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창룡은 박정희·전두환 자문, 손석우는 DJ 가족묘 이장 조언…쿠데타·계엄 등 날짜 ‘도사’들한테 받기도
풍수는 무속 논란에 단골로 등장했다. 한국 현대 정치사에서 가장 회자되는 풍수지리가는 지창룡이다. 시흥시가 2001년 발간한 ‘시흥의 인물’에 따르면 1952년 서울국립현충원 후보지를 정하는 과정에서 전국에 내로라하는 풍수지리가들이 동원됐다. 당시 후보지로 서울 우이동, 덕소, 말죽거리 등이 거론됐다. 최종적으로 지창룡이 제안한 동작동에 서울국립현충원이 만들어졌다.
지창룡은 박정희 전 대통령과 인연이 깊은 것으로 알려졌다. ‘시흥의 인물’에 따르면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61년 5월 14일 지창룡을 찾아갔다. 5·16 군사정변을 이틀 앞둔 날이었다. 박 전 대통령이 “성공할 수 있는지 말해달라”고 묻자 지창룡은 “성공한다”고 답했다. 이를 계기로 지창룡은 박 전 대통령과 인연을 맺어 청와대 안팎에서 박 전 대통령을 자주 만났다. 박 전 대통령은 육영수 여사가 서거했을 때 지창룡에게 “명당에 안장해 달라”고 했다.
지창룡이 5·16 군사정변 날짜를 정해줬다는 주장도 있다. 이팔호 전 경찰청장은 “5·16 때 박정희 장군은 날짜를 5월 18일로 잡아 놨다”며 “지창룡이 날짜를 이틀 앞당기라고 해서 5·16이 됐다”고 2023년 2월 ‘대한뉴스’ 인터뷰에서 말했다. 이 전 청장은 “지창룡은 풍수지리에 능해 대통령께서 직접 헬기를 내주며 전국을 돌아보고 경부고속도로 맥을 잡도록 했다”며 “서울대 관악캠퍼스, 용인경찰대학도 지창룡이 터를 잡았다”고 덧붙였다.
지창룡과 박정희 전 대통령의 일화에 관한 전언은 다소 엇갈린다. 지창룡의 제자 전용원 한국역학협회 회장은 2014년 7월 월간조선 인터뷰에서 “박정희가 지창룡을 찾아온 건 맞다”면서도 “박정희는 일절 신분을 밝히지 않았다. 질문도 ‘큰일을 하려고 하는데 되겠습니까’로 단순했다”고 전했다.
전 회장은 지창룡이 전두환 씨와도 인연을 이어갔다고 밝혔다. 전 회장은 “지창룡이 전두환 정권 청와대로부터 행정수도 건설에 대한 풍수 자문 요청을 받아 보고서를 작성했다”고 월간조선 인터뷰에서 말했다. 또 전 회장은 전두환 씨 부하가 1979년 12·12 군사반란을 몇 달 앞두고 지창룡을 찾아와 전두환 사진을 보여줬다고 전했다. 군사반란에 성공할 수 있을지 관상을 봤다는 것이다.
1990년 3당 합당을 앞두고 야당 국회의원이 지창룡을 찾아가 자문을 구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지창룡은 “호랑이를 잡기 위해선 굴로 들어가야 한다”고 야당 국회의원에게 조언했다고 한다. 지창룡은 1996년 시사저널 인터뷰에서 풍수는 미신이 아니냐는 질문에 “국내 역대 유명 정치인 치고 안 찾아온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하라”며 “그런 사람들이 돌아가서는 미신 타령을 하니 속이 빤히 들여다보인다”며 화를 냈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 전두환 씨는 쿠데타 외에도 주요 정치 일정을 점쟁이에게 자문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대통령이 유신 비상계엄을 선포한 날짜(1972년 10월 17일)가 대표적이다. 김성락 중앙정보부 판단기획실장이 유명 점쟁이로부터 날짜를 받아왔다고 한다. 전 씨는 1987년 12월 16일 대선 날짜를 청운동 도사에게 받았다고 전해진다. 12월 16일에 노태우 후보 표가 더 많이 나온다고 청운동 도사가 말해 그 날로 대선일을 정했다는 것.
지창룡과 함께 거론되는 풍수지리가로는 손석우가 꼽힌다. 손석우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대통령에 당선되기 전 가족 묘 이장 장소를 잡아준 인물이다. 손석우는 박정희 전 대통령과 북한 김일성 주석 사망을 예언해 화제가 됐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95년 부모와 전처, 여동생 묘를 경기도 용인으로 이장해 가족 묘원을 조성했다. 정치권에선 김 전 대통령이 대권을 잡기 위해 풍수지리가에게 묫자리를 구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김 전 대통령 측은 “풍수지리를 믿는 것은 아니지만 양지 바른 곳을 찾았다”며 의혹을 부인했다.
하지만 ‘뉴스플러스’(현 주간동아)는 1996년 5월 김 전 대통령이 손석우와 함께 용인 땅을 둘러보는 사진을 보도했다. 뉴스플러스에 따르면 손석우는 “이 터에 묘를 쓰면 자손 중에 반드시 큰 인물이 나며 하기에 따라서는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열려 있는 자리”라고 김 전 대통령에게 용인 땅을 소개했다. 손석우는 김 전 대통령 차남 김홍업 전 국회의원이 찾아와 용인 땅을 살 수 있도록 소개해줬다고 뉴스플러스 인터뷰에서 밝혔다.
대통령실 터를 둘러싼 풍수설도 끊이지 않았다. 노태우 씨가 1989년 청와대 본관을 신축할 때도 풍수지리가 자문을 받았다고 한다. 문재인 정부에서 광화문 대통령 시대 위원회 자문위원을 맡은 유홍준 교수는 2019년 1월 “풍수상 불길한 점 등을 생각하면 관저를 옮겨야 한다”고 말해 논란을 빚었다. 유 교수는 풍수상 불길함의 근거를 묻는 질문에 “풍수상 근거가 있다면 있는 것”이라고 답해 논란을 더 키웠다.
노무현 정부 시절 신행정수도 건설 추진 과정에도 풍수지리가가 관여했다. 자문위원회에 김두규 교수 등 풍수지리가 2명이 참여했다. 다만 김 교수는 현재 세종특별자치시로 지정된 지역에 대해 “풍수학적으로 최적의 장소라고 볼 수 없다”는 의견을 냈다.
김 교수는 노무현 전 대통령 퇴임 전 청와대 관계자들과 함께 경남 김해 봉하마을을 답사하기도 했다. 김 교수는 2017년 11월 월간조선 기고문에서 봉하마을 답사 당시 자신은 “사저 예정지 바로 옆 골짜기에 북동 골바람이 분다”며 “풍수에서는 황천살이라고 해 꺼린다”고 지적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김 교수는 “노 전 대통령은 분명 풍수설을 믿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박근혜 정부 시절에도 무속 논란이 불거졌다. 박 전 대통령 취임식에 사용된 오방낭은 무속 신앙을 연상시킨다는 의혹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이 ‘혼’ ‘기운’ ‘우주’ 같은 표현을 사용한 점도 논란거리였다. 박근혜 정부 비선실세 의혹을 받은 최서원 씨(개명 전 최순실) 아버지 최태민 씨가 사이비종교 ‘영세교’ 교주였던 행각이 드러나며 무속 논란은 커졌다. 뉴욕타임스는 2016년 10월 국정농단 사태를 전하면서 “무속인이 한국에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고 보도했다.
남경식 기자 ngs@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