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정’ 윤 사법고시 때부터 알아, 결혼 주선 얘기도…‘건진’ 김건희가 윤에 소개, 손바닥 ‘왕’자도 그의 작품 소문
#윤 대통령 부부 맺어준 '심 도사'
윤석열 대통령을 둘러싼 무속 등 논란에서 가장 먼저 등장한 인물은 20대 대선 경선부터 거론된 '무정스님'이다. 본명은 심희리 씨로 1944년생. '심무정'으로도 불렸다. 윤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의 결혼을 주선했다는 등 여러 소문이 따라다닌 인사다.
발단은 김 여사의 2018년 월간조선 인터뷰였다. 여기서 김 여사는 "(남편은) 한 스님이 맺어줬다"고 밝혔다. 김 여사는 대선 전 인터넷 매체 서울의소리가 공개한 이른바 '7시간 녹취록'에서도 무정스님을 거론하며 "그분이 나서줘 남편과 결혼하게 됐다"고 했다.
일요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심 씨는 강원 삼척시에서 나고 자란 인물로 현지 사찰인 '영은사'에서 오랜 기간 수련했다. 부친도 스님이었는데 여러 이유로 속세로 돌아와 고무신 등을 팔며 심 씨를 키웠다고 한다.
기자가 삼척에서 만난 심 씨 가족과 지인들은 그를 '심도사'라고 불렀다. 신내림 등은 받지 않았고, 주로 관상을 봐줬는데 지역사회에선 매우 영험하기로 유명했다고 한다. 현대 불교의 대표적 학승 '탄허스님' 밑에서 공부했단 말도 들리지만 사실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심 씨와 한때 죽마고우였다는 80대 주 아무개 씨는 "전국에서 관상을 봐달라는 고관대작 사모님들이 심도사를 만나려고 이 시골까지 많이 찾아왔었다"며 "그의 아버지조차 아들을 '심도사님'이라 부를 정도로 기운이 대단했다"고 설명했다.
심 씨의 한 가족은 "심도사는 관상을 매우 잘 맞히고도 복채를 일절 받지 않아 신망이 매우 두터웠다"면서도 "현찰만 안 받았고, 간혹 부호들이 거처 등을 마련해주면 그곳에서 신세를 지긴 했었다"고 떠올렸다.
심 씨는 윤 대통령과 사법시험 고시생 때부터 알고 지냈다고 전해졌다. 삼척 옆 강릉 출신인 윤 대통령의 외할머니와 모친을 통해서다.
어느 하루는 윤 대통령 모친이 한국은행 이력서를 들고 심 씨를 찾아와 "아들이 사법시험에 계속 낙방한다"며 "은행에 취업하는 게 어떨지" 고민을 토로했다고 한다. 그러자 심 씨가 "몇 번 더 도전하면 분명 합격할 수 있다"고 용기를 건네곤 그 자리에서 은행 이력서를 찢었다는 일화가 있다.
심 씨는 조남욱 전 삼부토건 회장과도 친했다. 조 전 회장이 기록한 1997~2013년 수첩과 일정표 등에 심 씨는 수십 차례 등장한다. 이 일정표엔 윤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와 장모 최은순 씨도 여러 번 나온다. 전부 윤 대통령과 김 여사가 결혼하기 훨씬 전인 1990년대부터 거론된다. 윤 대통령은 결혼 1년 전인 2011년 8월 13일 조 전 회장 및 강원 동해시 동부전기산업 황하영 회장(72)과 만났다는 기록이 있다.
심 씨는 이 같은 관계를 토대로 윤 대통령과 김 여사를 연결해줬다. 조 전 회장을 통해 김 여사와 최 씨 등을 알게 됐고, 그 과정에서 윤 대통령을 김 여사 쪽에 소개해줬다는 것이다. 이때 심 씨가 평검사였던 윤 대통령을 "훗날 장관까지 할 수 있는 인물"로 평가했단 이야기는 유명하다.
심 씨가 윤 대통령 부부 결혼까지 주선했는지를 놓고는 지인들 사이 의견이 분분하다. 심 씨가 동부전기산업 황 회장한테도 윤 대통령과 김 여사를 소개해줬는데, 둘의 결혼은 황 회장이 주선했다는 말도 있다. 실제 심 씨는 동부전기산업 등기이사를 지내는 등 황 회장과 가까웠다.
심 씨의 한 지인은 "황 회장이 심도사를 매우 깍듯이 모셨고, 운전기사 역할도 해줬다"며 "윤 대통령 결혼은 심도사가 잠깐 해외에 나간 사이 황 회장이 해준 걸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황 회장은 아들이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실 황종호 행정관(36)이다. 정계에서 김 여사 측 '한남동 라인'으로 꼽혀 이목이 쏠렸던 인물이다.
심 씨와 윤 대통령 부부는 문재인 정부 시절 거리가 멀어졌다. 정치적 보수 성향이 짙었던 심 씨가 각종 사견을 쏟아내며 문재인 정부의 실패를 내다보자, 그 무렵 출세가도에 오른 윤 대통령 부부가 불쾌감을 느껴 심 씨를 가까이 하지 않았다는 전언이다.
#'손바닥 王' 건진법사 작품이었을까
심 씨가 대선 경선 시기에 주로 거론됐다면, 윤 대통령이 국민의힘 대선후보로 최종 선출된 후에는 '건진법사' 전성배 씨(64)가 논란 핵심 인물로 떠올랐다.
전 씨는 윤 대통령의 선거캠프 하부조직인 '네트워크본부'에서 고문으로 활동한 사실이 확인돼 파장이 일었다. 심 씨와 달리 정치 조직에서 발견된 만큼 국정개입 우려가 적지 않았다. 전 씨가 윤 대통령의 대선 출마 결심을 이끌었고, 본인은 국사가 될 인물로 주장하고 다녔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특히 전 씨가 무속인으로서 건전한지를 놓고도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그는 '한국불교 일광조계종' 소속 법사로 알려졌다.
일광조계종은 2018년 9월 충북 충주 중앙탑공원에서 '수륙대재 및 국태민안등불축제'를 주최하며 가죽 벗겨진 소의 사체를 전시해 논란이 된 단체다. 살생이 금지된 불교행사에서 기괴한 장면을 연출해 논란이 컸다. 전 씨 본인은 서울 지하철 9호선 언주역 인근 단독주택에 법당을 차리고 신점과 누름굿(신내림 막는 굿) 등을 해왔다.
전 씨와 윤 대통령 인연은 김 여사가 맺어줬다는 설이 중론이다. 2022년 김의겸 전 열린민주당 의원은 전 씨와 스승으로 알려진 혜우스님이 2015년 김 여사가 운영하는 코바나컨텐츠 주관 행사에 참석한 사진을 공개하기도 했다.
일각에선 2022년 10월 1일 TV 대선 토론회 때 화제가 된 윤 대통령의 손바닥 '王'(왕) 글씨를 써준 인물도 전 씨로 지목한다. 조용헌 건국대 석좌교수는 건진법사 존재가 언론에 드러나기 전인 2022년 1월 10일 조선일보 칼럼에서 "윤석열 캠프에 J 도사가 있는데 손바닥 王 자도 그의 작품"이라고 밝혔다. 이어 2024년 12월 23일 같은 신문 칼럼에서 "J 도사는 건진법사, 본명 전성배"라고 밝혔다.
조 교수는 대선 당시 기자에 "캠프에 도사가 여러 명 있다"며 "(윤 대통령과) 최근에 알게 된 도사도 있고, 10여 년 전에 알게 된 도사도 있다"고 귀띔하기도 했다.
그에 따르면 전 씨는 10대 중반에 접신을 했고, 병을 치유하는 능력이 뛰어나기로 유명했다. 1980년대부터 정계 여러 인사들이 전 씨를 만나려 애썼다고도 한다. 한때 치악산에서 산신 기도를 하다 간첩으로 신고돼 붙잡힌 적도 있었다고.
전 씨를 아는 또 다른 인사는 일요신문에 "몸이 불편한 자녀를 둔 정치인들이 전 씨에 '기치료'를 부탁하기도 했다"며 "이런 배경 탓에 몇몇 정치인들이 전 씨를 갑(甲)으로 모시고 자신들은 스스로 을(乙)로 지내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전 씨는 대선 당시 정체가 들통난 후 자취를 감췄다. 그러다 최근 다시 등장했다. 2024년 12월 17일 서울남부지검 가상자산범죄합동수사단에 긴급 체포됐다. 2018년 지방선거 지원을 명목으로 정치인들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등의 혐의다.
앞서 2024년 11월 10일 공개된 명태균 씨 녹취에서도 전 씨가 언급됐다. 명 씨와 김영선 전 의원 회계담당자 강혜경 씨가 그해 1월 13일 나눈 통화 내용이다. 명 씨는 "(김 전 의원 자신은) 건진법사가 공천 줬다더라"며 "나한테 어떻게 이럴 수 있냐"고 불평했다. 자신이 공천을 줬는데 김 전 의원은 전 씨 덕분으로 여기는 데 대한 불만이었다.
전 씨는 윤 대통령 부부와도 일찍이 멀어졌다고 전해졌다. 전 씨 고향 후배로 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참여했던 노 아무개 씨(63)는 "건진법사가 윤 대통령 캠프 하위조직인 네트워크본부를 만들어 일을 시작했으나, 이후 윤 대통령 부부와 멀어지며 현 정부와는 결별했다"며 "그 후 네트워크본부는 오을섭 씨가 조직·자금을 책임지게 됐다"고 설명했다.
전 씨는 여러 사업체를 실질적으로 운영했다. 한 사업체는 공교롭게도 전 씨가 2024년 말 검찰 수사를 받던 시점에 정리했다. 전 씨 가족은 화장품 제조와 판매사인 (주)미소월을 운영했다. 이 회사는 2015년 7월 설립돼 2024년 12월 2일 해산했다. 전 씨가 검찰 수사를 받고 있을 때다.
서울 지하철 역삼역 부근에 있던 이 회사는 전 씨와 그의 딸(39), 아들(37)이 함께 운영했다. 대표이사는 전 씨 딸이 2016년 1월부터 맡았다. 전 씨와 아들은 2019년 1월부터 해산 때까지 사내이사로 등재돼 있었다.
서울 강남구 논현로(역삼동)에 있던 (주)희보는 전 씨 아들이 2015년 8월부터 2020년 12월까지 대표이사를 맡다가 청산 종결했다. 통신기기 무역업과 건설자재 도·소매업, 건축자재 제조업 등을 했다. 희보 주소지는 전 씨의 현 거주지이자 법당이기도 하다.
컴퓨터 및 인터넷 소프트웨어 개발과 판매업, 인터넷 전자상거래 등을 주로 했던 한국징보(주)는 2012년 설립됐다가 2020년 12월 청산 종결됐다. 서울 강남구 언주로(역삼동)에 있던 이 회사는 전 씨의 가까운 인척이 운영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전 씨는 한국징보 청산 후에도 상호를 그대로 썼다. 전 씨가 검찰 수사를 받기 전인 2024년 10월 일요신문이 그의 거주지이자 법당인 논현로 주택을 방문했을 때도 대문 입구엔 ‘한국징보’ 상호가 그대로 붙어 있었다. 전 씨는 자신의 거주지이자 법당을 청산 종결된 한국징보로 위장한 셈이다.
주현웅 기자 chescol2@ilyo.co.kr
김지영 기자 young@ilyo.co.kr