴급회의를 소집했다. 의원들은 비상대기 태세에 들어갔다. 이들은 한남동 대통령 관저 앞에 집결하자는 글을 공유했다. 보수 유튜버들도 지지자들에게 관저 앞으로 모이라는 ‘소집령’을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1월 15일 4시경 윤 대통령 지지자들이 관저 앞에 운집했다. 경찰 비공식 추산으로 약 6500명이 모였다. 이들은 은박 담요를 두르거나 핫팩을 손에 쥐고 따뜻한 음료를 마시며 추위를 견디고 있었다. 국민의힘 의원 35명과 일부 당직자들도 도착했다. 윤 대통령 변호인단인 윤갑근 배보윤 변호사도 현장에서 대기했다.
지지자들은 격앙된 모습이었다. 이들은 취재진에게 적대적인 태도를 보였다. 이들은 기자들의 멱살을 잡거나 심지어 정강이를 가격하는 모습까지 보였다. 일부 지지자들이 외신 기자의 사다리를 뺏으려 들면서 소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지지자들 간 언쟁도 있었다. 어디를 중점적으로 막아야 할지, 관저 인근에 있는 한남초등학교 담벼락을 넘는 게 가능한지 등을 두고 서로 의견이 다른 지지자들 사이에서 고성이 오갔다.
오전 4시 32분경 검은 옷을 입은 경찰 체포조가 나타났다. 이날 집회 질서 유지와 윤 대통령 체포 등에 투입된 인원은 약 5000명에 육박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체포조가 나타나자 지지자들은 고함을 질렀다. ‘탄핵 무효’ ‘불법 체포’ 등의 구호가 산발적으로 터져 나왔다. 체포조를 향해 욕설을 뱉는 사람도 있었다. 이때 한남초등학교 교직원이 탑승한 차량이 학교로 들어가려고 했다. 그러자 지지자들은 차를 가로막았다. 교직원에게 “초등학교 교사가 왜 새벽 4시 40분에 오냐”며 “선생 맞냐”고 윽박질렀다.
체포조가 관저 정문 앞에 도착했다. 오전 5시 10분경 체포·수색영장이 제시됐다. 피의자 윤석열의 죄명은 ‘내란 우두머리’라고 적시돼 있었다.
국민의힘 의원, 당직자, 윤 대통령 지지자 수백여 명은 체포영장 집행을 가로막았다. 논란이 됐던 백골단의 흰색 헬멧은 보이지 않았다. 공조수사본부(공조본)은 영장 집행을 방해하면 현행범으로 체포하겠다고 밝혔다. 공조본은 채증과 동시에 물리적 해산에 나섰다. 공조본과 지지자들이 충돌했다. 지지자들은 다시 ‘탄핵 무효’를 외쳤다. ‘주여’라고 크게 외치며 기도하는 이들도 있었다.
체포조는 입구 앞에서 인간 띠를 짜고 서 있던 국민의힘 의원들을 끌어냈다. 체포된 의원이나 지지자는 없었다. 지지자 한 사람이 대치 도중 쓰러져 소방당국이 현장 처치했다. 경미한 부상이라 병원으로 이송되지는 않았다. 오전 5시 50분경 공조본은 관저 입구 진입로를 확보했다.
#체포 소식에 희비 엇갈려
해산된 지지자들은 한남초 인근에 모여 있던 윤 대통령 지지 집회에 합류했다. 몇몇 지지자들은 관저로 가는 길목을 막는 경찰에게 “자유민주주의는 어디 갔나”라며 “통행권을 보장하라”고 항의했다. 이들은 주로 스마트폰으로 보수 유튜브 생중계를 보며 현장 상황을 파악했다. 공조본이 진입로를 확보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발을 동동 구르며 관저로 가는 길을 열라고 소리를 질렀다. 한 지지자는 “우리가 방송에는 폭도로 나온다”며 불만을 터뜨렸다.
지지자들은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었다. 부정선거 음모론, 탄핵 반대 구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민주당을 비난하는 말 등이 담긴 손팻말을 머리 위로 들었다. ‘MAGA’(Make America Great Again)나 ‘Stop The Steal’ 등이 적힌 손팻말도 눈길을 끌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 지지자들이 즐겨 사용하는 구호다. ‘Stop The Steal’은 ‘도둑질을 멈추라’는 뜻이다. 트럼프 당선인이 패배했던 2020년 대선이 부정선거였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한 지지자는 한국의 부정선거에 항의하기 위해 이 같은 손팻말을 들었다고 강조했다.
천막을 치고 ‘멸공 커피’와 핫팩을 나눠주는 2030 청년들도 있었다. 이들은 부정선거 음모론이 담긴 종이도 배포했다. ‘부정선거방지대책위원회’라는 단체에서 나온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자원해서 새벽부터 현장을 지켰다고 전했다. 대학생 안 아무개 씨(21)는 감기에 걸려 목이 쉬었지만 현장에 나왔다고 했다. 안 씨는 윤 대통령 체포는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야당의 탄핵 남발 때문에 윤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탄핵의 위법성은 법정에서 가리면 된다고 했다.
오전 7시 34분 공조본은 사다리를 이용, 버스 차벽으로 만들어진 1차 저지선을 돌파했다. 윤 대통령 지지자들의 분위기가 급격히 어두워졌다. 현장에서 마이크를 들고 있던 한 지지자는 “경호처가 최후의 수단을 써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된다”고 말했다. 무기를 써야 한다는 발언으로 풀이된다.
1차 저지선을 돌파한 경찰 200여 명이 관저 내부로 진입했다. 오전 7시 48분경 2차 저지선이 뚫렸다. 오전 7시 57분경엔 관저 초소에 체포조가 도착했다. 1차 저지선 돌파 후 26분 만이다. 오전 8시 24분경 3차 저지선인 관저 초소가 개방됐다. 공수처에 따르면 윤 대통령 지지자들의 바람과 달리 관저를 막는 경호처 직원은 없었고, 물리적 충돌도 발생하지 않았다.
보수 유튜브를 통해 이 소식을 접한 한 윤 대통령 지지자는 “3차 저지선 통과했대요. 어떡해”라며 탄식했다. 그는 MAGA가 적힌 모자를 쓰고 있었다. 다른 지지자는 “이제 시진핑이 내정간섭 할 거야”라고 우려했다. “윤석열 대통령 파이팅”이라고 외치며 현장을 통제하는 경찰과 충돌하는 이들도 있었다.
보수 유튜버로 추정되는 한 윤 대통령 지지자는 “가장 최우선은 여러분의 안전”이라며 물리적인 충돌을 자제해 달라고 했다. 그러자 다수의 지지자가 “입 닥쳐라. 전세 냈나”라며 반발했다. 그러고는 경찰 저지선을 뚫고 차도를 점거했다. 차도를 막고 탄핵 무효를 외쳤다. 아예 드러눕는 사람도 있었다.
경찰은 몸싸움 끝에 현장을 수습했다. 한 경찰관은 차도에 누운 지지자에게 차분한 목소리로 “선생님 그만하고 일어나시죠”라고 설득했다. 경찰들 뒤에서는 다른 보수 유튜버가 확성기로 연신 ‘탄핵 무효’라고 외치며 지지자들을 독려했다. 그 소리를 들은 일부 지지자들이 분노를 터뜨리며 다시 경찰과 충돌했다. 황교안 전 총리가 와서 진정하라고 했지만, 지지자들은 분을 삭이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몇몇 지지자들은 체포 찬성 집회 참가자들과 말다툼을 벌였다. 한 중년 남성은 찬성 집회 참가자들을 향해 “천벌 받을 거다. 북한이 좋냐. 이재명도 체포하라”고 소리쳤다. 그러자 옆에 있던 집회 참가자가 “그냥 가세요. 독재를 찬양하고 있어”라고 맞섰다. 말다툼 도중 두 사람은 멱살잡이를 했다. 경찰이 이들을 제지했다.
체포 찬성 집회 규모는 윤 대통령 지지 집회보다 규모는 작았지만, 분위기는 밝았다. 이들은 현장에 설치된 스크린으로 MBC 생중계를 지켜봤다. 체포 과정이 진척될 때마다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윤석열 즉각 체포’ ‘내란수괴 반드시 체포하라’ 등의 문구가 적인 손팻말을 높이 들었다. ‘전국 벌래 조아 연합’ ‘체포될 때까지 밤새는 대학생’ 등 유머러스한 문구도 눈길을 끌었다. 노동당, 녹색당, 정의당 등 원외 정당 당원들도 다수 참여한 것으로 전해졌다.
몇몇 대학생들은 전날부터 텐트를 치고 현장을 지켰다고 했다. 대학 연합동아리인 ‘인동(인권동아리)’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이 아무개 씨(22)와 박 아무개 씨(21)는 밤새도록 있었다고 했다. 이들은 “2차 때는 (체포가) 꼭 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체포를 기다리고 있는 시민들이 있다는 것을 어떻게 해서든 보여주기 위해 어젯밤부터 여기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퇴진이 끝이 아니라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 함께 더 잘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모두가 함께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라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 측 석동현 변호사가 자진 출석하는 쪽으로 협상 중이라고 밝히자 지지 집회와 반윤 집회에서는 일제히 원성이 쏟아져 나왔다. 윤 대통령 지지자들은 불법 수사에 협조해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체포 찬성 집회 참가자들은 ‘무조건 체포’하라고 외쳤다.
오전 10시 33분 방송사들이 일제히 속보를 쏟아냈다. 윤 대통령이 체포됐다는 소식이었다. 공수처도 체포영장이 집행됐다고 밝혔다. 분노한 윤 대통령 지지자들은 곧바로 해산을 선언하고 공수처 앞으로 몰려갔다. 체포 찬성 집회 참가자들은 “이겼다”고 말하며 기뻐했다.
현장에서 만난 한 택시기사는 “보수를 지지해서 윤석열을 찍었다. 지금 윤석열은 ‘양아치’라고 생각한다. 한 사람 때문에 서울 시내가 이게 뭔가. 법 앞에 공정이니 뭐니 하더니 이렇게 행동했다. 그는 위선자”라고 꼬집었다.
윤 대통령은 육필 원고를 남긴 채 공수처로 호송됐다. 원고에는 부정선거 음모론, 국회 입법 폭주, 계엄의 정당성 등이 담겨 있었다. 국정 혼란을 초래한 자신의 행동에 대한 사과는 없었다(관련기사 밤새 작성하고 꺼낸 말이…윤석열 “계엄은 국가 위기 극복 위한 대통령의 권한 행사”).
윤 대통령은 오전 11시부터 오후 9시 40분까지 공수처 조사를 받았다. 책임자가 수사에 대해 개괄적인 설명을 하는 예우 차원의 티타임은 생략됐다. 조사는 공수처 2인자 이재승 차장검사가 맡았다. 조사는 338호 영상녹화조사실에서 이뤄졌다. 윤 대통령은 영상녹화를 거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공수처는 윤 대통령이 ‘아예 말을 하지 않는 상태’라고 전했다. 저녁 메뉴로는 된장찌개를 고른 것으로 알려졌다. 윤 대통령은 직접 조서 열람·날인은 하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공수처는 48시간 안에 구속영장을 청구할 방침이다.
조사를 마친 윤 대통령은 경호차에 탑승해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로 호송됐다. 언론 카메라에 포착된 윤 대통령의 얼굴은 수척했다. 그는 비상계엄 선포 43일 만에 수감자 신세가 됐다.
이강원 기자 2000w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